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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Sep 15. 2023

4 보드게임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아들만 둘인 집이다 보니 방 한편에 보드게임이 작은 산처럼 쌓여있다.

단순한 게임도 여전히 여럿이 모여서 하면 즐거운 만큼,

유치원 때 구입했던 것부터 최근에 구입한 것들까지.

거의 새것인 상자부터 빛이 바래 빨간색이 다홍색이 되어버린 것까지.


그중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시리즈로 나왔다는 교육 보드게임과

언젠가 환경 관련한 회사에서 받은 어린이 환경 교육용 보드게임,

그리고 유명한 수입차 회사에서 받은 교통안전용 보드게임, 이 세 가지가 언젠가부터 내 신경에 거슬렸다.


먼지포를 들고 아이방 책꽂이와 서랍,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닦아낼 때마다 나는

한두 번 했을까 말까 한 저 보드게임들을 버려야지, 생각하고는 했지만

또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 아이들이 갑자기 찾을지도 몰라. 아이 친구가 놀러 왔을 때 흥미 있어하면 선물로 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지니고 있는 게 벌써 몇 년째다.


그래, 이게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가 아니면 또 우리 집에서 몇 년을 자리차지만 할 물건들.

나는 그 물건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또 불편한 마음이 들겠지.

버리지도, 그렇다고 기분 좋게 소유하지도 못하는 물건들을 지나치면서.


커다란 택배 박스가 배송된 오늘, 나는 1학기 교과서들과 풀지 않은 문제집들을 박스에 쏟아 넣고

외출 준비를 마친 후 보드게임 산더미에 눌려있던 그 보드게임 세 개를 박스에 넣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혹시라도, 재활용할 종이들에 섞여있는 보드게임을 보고 아이들이 다시 방으로 가져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으니까.


문득 이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철 지난 물건을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쉽다.

내가 마음을 결정하고, 아이들 몰래 정리하면 그만이다.

가끔 정말 이상하게도 한동안 찾지 않던 물건을 버린 딱 그날, 아이가 그것을 찾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그런 날이다.

어쩌면 내가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한 물건이, 아이는 나름 소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쓸모없는 물건들을 그대로 집 구석구석에 쌓아두고 있으니까.

재활용 종이를 담은 그 상자에 차마 내 필요 없어진 책들을 담지는 못했으니까.

내 물건 버리는 건 이렇게 망설이면서, 참 아이들의 물건은 잘도 버린다는 생각에 괜히 머쓱해진다.

하지만.

너희는 마음도, 생각도, 몸도 쑥쑥 자라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물건의 쓰임도 엄마와는 다르니까.


아파트 한쪽 재활용 공간에 박스를 두고 걸음을 옮긴다. 가볍게.

내 체중은 그대로지만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만 같다.

이렇게 우리 집의 공간이 한 뼘 더 여유로워졌고, 

보드게임은 재활용센터를 지나 새로운 쓸모를 하게 될 거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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