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름방학은 겨울방학보다 짧으니까...
"이번 여름방학은 왜 이렇게 짧지?"
달력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얼핏 들으면 속상함을 더한 투정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는 내 입꼬리는 쓰윽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애들은 모르겠지. 내가 등을 돌리고 서 있으니.
그러나, 이 또한 조삼모사인 것을. 여름방학이 짧으면 겨울방학이 길어진다. 언젠가 학교가 석면공사를 들어갔을 때, 여름 방학이 열흘이었던 적이 있었었지.... 그 지난했던 겨울을 생각하면.... 하아.
학부모 경력 1N차인 나는, 방학 시작 일주일 전쯤은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로 간다. 많이 먹는 아들 하나와 적당히 먹는 아들 하나를 둔 터라 대용량 식재료들을 쟁여야 한다. 고기는 무조건 많이, 과일도 많이, 빵도 많이, 어, 세일하는 간식도 무조건 카트에 담고. 얼려둘 수 있는 식재료들은 거의 고민 없이 담고 또 담는다. 그나마 냉장고와 냉동실이 꽉 채워져 있어야 방학을 나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하다.
손가락도 바빠진다. 대형마트에서 사지 않은 것들. 하나씩만 필요한 소스나, 소량 필요한 식재료들, 간식들을 또 배달이 되는 동네 마트나 쿠팡에서 구입해 둔다. 미리 살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미리 사두자. 그게 내 나름의 방학을 준비하는 자세다. 그렇게 많이 사두어도, 방학을 하고 조금 지나면 냉동고와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고는 하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잠깐 냉장고 관리에 소홀하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대체 이 재료들로 뭐를 해줘야 하나 머리에 쥐가 나게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나는 평화로운 방학생활을 바라므로.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미술재료나 과학실험도구를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한가득 사두었었다. 엄마 손이 많이 갈 나이에, 내가 조금 쉬고 싶을 때 이만한 게 없었다. 어떤 날은 만들기 키트를, 어떤 날은 실험 키트를 꺼내주고 자유롭게 놀게 하면 그나마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고 흡입할 여유가 생기고는 했으니까.
아, 물풍선도 유용했다. 작은 물풍선을 잔뜩 사 열심히 물을 넣어주고 (요즘은 정말 편리하게 한 번에 수십 개의 물풍선에 물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 팔고 있어서 어찌나 놀랐던지!)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잔뜩 모아 놓으면 아이들은 욕실에서 벽을 향해 힘차게 던지며 놀고는 했었다. 혹여나 미끄럽지 않게 바닥에 타월을 넉넉하게 깔아 두었었고, 더운 여름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나면 (야외도 아니고 주택도 아닌 아파트에서 신나는 물놀이라니!) 또 거품이 슝슝 나오는 비누 스프레이를 쥐어주고 거품 놀이를 하게 했었다. 그 사이 나는 물풍선 잔해들을 빠르게 치우고, 잔뜩 거품 묻은 아이들을 샤워기로 헹궈주면 놀이 끝!
그렇게 키웠던 아이들이 이제는 훌쩍 커서, 방학이면 내가 할 일은 식사 챙겨주기와 학원 일정 체크하고 라이딩 일정 잡기! 이제는 그게 전부다. 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조금은 피로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학원이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겹치면 난감해질 때가 있다. 그러니 최대한 라이딩이 겹치지 않도록, 적어도 한 아이는 셔틀을 탈 수 있도록 신경을 써보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학원이 내 아이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그 수업이 내 아이에게 필요한지가 더 중요하지 그깟 이동시간과 이동수단이 대수일까.
아무튼 이번 여름방학에는 월, 화, 수, 일요일은 냉장고에 붙여둔 시간표 대로 나는 운전기사가 되어야 한다. 그나마 월요일과 수요일은 단거리 운전이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화, 수, 일요일은 조금 멀리 운전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부담이 되기도 하다. 하지만 감사해야지. 아이가 별다른 투정 없이 잘 다녀주고 있으니까. 엄마는 그거면 되는 거니까. 면허를 따도 운전이 싫어서 하지 않던 엄마는 아이를 키우면서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이번 여름은 덥다고 하니까, 에어컨 전기세는 그러려니 해야지. 지금 뭐가 더 중요한지 그걸 생각해야지.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에게 조금 더 힘이 되는 엄마가 되어야지. 차로 이동하면서 단둘이 비밀 얘기도 많이 해야지.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하고. 아이가 입을 열면 최대한 리액션하면서 들어줘야지. 기쁜 마음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지.
띵똥. 문자가 왔다. 학원에서 보낸 여름방학 특강 수강료 문자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이게 얼마야..... 이 돈이면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다 사도고 남.... 얘들아, 지금 그렇게 수박 먹으면서 유튜브 볼 때가 아니야. 그만 웃고 들어가서 공부하자.
5년 뒤에는 튜브 타고 물 위에 둥둥 떠서 호젓하게 여름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