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 항목 중에서 아직은 일치하는 항목들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은 아닌 것 같지만 요즘 들어 가끔 내 감정의 변화를 감지하자면 이제 갱년기가 온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사실 검색창에 갱년기라는 단어를 검색해 본다는 것 자체가 갱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긴 한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자퇴, 이성문제등 고민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얌전하고 무난하게만 자랐던 아들만 생각하다가 너무 갑작스럽게 생각할 일들이 많아져서 뒤숭숭하기만 했다. 사춘기를 대하는 엄마의 어려움은 부모 되기가 쉽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만나는 아이도 힘들 테니 그 앞에서 특별한 티를 내지는 않았다. 나 혼자 신경 쓸 일이 많아지니 내심 예민해졌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갱년기로 의심했고 마침 부인과 정기검진을 갈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 저 갱년기가 온 건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니, 제가 요즘 짜증이 많이 나서요."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대답의 설득력은 좀 부족했다. 역시나 선생님은 호르몬 수치를 보시더니 아직 아니라고 하셨다.
멋쩍은 웃음으로 다행이구나 싶으면서 "아, 그냥 아이가 사춘기라서 저도 생각할게 많아서 그랬나 보네요" 하고 병원을 나왔다. 요즘 생각이 많은 내 심리상태의 속상함을 갱년기를 탓하며 그렇게 묻어가고 싶었나 보다.
나는 속이 어수선할수록 혼자 시간을 가지려고하는 편이다.
결국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고 느끼기때문에 틈틈이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한다.
병원에서 나와 커피숍에서 카모마일 티를 시켜놓고 차분히 나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요즘 나는 전과 조금 달라졌다. 인내심이 약해진 것일까. 사춘기 아이처럼 반항심이 왜 갑자기 생긴 것일까' 속으로 이런저런 독백들을 하면서 나를 보았다.
요즘 나의 상태를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지시형으로 말하면 반항심이 생긴다. 이런 반응은 누구나 느끼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도 둥글한 성격으로양보를 하는 게 어렵지 않던 사람이었고 반항심도 그다지 없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중간에서 이쪽저쪽의 입장을 배려하고 내 감정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상태가 싫다. 겉으로 표출하는 성격보다는 속으로 생각하는 성격이라 아마도 내심 나도 모르게 답답했던 갈증 같은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서 내 감정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서서히 지친 것 같다. 중간에 끼는 느낌 같아서 짜증도 나기 시작했다.
점점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이제는다른 사람한테도 마냥 편한 사람으로 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람의 심리가 묘하게도 양보를 잘하는 사람이 그동안 양보를 해줬기 때문에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보다는 갑자기 양보를 안 하면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태도에 조금 분명해지고 싶어 진다.그래서 음식점에서도 메뉴를 고를 때도 이제 더 이상은 '아무거나'라고 하고싶지 않다. 그동안은 보통의 엄마들처럼 외식 메뉴를 고를 때도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는 남편과 아이가 원하는 메뉴 위주로 선택했다면 요즘은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추천하고싶어 진다. 이제는 나도 나의 만족감을 존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슬슬 반항심처럼 솟구치고 있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동안 잊고 있던 나를 사소하게라도 찾고 싶어 하는 기운이 찾아오는 것이 갱년기가 오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조금씩 새롭게 만나러 가는 것 같다.
거짓말처럼 믿기 어렵게 내년이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나스스로 나를 좀 챙겨주고 싶다.그래서 전과 다르게 나는 구체적으로 요구하며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