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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동네가 가장 시끄러워지는 시간

학원 셔틀이 도착했습니다.

by 딥그린



동네 산책을 할 때 가장 흥미진진한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한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밤 10시라고 말하겠다.


주방을 마감하고, 마른빨래도 정리하고, 그러고 나서 밤 10시쯤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길엔


삼삼오오 모여있는 중고등학생들을 볼 수 있다.


아직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회색이나 검정 트레이닝 바지에 검정 패딩 차림이다.


아이들은 보통 편의점에서 뭘 사 먹고 있던지, 아이스크림할인점에서 뭘 사 먹고 있던지, 그때까지 문을 연 햄버거 가게나 닭강정 가게에서 뭘 사 먹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놀이터나 동네 작은 공원에 모여서 엽떡이나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 모습도 봤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까르르 웃기도 하고 에너지가 차고도 넘치는지 서로 잡겠다고 도망가고 밀치고 당기고 그러다 소리 지르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10시부터 동네가 활기를 띠는 이유는, 학원들이 대부분 10시에 끝나기 때문이다.


일단 동네 학원에서 10시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모여서 놀기 시작하고, 그러다 10시 20분쯤 셔틀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또 합류해 놀이의 볼륨이 커지기 시작한다.


딱히 군것질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한쪽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바쁘다.


고작 10대 중반, 후반인 아이들의 얼굴이 무척이나 심각해 보여서 귀엽기도 하고, 때로는 무슨 힘든 일이 있나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조명이 어두운 으슥한 다리 아래를 지나야 하는데, 그 부근에는 딱 봐도 아직 앳된 태가 나는 아이들이 흡연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얼마 전에는 불량스러운 자세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수학 문제 정답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을 보고 나름의 충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라떼는, 그러니까 우리 때는 담배 피우는 건 노는 아이들이나 하는 일탈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노는 아이들도 공부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공원을 두 바퀴쯤 돌고 다시 동네로 걸어오면 11시가 된다.


그 쯤 되면 무슨 야시장 마냥, 놀이공원 야간개장마냥 활기를 띠던 동네는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다.


그래도 아직 아이들 몇몇은 동네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데


대부분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남자아이들은 게임을 하는 것 같고, 여자아이들은 인스타를 하느라 바빠 보인다.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아 뜬금없이 남의 아파트 현관 앞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볼 때도 있다.


어떻게 거기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을 알게 된 건지.


아이들의 대단한 과제집착력에 동네 아줌마는 놀라울 뿐이다.


이 시간은 아이들의 비밀이 밝혀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엄마는 휴대폰으로 아이의 위치를 찾아가 멀리서 염탐을 하고 오기도 하고


어떤 엄마는 아이가 밖에서 옷을 갈아입었는지 짧은 치마와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엄마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어떤 커플과 마주치기도 했다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인기도 많은 동네 남자아이가 차마 믿기 힘든 장문의 욕설을 내뱉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의 일상은 의외로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고.


굳이 어른들이 몰라도 되는 세계 또한 있으며.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닌 이상,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할 일들도 정말 많다.


어쩌면 그게 예의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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