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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Sep 11. 2023

3  버블바스의 또 다른 용도 - 이김에 청소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아이들이 자라면서 욕실 풍경도 바뀐다.


이 집으로 이사 온 게 8년 7개월 전.

인테리어를 알아볼 때, 누군가가 청소하기 힘드니 욕조는 설치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었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한참 물놀이 하는 것을 좋아했을 때라 나는 욕조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저녁 무렵, 아니면 여름날.

욕조 가득 물을 받아놓고 거품을 만들어둔 후 목욕용 장난감 몇 개를 넣어두면 

아이들은 꽤 오랜 시간을 정말 즐겁게 놀고는 했다.

나는 가끔 뚜껑을 덮은 변기 위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고

욕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소소한 할 일들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나는 중간에 한 번은 빨대가 꽂힌 음료를 가지고 와 아이들에게 먹이곤 했다.


가끔 우리는 물풍선을 가득 사 와

바닥에 한가득 늘어놓고선 욕실 타일벽을 향해 던지며 놀기도 했다.

아이들은 있는 힘껏 물풍선을 던져 터뜨렸고

나는 빠르게 물을 풍선에 주입하기 위해 결국 베란다로 나가 호스를 뺀 수도꼭지에 풍선을 끼워 물을 채우기도 했다.

베란다 수도꼭지의 날씬한 모양이 물풍선을 만들기엔, 욕실 수도꼭지보다 최적이었으니까.


저 미스터버블 버블바스를 몇 통을 비웠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는 마트에서 무스형 버블바스를 사 와 아이들 손바닥과 머리카락 위에 올려주고는 했었다.

그런 놀이들이, 아이들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나에게는 조금이나마 쉴 수 있는 휴식 시간을 주는 귀한 것이기도 했다.


우리의 거품 목욕은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욕실 한편에 방치되어 있던 버블바스를 오늘은 꺼내 보았다.

아직 반도 더 남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며 이제야 설명서를 읽어보았다. 

아, 버블바스 말고도 샤워할 때 사용할 수도 있는 제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버블바스를 하지 않으면서 이 제품을 잊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사용 날짜가 많이 지나 지금 샤워할 때 사용하기는 조금 찜찜하다.


그냥 버릴 수는 없으니, 오늘은 이것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하고 헤어질 수 있을까.


문득 욕조에 묵은 때가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욕조를 설치하지 말라 조언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아주 잘 알 것 같다.

만약 지금 내가 욕실 리모델링을 한다면 아마도 난, 욕조를 없앨 테니까.

하얀 욕조를 닦는 일은 꽤나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다.

나는 따뜻한 물을 적당히 받은 욕조에 버블바스를 풀어두었다.

그렇게 두세 시간쯤 방치한 후, 부드러운 스펀지로 살살 문질러 욕조를 닦고 물을 흘려보냈다.


좋은 향기가 난다.

문득, 아이들이 아기 었을 때가 그리워진다.

목욕하고 나온 아이들의 머리카락에서, 손바닥에서

이 향기가 났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을 마냥 그리워만 할 수는 없으니.

그러니.

지금 내 곁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것으로.

그렇게 또 행복을 쌓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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