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
"아, 할 거 너무 많아!"
며칠 전, 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서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동안 수학 수업을 듣고 온 뒤였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몇 번 있었다고 해도 짧지 않은 시간이란 걸 알고 있다.
나도 몇 번 학원 설명회를 갔다가 그 작은 의자에 2시간을 앉아있고 나서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왔던 적이 여러 번 있었으니까.
"이제 또 영어 숙제 해야 돼. 으아, 진짜!"
그렇게 학원 수업을 듣고 와서 또 쌓여있는 학원 숙제를 해야 하는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볼 때였다.
"아, 진짜 오늘 할 거 너무 많은데 나 일단 유튜브 좀 보고 쉴게요."
습관이다. 이미 아이와 약속한 휴대폰 사용 시간은 초과한 상태.
그런데도 이런 틈을 타 아이는 유튜브를 보고 쇼츠를 보고 게임을 하려 한다.
단호하게 그건 안되고, 잠깐 간식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산책이라도 다녀오자 했더니 그건 싫다고 한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공부하지 않았지? 진짜 좋았겠다."
하고 묻는다.
'엄마는 이렇게 공부해보지 않아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라고 묻는 것 같아 '아니',라고 힘주어 답했다.
"엄마도 비슷하게 했어. 월화수목 학원 갔었고, 주말에도 학원 있었고 전 과목 거의 다 다녀서 숙제는 얼마나 많았다고. 그런데도 테스트는 늘 통과였지."
"그걸 다 해냈다고?"
"당연히 다 해냈지. 학교 갔다 와서 복습도 하고 아침에 예습도 했는데?"
"... 진짜?"
"응. 진짜."
아이는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냈지만, 나는 지지 않고 거짓 없이 결백하다는 듯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아이를 바라봤다.
"아, 진짜 숙제 너무해."
아이는 소파에 한참을 누워 있다가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더는 설득하거나 아이를 달래려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을 만났다.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철없이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게 된다. 그러면서도 뒤끝도 없고 부끄러움 따위도 없는 편한 사이가 참 좋고 감사하다.
한참을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 이야기가 시작됐다.
요즘 애들 공부할 게 너무 많다, 학원도 많고, 선행 속도도 너무 빨라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속상해하다가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그때 동네 꽤 큰 학원을 함께 다녔었는데, 그때....
"그때 우리 편의점 갔다가 눈 온다고 한참 놀다 수업 들어간 거 기억나?"
"기억나지. 너 쉬는 시간에 만날 학원 숙제 베끼느라 바빴던 것도 기억나?"
"그렇지. 내가 진짜 그 학원 전기세 다 내줬지."
"A 기억나? 걔는 학원비 몰래 빼돌리고 놀러 다니다 엄마한테 걸려서 엄청 혼났었잖아."
"어우, 난 만날 시험 통과 못해서 진짜 겨우 셔틀 마지막에 타고 울면서 집 갔었어."
쌓인 이야기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데 그때마다 서로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이 얘기, 우리 엄마들이 들으면 기절하시겠다."
"그렇지. 모르는 게 약이지."
그러다 서로 잠깐 말이 없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맞겠지?
"우리 아이들인데 어련하겠니."
"안돼. 그런 저주는 내리지 말아 줘."
"우리 애는 아빠 닮았어."
그게 뭐 재밌는 이야기라고. 또 서로 배를 잡고 웃다 보니 벌써 헤어질 시간이다.
아쉬움이 가득한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부러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 가게에 들러 조각 케이크를 여러 개 포장했다.
세상의 모든 진실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거짓이 더 달콤한 위로가 될 때도 있는 법.
많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케이크를 건넨다.
(이미지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