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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사이의 관계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야 할. 세상 가장 어려운 사이.

by 딥그린


원래도 낯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엮인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는 것 같다.

모임에 다녀오고 나면, 뭔가 모를 찜찜함과 후회가 밀려올 때가 종종 있고, 그럴 때면 하루를 넘겨서까지 옅은 우울감이 맴돌기도 한다.


취학 전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이들을 놀리려, 때로는 운동 수업을 기다리며 같이 무언가를 나눠 먹고 마시고, 서로의 집으로 초대를 하고, 아이들을 놀게 한다는 목적 아래 엄마들의 관계도 밀착되기 쉬었다.

어떤 모임은 아빠들까지 끼는 모임이 있었고, 나는 여기까지는 정말 바라지 않아 선을 그었지만, 아빠들이 합류하게 되면 모임의 범위는 더 넓어져 캠핑과 여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초등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이와 얽힌 모임들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아이가 어릴 때 만난 친구 엄마 중에는, 아이들은 서로 많이 친하지 않았지만 엄마들끼리는 통하는 부분들이 많아 아이 친구 엄마에서 내 친구, 또는 나랑 친한 언니, 동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런 관계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아이들이 얽히지 않은 관계는, 더 담백하고 솔직해질 수 있고, 사소한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이 없어서 좋다. 서로 아이의 안부를 묻고는 하지만, 결국 나누는 이야기는 온전한 '나'의 이야기. 요즘 내 생활과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요즘 좋아하는 것들, 관심 있는 분야들을 서로 공유하고 헤어지면 아, 오늘도 즐거웠어! 또 봐! 하고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다. 돌아서서도 물론, 웃을 수 있고. 그런 관계는 정말 소중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깊게 얽혀있는 관계는 쉽지 않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알고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하고 답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나누는 대화 속에 불쾌감이 깃들 때도 있다. 물론, 아이들이 서로 절친이라 생각하고, 응원하는 사이면 조금 다르다. 그럴 때는 엄마들도 서로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으니.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늘 동일할 수는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가장 귀가 쫑긋해지면서도, 아,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하는 건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아이, 그 아이의 엄마, 아빠, 그 아이의 가족 이야기. 그들이 오픈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는 상관없다. 그러나 감추고 싶어 할 것 같은 이야기들. 혹은 이렇게 본인들의 이야기가 동네에서 돈다면 불쾌해할 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땐, 그리고 그 이야기가 사실일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 때는 참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 이야기도 저렇게 타인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야기는 변화되고 수정되고 말 많고 여기저기 관심 많은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져 이런저런 티타임에 뿌려진다. 이럴 때는, 아무도 모르는 아이의 엄마가, 아무런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게 가장 편하고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아이와 엄마는 조금이라도 얼굴을 아는, 이름을 아는, 언젠가 학교에서 마주쳤던, 아니면 예전에 친했던, 그것도 아니면 저쪽 모임에서 몰려다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일 테니.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들과의 관계는 어렵다. 아주 친밀하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힘든 일도 없다.


어릴 때야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라도 모임에 참석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꼭 거기서 얻는 정보들 중 보석 같은 정보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고는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필요한 정보들은 온라인상에도 차고 넘친다. 가장 좋은 건 나의 아이보다 두세 살(한 살은 안된다. 경쟁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아이 엄마, 특히 성별이 다른 엄마와 친해지는 게 좋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사람 사이에는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할 터인데, 그 선배 어머니는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서 얻는 게 무엇일까.


그래서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에 신중하게 된다. 쉽게 커피 약속을 잡지 않고, 만나게 되더라도 되도록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만나고 나서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는 천천히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도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들은 나와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는 걸까. 꼭 직설적으로 말을 해야 그만 보자는 걸 알 수 있는 걸까.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거겠지.


손절했던, 예전에 아이와 친했던 엄마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내 아이와 그 집 아이가 친했던 것도 너무 오래전 이야기고, 아이들은 아예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다. 마지막에 몇 번이나 그 아이 엄마가 모임에 초대를 했지만 참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연락이 끊겼었는데. 겨우 끊어낸 인연이 이렇게 또 이어지려 하나. 그럴 수는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로 인해서 친해진 다른 엄마가 본인의 개인적인 전시회에 초대를 했다. 아이 친구 엄마의, 아니, 이제 내 친구인 그 사람의 성장을 기쁘게 축하한다. 무슨 꽃을 사갈까, 동네 꽃집을 검색하고 있는데 아이가 와서 묻는다. 누구한테 주려고? 응, 누구 엄마,라고 말하려다 응 엄마 친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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