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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희 Mar 12. 2024

희귀 심장병 돌쟁이 3

넘치도록 고맙습니다

  


늦은 , 지하철 역 앞에서 딸과 부여안고 엉엉 울었던 이 있었다.

아기는 한 시간 뒤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늘 긴장상태였다.

강담하기 어려운 병원비에 딸아이는 지하 전세방으로 이사할 생각을 했고

 나는 빨리 집을 완공시켜 최대한 융자를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었다.


딸은 걱정 말라했지만 생전 처음 내 집을 지으면서  내부 벽엔 벽지를 바를까 칠을 할까

지붕은 리얼 징크로 할까  슁글로 할까  하는  생각만 하던 머리로는 걱정 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딸은 달랐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하고  치열하게 진행했다.

VAD의 보험 등재가 신속하게 진행되더니 드디어 확정되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팽팽해진 풍선은 바람이 빠져도 원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겸이 심장도  그런 상태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아기 심장 근육이 마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에 마비된 상태면 심장이식 밖에 답이 없는데

아주 긍정적인 검사 결과가 나와 감동스러웠다.  


처음엔 심장 이식 하면 튼튼한 심장이 될 테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또래 어린 심장 공여자가 나타나야  한다.

우리 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가족의 절망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게다가  아기가 워낙 어리니 10년에 한 번씩 나이에 맞는 심장으로 재수술을 해야 한다. 

평생 한 번도 힘든 수술을 몇 번이나 받는 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기적은 또 있었다.


 주변 친척들과 친구들 지인들은 물론

겸이의 이야기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후,

너무나 많은 분들의  후원이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병원비는 그렇게 채워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 같은 우리 겨미는  그 기도와 도움에 보답하듯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고 있다.

그동안 유난히 하얗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며 피부가 반짝인다.


미안하구나 울 아기. 네 심장이 야위어 그렇게 창백했는데,  기운이 없어 자꾸 안아 달라했는데

무심한 할미는 꿈에도 몰랐구나.


네 심장이 야위어 가는 걸......


일반병동으로 옮기고 아기를 처음 안아본 날. 야들야들하고 따뜻한 아기를

품 안에 쏘옥 안을 수는 없었다.

아기의 몸에서부터 뻗어있는 굵은 두 개의 관과 거기에 이어진 묵직한 기계,

그리고 옆의 지지대에 묶여있는 또 다른 기계들과 수액까지 연결 돼 있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줄이 꼬이면 사정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그렇지만 아픈 후 처음 안아본 우리 아기는 여전히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다.

혹여 이 시간이 오지 않을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기를 안고 있는데

저절로 감사의 눈물이 나온다.  


겸이는  병실 문 밖을 유난히 좋아했다.

겸이가 이동하려면 VAD 기계를 끌어 줄 사람, 겸이 유모차를 밀어줄 사람, 링거액   폴대를 밀어줄 사람,  그렇게 세 명이 필요하므로

병실 밖으로 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할미는 아기를 업은 채 폴대를 밀고 

할비는 커다란 기계를 끌고

병원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면 병실 안에 아기를 두고 우리끼리 나오는 게 너무 미안해서

나간 척하다 다시 돌아와  '깍꿍' 하는 깍꿍 놀이를 열 번을 해도

돌아서는 발걸음은 항상 천근이었다.


아프기 전의 겸이는 얼마나 도도한지 어미 외엔  암만 애걸복걸해도 매정하게 뿌리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전혀 낯을 가리지 않는다. 누구라도 안아주면 방긋거리며 고마워한다.


잠투정이 심한 녀석이었는데 어느새 혼자 잠들고 깨어난다. 중환자실에서 42일 있는 동안 아무도 없는 커튼 안에서 홀로 잠들고 깼을 아기가 짠해서 할미는 또 눈가가 붉어진다.

 

가끔 하나님 이 양반이 나를 엄청 사랑해 주시는 건 알겠는데 차라리 날 때리시지 왜 하필 그 어린것을 통해 호된 매질을 치시나?  생각한다.

큰 딸이 들으면 어떻게 그렇게 무뢰한 단어를 쓰냐면서 한 소리 하겠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어쨌거나 요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고맙습니다. 소리가 수시로 나오며 늘 가요를 흥얼거리던 입에서 가끔 나도 모르게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온 겨미는 더욱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왼쪽으로 마비 증상이 있어 왼쪽은 팔, 다리 힘이 전혀 없었는데 며칠 만에 힘을 제법 줄 수 있게 되었다. 감사, 감사. 넘치도록 감사하다.  


한 가지 걱정은 입이 짧아 잘 먹질 않는다. 병원 밥은 안 먹어서 죽을 시켜 먹였는데 이것도 금방 안 먹는다. 아기가 먹을 만한 것을 골고루 조금씩 만들어 가 먹이니 한, 두 수저 먹고 또 안 먹는다.


직영으로 집 짓는 일이 아니면 근처에 방이라도 얻어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인테리어 작업에 들어간 현장에도 자주 나가봐야 해서 여의치 않다. 양평에서 신촌세브란스는 거리가 결코 만만하진 않다. 늘 정체가 되는 길이라  지하철로 다니는데  왕복 5시간 정도 걸린다.


사위가 퇴근 후 병원으로 오면 돌봄 휴가 중이라 낮에 병원에 있던  딸은 집 근처 어린이 집으로  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아침 일찍 큰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다시 병원으로 가면 사위가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으므로 믿을 수 있는 아기 도우미를 구하자고 강력히 주장했었다. 그러나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밤에도 한 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여야 하는 둥 어려움이 많았다. 잘 먹여 몸무게가 늘어야  심장 근육이 튼튼해진다니 밥 먹는 시간은 거의 전쟁이었다.


사위와 딸은 자기들이 최선을 다 해보겠다 했다. 인천에 사시는 사돈이 버스 타고 한 시간밖에 안 걸린다며 기꺼이 발 벗고 나서 주셨다.


 이제 우리 겨미가 잘 먹어주기만 하면 된다.  지금 아침 5시.  노트북을 접고 겨미에게 먹일 감자 경단과 부드러운 고기부침, 고구마 케이크를 만들어야겠다.


광명시에 싱크대를 상담받으러 가는 길에 들러서 전해 줘야지. 추석이 다가오니 시내건, 전용도로건 정체가 말도 못 하지만 울 아가가 잘 먹어만 준다면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 수 있다.


이틀 후엔 우리 당번이니 그때엔 또 무엇을 만들어 볼까나? 우리 겨미가 할미를 회개시키더니 이젠 생전 안 하던 요리를 만들라 하네. 울 아기가 튼튼해질 수 있다면 뭐든 다 한다. 당연히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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