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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오늘의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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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휴대폰에 알림이 떠올랐다.

12년 전, 오늘 찍은 사진들이 도착했다는 메시지였다.


12년 전 그날 내가 뭘 했더라.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생각이 안 나는데 12년 전 오늘이라니.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이라 생각하며 알림을 터치했다.

그러자.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 거실 풍경이 휴대폰 화면 가득 채워졌다.

사진을 옆으로 밀자, 사진 속 둘째가 현관에서 장화를 신은 채 눈물 콧물 범벅인 얼굴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는 여전히 뭐였더라, 싶은데.


그러니까 그날, 바깥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을 때, 주차장과 집이 연결되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인지라 차에서 내린 나는 우산을 쓴 채 뒷좌석 카시트에서 둘째를 들어 올리느라 끙끙거렸고, 바람에 날아간 우산 덕분에 비에 쫄딱 맞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혹여나 감기라도 들까, 바로 씻고 옷을 갈아입으려 했지만 둘째는 다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한번 울면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아이였고, 그날도 역시나 달래고 달래도 둘째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화를 내고 그러다 다시 뽀로로로 꼬시고 그래도 안 돼서 바나나 우유까지 들이밀었지만 아이는 다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어댔다.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 나가자. 하고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지 싶다. 나가서 비를 더 쫄딱 맞든, 다시 돌아오든, 뭘 하든 간에.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아침 등원 소동만으로도 지쳐 있었고, 비 오는 날의 운전으로 기진맥진했었던 것 같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까 겁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질러댔고, 나도 울었었었나. 그냥 이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었었나. 무기력한 기분으로.


기질이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땡볕에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단지를 열 바퀴도 넘게 돌았다. 잠깐이라도 유모차가 멈추면, 둘째는 또 악을 쓰고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파트 현관에만 들어서도 또 울었다. 왜 그랬을까.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답을 알지도 못하고, 답을 찾을 여유도 없는 채로 나는 유모차를 밀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너무 목이 말라 잠깐 편의점 입구에 유모차를 세우고 (그때는 왜 우리 동네 편의점은 그렇게 좁고 작았을까) 얼른 물을 계산하려는데 아이가 또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카드를 내밀자, 50대 후반쯤 되었을까. 계산을 하던 남자 사장이 애가 우는데 굳이 지금 물을 사야 하냐는 얼토당토않은 핀잔을 준 일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무더위에 얼굴이 붉게 달은 나는 그 말에 뭐라 답도 못하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도록 유모차를 얼른 밀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었다. 그때 내가 결국 물을 샀었나.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다음 사진으로 넘기자, 거실에 깔아 둔 놀이 매트 위에 누워 잠든 둘째가 보였다. 아이는 울다 지쳐서 잠이 든 건지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어있고, 배에는 얇은 거즈 이불이 덮여 있다. 아이의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이, 반듯하고 볼록한 이마에 눈이 간다.


그때 우느라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가 지금 나더러 30분 동안 그렇게 울어보라 한다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 같다. 그런 아이를 키우며 나는 또 얼마나 마음 졸이고, 힘들고, 피곤하고, 지쳤었을까. 그때 나도 너무 어린 엄마였는데.


여기까지는 슬프고 고되었던 나의 12년 전 어느 날 이야기.

지금 제 방에서 누워 내일 아침 7시 20분에 꼭 깨워달라고 외치는 우리 집 둘째는 성격 좋고 유쾌하고 쾌활하며 놀기 좋아하고, 또 놀기 좋아하고, 또또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수다 떠느라 학원이 끝나고도 한 시간이 넘게 집에 오지 않으며 집에 와서는 신이 난 얼굴로 쫑알쫑알 오늘 있었던 (본인 생각에 웃긴, 내가 듣기엔 굳이 꼭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중학생 형아가 되었다. 엄마, 안아줘! 를 외치기도 하고, 내가 엉덩이라도 두드려주려 하면 저 다 컸습니다, 이러지 마세요, 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둘째에게 힘들었던 그날의 사진을 보여주자, 어, 그래도 엄청 귀여운데? 나 너무 귀여웠는데? 이러면서 씩 웃는다. 그렇지,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보니까 엄마 생각에도 울어도 귀여웠다, 너.


그러니 지금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고 고된 엄마들도, 버티고 버티다 보면 이런 날도 올 테니. 그러니, 모두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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