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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Sep 17. 2023

5 여름 샌들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여름이 지나갔기 때문은 아니다.


비가 내리는 오늘, 신발장 맨 아래에 있는 장화를 꺼내기 위해 허리를 굽혔을 때 이 하얀 여름 샌들이 눈에 띄었다.


몇 년 전 여름, 온라인 쇼핑을 하다가 큰 폭으로 세일을 해 구입했던 샌들이다.


아마도 디자인은 무난하지만, 너무도 뽀얀 하얀 샌들이어서 세일이 많이 들어갔던 게 아니었나 싶다.


검정이나 베이지색이었다면, 나 또한 이렇게나 신지 않고 방치하진 않았을 테니까.


시원해 보이는 하얀 샌들이지만, 잘 손이 가지는 않았다.


신고 벗기 불편한 벨트형 마무리 때문이기도 했고 굽이 없는 납작한 모양도 한몫했다.


내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미끄러지기 쉬울 테니까.


어쩌면 크록스처럼, 이런 샌들은 비가 오지 않고 더운 날씨인 곳에 어울리는 샌들일지도 모른다.


샌들을 처분하려고 마음먹고 신발장에서 꺼낸 직후. 어쩌면 다음다음 여행지로 하와이를 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신발을 신고 가면 어떨까. 여기서 입지 못했던 조금 더 화려하고 노출 있는 옷과 잘 어울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발을 다시 신발장에 넣을까 망설여졌다.


그러다 이내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해.


그리고 다시 이런 충동구매를 하지 않아야 해.


세일을 한다고 구입하지 않았으면 아예 무. 소비가 가능했을 텐데.


그리고 언젠가 분명 또 이 샌들을 손에 들고 버릴까 말까 고민하며 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될 거야.


이 샌들을 잘 매치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보내주자.


어쩌면 새 주인은 이 샌들을 인생 샌들이라 말할 수도 있잖아.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굿윌스토어 로고가 찍힌 커다란 비닐봉지에 하얀 샌들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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