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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Oct 01. 2023

너희에게 편지를 쓰는 진짜 이유

안녕? 얘들아.


너희들이 있는 한국에도 가을이 왔니? 노르웨이의 가을은 좀 추워. 아침엔 10도 이하로 내려가고 낮에 해가 뜨면 비로소 조금 따뜻해져. 큰 기온 차 때문에 사람들은 이미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었단다. 여름에는 자정이 넘어서까지도 밝았는데, 가을에 접어들면서 해가 빠른 속도로 짧아지고 있어. 다음 달 쯤엔 오후 네 시면 이미 어두워져 있을 거야.


노르웨이의 깜깜한 오후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집으로 재촉해. 어둠과 추위를 피해서 노르웨이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별로 없거든. 저녁 5시 30분에 문을 닫는 카페도 많고,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라면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외에는 문을 연 곳이 거의 없을 거야. 상점들의 빛으로 밤인지 낮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한국의 거리와는 많이 다르지?


벌써 문 닫은 카페들


노르웨이 사람들은 일찍 퇴근을 하고 오후 5시면 저녁을 먹어. 한국 사람의 눈에는 아주 간단한 저녁 식사야. 그리고는 다들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지. 여러 가지 이유로 노르웨이에 살면 가족들과 함께 긴 시간을 집에서 함께 지낼 수밖에 없어. 선생님은 저녁을 먹고 나서 정리가 되면 아이들과 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보드 게임을 하거나 TV를 같이 보면서 시간을 보내. 일주일에 한 번쯤은 테니스장에 가서 같이 운동하고, 다 같이 밤 산책을 나가기도 해. 그렇게 지내고 있단다.


너희들이 학교를 마치고 주로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 예전에 상담을 할 때 어떤 친구가 그러더라. 집에 일찍 들어가기보다는 친구들과 카페에 가거나 시내에서 놀다가 밤늦게 들어간다고. 그게 편하다고 말이야. 학교나 학원, 집이 아닌 어떤 곳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매일 고민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이 안쓰럽기도 했어. 너희에게 학교나 집이 편안한 공간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사실 돈도 있고 갈 곳만 있다면 10대에겐 집보다 밖이 훨씬 재미있긴 해!)  



선생님은 너희가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공간이 없다면 너희가 편하게 느끼고 믿을 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예전에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난 신생아를 대상으로 40년간 추적 관찰한 실험이 있었대. 1950년대의 카우아이 섬은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기 열악한 환경이었어. 그래서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회 부적응자가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 연구를 진행했던 거야. 그런데 고위험 환경으로 분류되어 추적 관찰되었던 201명의 아이들 중에서 72명의 아이들이 미국 본토의 우수한 대학에 장학생으로 성장한 경우를 발견하게 된 거야. 가설과 정반대로 말이야. 그 이유가 뭐였을까?


이 아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철저하게 믿어주고, 지원해 주고, 사랑을 주는 1명 이상의 어른이 있었다고 해. 부모가 아닌 친척, 그 누구였더라도 아이를 신뢰하고 기다리고 용기를 심어주는 어른이 있었다는 거지.


사실 선생님은 그런 어른 중 한 명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이 편지를 써 온 것 같아.


‘어떤 방법이면 그런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하다가 편지를 쓰게 된 거야. 아마 학교에서 너희를 계속 만났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이 편지를 쓰는 일은 하지 못했을 거야. (학교 안에서는 서로 얽히고 섥히는 것이 많은 관계잖아.)


"지금 너에게 힘이 되는 사람은 누구니? 1명의 어른이라도 떠올랐으면 좋겠어. 혹여 없다면 친구여도 괜찮을 것 같아. 외롭지 않길 바랄게.

그리고 정말 너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깨를 떨구고 지낼 필요는 없어. 선생님이 늘 말하지만 너를 이 세상 끝까지 지켜줄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야. 그러니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어깨에 힘을 주며 다니렴.

뭐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결국은 해 낸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내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를 선물로 전할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을 때, 위로받고 싶을 때 도움이 될 거야.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지만 너희들을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할게. 언젠가는 또 만나.


- 노르웨이에서 선생님이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 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보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너머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다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김재진,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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