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라리 개를 키울걸, 하고 관식이 엄마가 말했지.

여보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울까?

by 딥그린



첫째 일로 마음이 무거워 저녁 산책을 나가는 길에 둘째 전화를 받았다.


친구들이랑 운동 끝나고 집에 오고 있는데 목이 너무 마르다며 음료를 사 마시게 돈을 보내달라고 했다.


몇 번 용돈을 주다가 금방 쓰고 더 달라 조르는 통에 필요할 때마다 돈을 보내주기로 했더니 끝이 없다.


조금 참고 집에 와서 마셔,라고 말해봤자 듣지 않는다.


그럼 편의점에서 물 사 마셔,라고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이가 원하는 건 달콤하고 양 많고 초코 들어간 음료.


목이 마르다고 말하는 건 물이 아닌 다른 음료를 마시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 엄마들이 쓰는 돈 보다 애들이 먹고 마시고 쇼핑하는데 쓰는 돈이 더 많다고 한탄하듯 말할 때가 많다.


아이들이 너무 풍족하게 자라서일까. 둘째 친구들을 보면 아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런 성향의 아이들끼리 뭉쳐 다니는 건지. 아니면 용돈을 아껴 쓰는 아이도 그 틈바구니 속에선 티를 내지 못하는 건지.


학교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돈 아껴 써라, 핸드폰 그만해라, 공부한다고 노트북 가져갔으면 다른 거 하지 마라. 이 잔소리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거기에 쓰는 에너지가 아깝고, 피로해지는 관계가 안타깝다.


실랑이를 벌이다 적정선에서 타협한 금액을 송금하고, 몇 분 있다가 아이에게 급하게 물어볼 게 생각나서 전화를 했더니 받지 않는다.


사춘기인 둘째의 핸드폰은 송신용일 뿐, 수신용이 아니다.


급할 때, 필요할 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니 엄마만 분통이 터질 뿐이다.


결국 오늘도 산책을 마치고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는 전화도 받지 않고, 콜백도 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아파트로 들어서는데, 알고 지내던 엄마가 웬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복슬복슬한 털 하며 쏙 내민 분홍 혀하며 빨빨빨빨 걸어가는 짧은 다리까지 너무너무 귀여운 강아지였다.


나도 모르게 방긋방긋 웃게 된다. 엔돌핀이 돈다. 행복하다. 남의 집 강아지인데도.

내가 오늘 몇번 웃었었나, 생각해 본다. 화를 냈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강아지 키웠어요? 하고 묻자, 얼마 전에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데려온 강아지라며 얘가 요즘 우리 집 효자예요, 애들보다 나아요.라고 농담 같은 진담을 건네고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동네 공원을 가면 애들보다 개가 더 많이 보인 지 오래였고, 아기 유아차보다 강아지 유모차가 더 자주 눈에 띄는 것 같은데. 나 빼고 다들 강아지와 행복했던 것인가.


폭삭 속았수다에서 관식이 엄마가 차라리 개를 키우지, 하고 말할 때 너무 웃긴다, 하고 웃어넘겼는데 그 말을 오늘 내가 하고 있다.


여보, 우리도 강아지 데리고 올까? 하고 물었더니 남편이 대뜸 어, 난 리트리버 키우고 싶었는데. 하고 말한다.


내가 말한 건 작고 귀여운 소형견이었어, 여보.


아무래도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아 강아지를 데려오는 건 조금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이미지 : pinterest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9화첫째와 둘째를 대하는 엄마의 마음가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