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나에겐 몇 번의 공개수업이 남았을까
5월은 뭐다? 가정의 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이런저런 행사로 바쁜 시즌이지만, 학부모에게 5월은 공개수업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공개수업 날짜가 정해지면, 아이가 둘 이상인 집은 날짜가 겹치지는 않는지, 시간은 오전인지 오후인지, 이런저런 체크를 하게 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 이상이라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느 아이의 교실에 갈 것인지, 엄마와 아빠가 각각의 아이 교실에 따로 방문을 할지, 아니면 수업 하나는 큰애 반으로, 그다음 수업을 둘째 반으로, 그렇게 움직일지.
뭘 입고, 신고 갈지도 큰 고민이다. 너무 화려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행색이어야 한다. 발이 편한 신발은 필수. 운동화를 신어도 조금도 민망하지 않은 그런 날이기도 하다. 무거운 가방도 좋지 않다. 교실 뒤에 사물함이 있다면 그 위에 올려두거나, 정 여의치 않다면 바닥에 내려두어도 되지만 가급적 가볍거나, 크로스로 맬 수 있는 가방을 선택하게 된다. 가방에는 볼펜 한 자루 정도 넣어가면 메모를 하거나, 참관록을 써서 제출할 때도 편하다. (요즘은 큐알로 대체하는 학교도 많더라.)
한껏 신경 쓰고 학교로 가는 길.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학부모들을 보며 내 차림을 다시 점검한다. 너무 과하지는 않나, 어깨에 멘 가방은 그냥 손에 드는 게 낫겠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러나, 그러한 긴장감도 학교에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까맣게 잊게 된다.
학교 안에는 어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힘차며 생동감 있는 에너지가 흐른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아이들, 복도에 나와 서성이는 아이들, 어른들을 만나면 꾸벅 인사를 하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장난치고, 수다 떨고, 엄마 찾아 두리번거리고,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가고.
내 아이의 교실로 향하며 마주치는, 쉬는 시간을 만끽하는 모든 아이들이 귀엽고 기특하며 사랑스럽다.
그 십 분간의 소란과 에너지는 수업이 시작되면 금세 잠잠해진다. 수업을 듣는 내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집에서와는 다른, 내가 알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의 아이를 본다. 이렇게 학교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집에 오면 얼마나 피곤할까. 의자에 앉아서 긴 시간을 버티는 게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게다가 학교에서의 사회생활은 어떻고. 선생님과의 관계, 반 아이들과의 관계, 또 그 사이에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경쟁 관계인 다른 남자아이와의 신경전. 수업 중 손을 들고 발표를 하고 가끔 상으로 선생님께 젤리를 받기도 하고. 랜덤으로 발표가 걸렸지만 답을 알지 못할 때의 당혹스러움과 민망함이란.... 새삼 하교 후 아이에게 잔소리하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집에서만은 아이가 편하게 쉴 수 있게, 그렇게 해줘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유효 기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겠지만.
공개 수업과 공개 수업 사이, 복도에서 마주치는 얼굴을 아는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기 바쁘다. 이상하게 이런 날은 그리 친하지 않은 엄마들과도 환한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또 나와서 공개수업에 참석한 엄마들을 보기도 하고 인사도 하고, 또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놀기도 바쁘다. 고작 그 10분 안에.
가끔 특별실에서 수업을 할 땐 빈 의자에 앉을 수 있지만, 대부분 교실 공개 수업은 여유 있는 의자가 없어 서서 수업을 듣기 마련이다. 선생님 또한 서서 수업을 하시니 힘들다 불평할 수는 없지만, 한두 시간을 꼬박 교실 뒤에 서서 공개수업에 참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 년 중 단 하루. 이때 아니면 언제 교실에서 지내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몇 년 전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선생님의 수업 방식에 더 집중했다면, 이제는 내 아이의 수업 태도를 관찰하는 데 더 고심하게 된다. 공개 수업은 교사의 수업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 아이의 학교 생활을 조금 더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아픈 허리와 다리를 의식하며 때로는 집으로, 또 때로는 마음 맞는 학부모들과 티타임을 하러 가기도 한다. 학교 안에서 생동하던 에너지는 학교 밖으로 나오며 소실되고, 다시 평온한 나의 일상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너무 과한 걸까.
아니, 아이의 수업을 들으며 나는 삼십여 년 전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렸고, 그때 나의 선생님과, 나의 친구들과 나의 고단했던, 때로는 작은 기쁨들이 있었던 하루하루를 되짚었으니. 그때 나의 뒷모습을, 때로는 어깨가 축 처졌었고 때로는 어떤 조바심으로 발을 동동 굴렀던 그런 어린 나의 모습을, 교실 안 어떤 여자 아이에게서 엿보기도 했으니. 그러니. 판타지에서 빠져나온 것만 같다는 느낌이 맞을 수도 있겠다.
이 아이들에게 이 시절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렇게 당연히 9시 전까지 학교에 가야 하고, 하교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께 배우고, 급식을 먹고, 급식 메뉴를 챙기고. 그런 시절이 인생 중 그리 길지만은 않다는 것을. 어찌 보면 가장 평온한 시절일 수도 있을 것이란 것을. 이 아이들은 모르겠지. 언젠가는 이 시간을 무척이나 그리워 할런지도 모르지.
아니, 그건 어른의 시각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또 다른 전쟁이라는 것을 학부모인 나는 모르지 않으니.
다시 내년 공개수업이 열릴 때까지 나는 또 아이의 학교 생활은 짧게 떠올리고 금세 잊겠지만.
학부모로서 누릴 수 있는 추억 한 페이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도 한, 그런 날이다. 이제 첫째가 고등학교 2학년, 둘째가 중학교 2학년. 벌써 이렇게 커버린 아이들을 생각하며, 공개 수업 또한 이제 몇 번 남지 않았음을 떠올려본다. 나의 40대 중 찬란했던 어느 날이, 학부모로서 기억남을 어느 날이 또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