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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27. 2023

해피엔딩을 바라며 쓰는 편지

죽음을 많이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영원한 안식을 소망했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자신이 없어서, 겪어내고 싶지 않아서 삶이 끝나버리길 소망했죠.     


하지만 그것이 달콤한 유혹이더라도 그럴 순 없었어요.

나는 영원한 안식에 이르더라도 내 주변의 누구에게는 고통의 시작일 수 있으니까.

도움이 못 되고, 못난 모습으로 남아있더라도 그저 존재한다는 게 필요할 수 있으니까.     

아이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아서 나 편하자고 죽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건 슬프고, 덧없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문득문득 죽음을 생각하죠.

옥상 난간에 널린 빨래를 보며 ‘저렇게 펄럭이다가 바람결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다면’,

잔잔한 파도가 햇볕에 반짝이는 것을 보며 ‘저 바람도 닿지 않는 깊은 물 속에 영원히 잠들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것은 변화가 없는 영원한 안정 상태.

전 그런 걸 꿈꾸는 것 같기도 해요.

모든 것은 결정되는 순간 더는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좀 알겠어요.

 아마 죽음이 지금 온다면 나는 그 순간 홀가분하기보다 슬프겠구나. 그렇게 소망하던 죽음을 이뤘다며 기뻐하지 않고 슬퍼하겠구나.

 내가 바랐던 모습으로 살지 못해서, 이제 더 이상의 기회가 없어서, 영원히 이루지 못한 채로 남기 때문에 난 슬프겠구나.     


 어쩌다 유서를 쓰게 되었는데, 그리고 나니 깨달았어요.

난 ‘내가 되고 싶은 나’가 되지 못해 슬프구나.

그저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거나, 누군가에게 버림받을까 봐 좋은 사람인 척, 착한 사람인 척한 게 아니구나.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보다,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구나.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구나, 

나는 사람을 사랑했구나. 위로되고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사랑을 주고 싶었구나.     


 그런데 나는 항상 좋은 사람일 수 없기에, 때론 나도 나쁘기에, 더는 나쁜 걸 주고 싶지 않아서 더 살고 싶지 않았구나.     


 나에게도 언제가 영원한 안식이 오겠지요.

 저는 그때 슬프지 않도록 살려고요. 똑같이 웃음도 주고 울음도 주는 나로 살겠지만, 스스로 도움이 되었던 순간들을 모아보려고요.     


 특별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겠다는 마음은 아니에요. 이미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저 스스로 그런 순간들을 인식하도록 노력하고 나에게 선물로 주려고요.

 그래도 나의 존재가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고 마지막 순간에 생각할 수 있도록

 스스로 그런 인생의 순간들에 책갈피를 꽂아볼게요.     


 나라는 책이 슬픈 엔딩이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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