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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ul 12. 2024

오늘 당도한 미래

2017. 3. 10. 쇠의 날.


  출판사와의 미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상가를 막 지나치고 있었다.  


  "그래, 잘 해결됐어요?"


  부동산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온 여자가 나를 발견하곤 눈을 빛내며 물었다.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될 테지?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그런데 여자가 물어온 것이다. 타이밍이 정오의 태양처럼 눈부신데 고개를 조아릴 밖에. 하지만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그러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을 것이다. 내 얼굴에는 영문 모를 기색이 번졌을 것이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는지 여자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얼른 표정을 바꾸고 어색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아, 아는 사람이랑 얼굴이 너무 비슷해서, 내가 착각했네."


   여자의 혼잣말에 별다른 대꾸 없이 나는 가던 길을 갔다. 등뒤에서 빗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동산 중계사가 해결됐느냐고 물을 만한 것은 거래 관련 일이겠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집을 내놓고 있고, 집은 팔리지 않고 있으며, 전세는 씨가 말랐고, 부르는 게 값이다. 이 단지에는 나와 너무 비슷한 얼굴을 한 여자가 살고 있구나. 그녀의 사정이 나는 궁금했다. "그래, 잘 해겼됐나요?" 얼굴을 마주하고 차라도 한 잔 하며 묻고 싶어졌다. 손을 그러잡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 잘 해결될 거예요." 그렇게 얼굴이 닮은 여자끼리 연대하는 거다.


   집으로 돌아오자 가방을 부려놓고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너무 오래 참았다. 잠시 뒤 손을 씻으며 거울을 봤다. 생각보다 나이가 들었지만 나와 너무 똑같이 생긴 여자가 입꼬리를 늘어뜨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부담스러웠다. 나와 똑같이 생겼는데도 그녀에게는 잘 될 거라고 다독여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냉정해지고 싶었다.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다시 거울을 봤다.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그럴 만했다. 생리 첫날이었다. 여러모로 기록해둘 만한 날이었다. 탄핵도 미팅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 눈에 힘 좀 줘!" 잔소리하고 돌아섰다.


  남편과 J에게 소식을 전했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다고. 남편이 기뻐하며 삼겹살을 쏜다 했는데 J가 나가기 귀찮다며 소파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축하주를 터뜨리긴 아직 이르지. 나는 비타민 두 알을 입에 털어놓고는 멸치를 우렸으며, 김치와 야채를 볶고, 국수를 삶았다. 남편과 나는 국수에 볶은 김치와 야채를 가득 얹고 상추와 김도 잘라 참기름까지 담뿍 넣어 매콤하게 비볐다. 그런데도 맛이 살아나지 못했다. 이제껏 내가 만든 국수 가운데 기록적으로 맛이 없었다. J가 잔치국수를 먹으며 말했다.


  "엄마의 국수는 면발과 국물이 따로 놀아."


  잘 아는 바다. 알았다고, 더 노오오력하겠다고, 그리 사납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두 주먹 불끈 쥐고 속으로 다짐했을 뿐. 노력으로 바뀌는 것들이 있어 다행스럽지 않은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출판사와 첫 미팅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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