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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Sep 20. 2023

7 비 오는 날엔 우산 정리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언젠가 지방에 사는 동생네 놀러 갔을 때, 비가 내렸다.

외출을 앞둔 나는 무심코 비가 오네. 너희 집에 우산 여분 있어? 하고 물었고, 동생은 당연하지. 우리 집에 우산 많아. 그렇게 답했다. 

우리 집에는 딱히 우산 여유분이 없으니 나는 그날, 내리는 비를 보고 우산 걱정을 했던 것 같다.


4인 가족인 우리 집에는 우산이 7개 있다. 우산 네 개는 평소 쓰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우산이고, 나머지 3개는 무겁고 큰 골프 우산이다. 주로 학교가 끝날 무렵 폭우가 쏟아질 때, 아이를 마중하러 가는 용도로 사용하거나 여행 갈 때 차에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한다.

짧은 거리를 우르르 몰려가야 할 일이 있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짐들을 잔뜩 들고 와야 할 때 필요한 우산이다.

하지만 주로 사용하는 건 두 개뿐이라, 나는 하나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셋 모두 펼쳐보니 비슷비슷한 크기에 비슷비슷한 상태다. 나는 그중 손잡이가 쥐기 편한 것 두 개를 남기고 하나는 정리하기로 결정한다.


조금 더 체력도 좋고 나이도 어렸을 때 나는 가끔 우산을 두 개씩 들고 다니고는 했다.

특히 백팩이나 커다란 에코백을 가지고 나가는 날엔 현관을 지나는 길에 꼭 우산을 한 개씩 더 챙겼다.

그때 집에는 이런저런 회사나 상품 로고가 찍힌 우산들이 꽤 많았다.

우산을 골라 나가는 게 일이었을 만큼.

그래서 나는 그날 만난 사람 중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 여분의 우산을 건네곤 했다.

아주 새 우산이나, 비싼 우산이 아니어서 받는 사람도 큰 부담 없이, 고맙게 받을 수 있는 그런 우산들이었다.

나 또한 조금의 망설임이나 아쉬움 없이 건넬 수 있는 우산이었고.

가끔 내가 우산 없이 외출했다 비를 만났을 때,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구입하며 나는 그 우산들을 떠올리곤 했다.


잊고 지내던 그 기억은 몇 달 전 TV에 나온 신애라 배우가 집에 있는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지인들에게 건네며,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는 것을 보고 떠올리게 되었다.

또 내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정하게 나눌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강의를 들으러 갈 때 필기도구? 언제든 나눠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주전부리?

아, 그러고 보니 엄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 집에 있는 특별한 간식들을 싸가서 나눠 먹고는 한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크게 티 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내가 가진 것들 중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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