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낯선 데이트
며칠 전 엄마랑 통화를 끝내려는데, 아참, 하고 엄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곧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는데, 그때도 '작년처럼' 엄마와 아빠, 나 셋이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자는 말이었다.
"엄마 아빠 둘이서 데이트하지 왜 나를 끼워 넣어?"
하고 묻자, 엄마는 이런 때 비싸고 맛있는 식당 가는 거지, 근데 늙은이들 둘이 가면 뭐 해. 너랑 가서 같이 맛있는 거 먹는 게 좋지. 그렇게 답했다.
작년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무슨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내게 엄마는 다 되었다며 엄마 아빠 둘이 가보고 싶던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 요리를 먹을 건데, 시간 되면 나도 같이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화를 하며 무심코 레스토랑 이름을 검색한 나는 평일 런치인데도 놀랄만한 가격표를 보고 아니, 이렇게 비싼 밥을 굳이 왜 나까지 같이 먹어. 두 분이 오붓하게 드시지.라고 그때도 말했었다.
평소 사치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엄마의 성격에 이런 레스토랑을 선택한 것도 놀라웠지만, 나까지 같이 식사를 하자는 말은 더 의아했다.
로또라도 맞은 건가? 동생과 통화하며 나는 이렇게 말했고, 동생은 로또 당첨되었으면 당첨되었다고 바로 말했겠지 엄만! 하고 웃어넘겼다. 그만큼 엄마의 제안은 낯선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와 밖에서 식사를 한 적도 많았고, 언젠가 호텔 브런치를 먹으러 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다 같이. 그러니까 엄마 아빠와 나와 우리 가족, 동생과 동생 가족, 남동생까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요리조리 쪼개져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식사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결혼하기 전. 아주 오래전에는 종종 있었던 일일지도 몰랐다. 너무 일상이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런 일.
하지만 결혼을 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러니까 내가 친정을 떠난 이후로 이렇게 세 사람의 식사는 처음인 것 같았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순서대로 나오는 식사를 맛있게 먹었고, 각자 취향 것 고기와 생선을 고르기도 했고, 예쁜 디저트를 보고 감탄했고,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감동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면서 내내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생각이 있었다.
1남 2녀 중 첫째 딸로 늘 동생들과 함께였던 나는 이렇게 엄마 아빠와 셋이 단출하게 있는 시간이 낯설면서도 평온하고 충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온전한 사랑을 받는 느낌이랄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엄마, 아빠의 시선은 오직 나만을 향해 있었고, 엄마 아빠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그날 나의 일정들 뿐이었으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언젠가 내가 태어나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 우리 가족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셋만이 가족으로 존재했던 시간.
셋도 좋지만 나 하나뿐인 그 시간도 평온했고 행복했다.
그래서 이번 결혼기념일 식사도 함께 하자는 엄마 말에 괜히 또? 그냥 둘이 먹지,라고 퉁퉁거리며 답했지만
그러면서도 캘린더를 열어 일정을 체크해 둔다.
마흔이 훌쩍 넘은 딸이지만, 그날은 또 엄마 아빠의 아기처럼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지.
온전히 나만 누리는 큰 사랑을 받고 와야지.
그리고 그 힘으로 내 아이들을 오롯이, 각각, 온 힘을 다해 사랑해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