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서로를 조금씩 어엿브게 여겨준다면.
누가 봐도 완벽한 아이가 있다.
하얗고 작고 예쁜 얼굴에, 성실하고, 성격 좋고, 발표 잘하고, 말도 잘하고, 국영수과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두루두루 잘하고 가족도 화목하고 엄마, 아빠도 참 괜찮은 사람이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유니콘 같다 여겼고, 엄마들은 그 엄마를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저렇게만 유지한다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의 가고 싶어 하는 학과를 가게 될 테고, 그 아이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멀게만 느껴지던 그 엄마와 우연히 차를 마시게 되었다.
요즘 아이 챙기느라 바쁘죠,라고 안부를 묻자 그 아이 엄마는 이런저런 라이딩 일정을 말하다 말고 실은, 하고 운을 띄웠다.
아이의 멘털이 많이 흔들려 작년 한 해를 온 가족이 살얼음 걷는 것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아이의 몸 이곳저곳에서는 탈이 났고, 덩달아 엄마도 아이를 돌보느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했다.
좋다는 치료는 모두 찾아 받으며, 시간이 약이란 말에 의지해 백조처럼 버틴 시간이라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쉴 틈 없이 발을 저으며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날들을 보내며 이게 맞게 가고 있는 건지 매일을 의심했다고 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끝나고 다시 학교에서 픽업해 밥을 먹이고 학원에 데려다주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건지, 그러니까 언제까지 아이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건지 늘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했다.
사실은 우리 집도,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누가 누가 더 불행했는지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그 엄마의 아픔을 위로하는 게 지금은 맞겠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전교 1등이잖아,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지켜낸 전교 1등이라는 자리지만, 엄마에게는 아이의 건강과 전교 1등 중 무엇이 더 소중하고 간절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다.
그 무게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어느 집이나 고민 한 덩이씩은 끌어안고 있다.
특히나 고등학생을 키우는 집들은 더더욱.
속사정을 모르는 엄마들은 여전히 전교 1등 아이 집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샘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 아이는 학원 테스트에서 당당히 1등을 하였으니까.
그러나 그 뒤에 숨은 노력과 고통과 인내를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기에.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마음을 다해 그 아이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었다.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에게서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아 타고난 공부 재능으로, 그냥 하다 보니 이루어낸 1등이 아니라 정말 제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아이가 만들어 낸 1등이란 걸 아니까.
그렇게까지 힘들게 공부를 했으니 내 아이가 아닌 네가 1등을 했더라도 인정하고 기꺼이 박수를 쳐 줄 수밖에.
참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지내는 것도, 키우는 것도 고단하고 지난하다.
이래저래 마음이 힘든 요즘, 엄마들이라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다면 살짝 접어두고 서로를 조금씩 어엿브게, 그러니까 가련하고 불쌍하게 여겨준다면 이 시간을 조금은 덜 힘들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작은 마음만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