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폭탄과 무기만 없을 뿐. 전장이 따로 없다.
요 며칠 2026년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요란한 결정들이 많았다.
지난주는 내내 이 상태로 몇 달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내년 일정들에 대한 피로도는 높은 상태다.
아이 친구 엄마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있다.
별다른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하하 호호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또 아쉽게 손을 흔들고 인사하는 사이였지만 아이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일이 생겼다.
아이들의 성향도, 그 엄마와 나의 성향도 잘 알기 때문에 시작부터 걱정이었다.
아니, 그래서 시작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결정을 내린 건 아이들이었고, 아이들의 일이니 어른들은 그저 따를 수밖에. 그렇게 상황이 흘러갔다.
그리고.
걱정이 많은 그 아이의 엄마의 전화와 카톡이 시작됐다.
소소하게 넘길 수 있는 일들도 숨 넘어가는 목소리와 함께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할 거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알고 있었냐고 묻는 연락들에 금세 나는 지쳤다.
그저 어른들이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어떤 일들은 알아도 모르는 척 시간이 흘러가게끔 내버려 둬야 하는 일들이 있다.
대범한 사람이어서도, 관심 없는 사람이어서도, 분쟁을 싫어하는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아이들의 몫인 일이 있는 것이고 어른들이 입을 보태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일이라 그렇게 지켜보는 것이다.
이미 해봤기 때문에. 겪어봤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향 차이일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엄마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이야기하는 아이와 스스로 해결하고 조언이 필요한 일들만 엄마에게 묻는 아이의 차이.
아무튼 이럴 줄 알았고, 결국 이렇게 되었다.
참다 참다 말투가 뾰족하게 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하라고.
답은 내 추측과 같았다. 그냥 걱정되고 어이없어서 연락을 한 것뿐이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30분씩, 40분씩 전화를 걸어 똑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건 아주 당연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그러고 나서 결국 그 엄마는 선을 넘었다.
본인의 아이가 네 아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라,라고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였고 나는 나와 당신이 상황을 전혀 다르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중요한 것보다 본인의 아이 말만 듣고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그 엄마의 태도가 아쉬웠다.
100만큼 행복했지만 1만큼의 불행이 가끔 마음을 휘저어 놓을 때가 있다.
요 며칠 다른 모임에서 다정함을 느끼고, 함께 아이들을 키워가고 있다는 보람과 기쁨에 행복했던 육아가 이 하나의 사건으로 몸과 마음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저께 우연히 만난 그 엄마는, 이 일에 대해 다른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갓.
그저 이 일들로 인해 내 화와 피로와 분노가 아이에게 닿지 않기를.
너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탓하지 않기를.
그러니까 넌 더 잘해야 한다고 재촉하지 않기를.
그러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주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