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바랄 걸 바라야지. 넌 가야 할 거야.
추석이다.
이곳저곳에서 고3이라, N수생이라, 고2라, 입시 준비하는 중2, 3이라, 또 중간고사가 하필 추석연휴 바로 뒤라(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부럽다. 행복을 만끽하시길!) 시가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말들이 들린다.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건 육체적으로도, 또 정신적으로도 고된 일이지만 또 이렇게 추석연휴에 시가에 가지 않아도 되는 걸 보면 모든 일에는 정말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가 싶기도 하다.
시가가 너무 편하고 좋은 사람이 있다면 전생에 어마어마한 복을 쌓은 사람이 분명하고.
꼭 그래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너무 부럽다. 흑흑.
나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까지는 아니었어도 독립운동가셨던 누군가를 꼰지른 게 분명하다.
우리 집은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래도 시댁이 멀지 않아 꼼짝없이 추석에 시가를 가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일만 가면 된다는 것.
오가는 길 차가 밀릴까 걱정하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
그게 또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 가까운 만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정말 자주, 아주 자주, 남편의 부모형제들과 만나야 할 일정들이 잡히게 된다는 것.
거의 매주 주말을 시가와 함께한 적도 있었고 매번 휴가도 함께 가야 했고 아이들이 더 아기였던 때에는 일주일에 3, 4일 만나는 건 기본이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시댁과의 관계도 많이 달라짐을 느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사촌들과 놀게 해야 한다는 시부모님의 주장에 따라 명절이면 꼭 1박 2일을 했어야 했다. 굳이. 정말 굳이.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 외박 짐을 싸는 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옷이며 장난감이며 더 어릴 땐 여벌옷 짐과 기저귀와 이유식까지 미리 만들어 준비해야 했고, 조금 커서는 아이들 게임기, 장난감 짐도 가방으로 하나였고.
아이들이 모여서 재밌게 노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잘 맞는 아이들이 있고 잘 맞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 아이들은 후자에 가까웠다.
그러니 하는 거라곤 다 같이 모여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각자 게임을 하는 게 대부분.
방도 넉넉하지 않아 잠도 편하게 자지 못하고, 샤워는 더더군다나 마찬가지고.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겠지만....
우리 시가는 아이들 간의 비교와 선을 넘는 평가가 일상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 며느리로 머문다는 것은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고 화가 치솟아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이런저런 불편함이 있으니 밤늦게까지 머물다가 집에 가서 씻고 잠만 자고 새벽에 다시 오겠다고 말을 하기까지는 정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아주 불편한 순간들이 있었다.
정말 그간의 시간들은....
나의 출산일부터 지금까지 시가와 있었던 일들은 장편소설 몇 권을 쓰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이야기들이 쌓여 있다. 언젠가 그 일부만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때, 친구가 아침드라마가 없는 얘기를 꾸며낸 게 아니었구나, 그런 말을 했을 만큼.
아무튼.
그나마 아이들이 크고, 그런 아이들의 눈과 귀와 입이 무서워진 남편의 부모형제들은 조금씩 말을 조심하기 시작했으나,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내일도 어떤 말과 어떤 평가와 어떤 지레짐작이 오고 갈지, 얼마나 서로를 깎아내리려 할지. 걱정 반 피로함 반이다.
그나마 여기서 얻은 게 있다면
그런 시가의 모습을 고찰하며 나는 그 원인 중 대부분이 시어머니의 육아방식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는 그런 결과를 내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서로 시기질투하지 않도록, 경쟁하지 않도록, 절대 비교하지 않고 각각 서로 다른 예쁜 꽃을 피우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애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되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고.
앞으로 겪어나갈 시간들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더는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고 부딪치면 될 것이고(싸우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어렵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
그것뿐이다.
더는 바라고 싶지 않고 바라는 것 또한 없다.
(이미지 :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