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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뒷모습

- 단단하게 자라렴, 내 아가야.

by 딥그린



요즘 평일 오전 일과는 남편에게 분노의 카톡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분노의 원인은 어떻게 보면 소소하다.


전기장판을 최대치로 올려놓고 안 끄고 나간 우리 아들.

방바닥에 발 닿을 곳 없이 책들을 어질러 놓고 치우지 말라고 말하는 우리 아들.

학교 등교 시간 5분 남았는데 운동화 신고 있는 우리 아들.

학원 시험 망쳐놓고 세상 당당한 우리 아들.


그래, 뭐 이게 죽고 사는 일도 아니고. 내가 더는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니 흘려보내야지.

그러니 소소한 일일 뿐이다.


이 속 터짐을 남편과 공유하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고 하루를 시작하고

다시 오후 4시 30분을 기점으로 2차전이 시작된다.


늘어놓고 싶은 잔소리는 100가지가 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으므로 고르고 골라 급한 건들만 2~3가지 모아 최대한 조심스럽게 아이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을 건네지만, 아이의 대답은....


"엄마는 왜 이렇게 화가 많아."


엄마도 예전엔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어, 아들.

그런데 언제까지 채소는 먹지 않을 거니.

인스타 사용 시간은 왜 이렇게 많니.

옷은 벗어서 왜 이렇게 두는 건데.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남편과 다시 분노의 카톡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문득.


창문을 열고 셔틀을 타러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터덜터덜 걸어가며 그 와중에 학원 시험 걱정은 되는지 슬쩍슬쩍 손에 든 교재를 확인한다.


같은 셔틀을 타는 아이가 바쁘게 뛰어가는 걸 보고서 얼결에 뒤따라 조금 뛰다 다시 걷는다.


그러면서도 자주 가는 가게 앞을 지날 때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다시 교재를 확인하는 아이의 어깨가 조금 쳐진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아이가 한 걸음 한 걸음 단단하게 땅을 딛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화로 뜨거웠던 마음이 사그라들고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된다.


종교는 없지만, 기도하는 내 진심 어린 마음이 어딘가에 닿아 우리를 지켜줄 것만 같다.


시간이 참 빠르네, 벌써 11월이야. 하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수험생과 수험생 학부모로 버텨나가야 할 1년은 생각하면 막막하고 까마득할 때가 있다.


작년 11월의 마음이 지금과 달랐듯, 내년 11월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그때는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안타까움이나 측은함 없이, 온전이 기쁨과 뿌듯함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렇게 바라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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