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을시 시월분 흐림초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대하여

by ㄹㅏㅇ

오늘은 네가 태어난 지 618일째 되는 날이다. 1년 8개월 하고도 9일이 되는 날이지. 그동안 너는 태어나고서 사계절을 모두 한 번씩 경험을 했고, 이제 생애 두 번째 가을을 보내는 중이란다.


아직 아직 달력이나 시계를 볼 줄 모르는 너는, 요즘과 같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참 궁금하구나.


우린 지금,

한국에서 1년에 존재하는 4개의 계절 중 세 번째 가을이라는 계절 속을 보내고 있다.

1월부터 시작해서 12월로 끝나는 양력의 시간 중 10월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있고-

24절기 상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진다는 추분을 지나서, 이제는 낮보다 밤이 더 긴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너에게 느껴지는 일상 속의 변화로 표현하자면, 이제 더 이상 짧은 반팔의 옷이 아니라 긴소매의 웃옷과 바지를 입고 있어. 놀이터에서 뛰어놀 때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방울도 사라지고, 밤에는 혹시라도 추울까 봐 이불을 잘 덮어서 자고 있단다. 혹여나 밤사이 네가 발로 이불을 차 버리진 않을까, 그래서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는 시간이란다. 밤새 열어놓던 창문도 이제는 꼭 닫아놓고 있지.


10월의 가을을, 너와 함께 그렇게 보내고 있단다.



돌이켜보면 계절의 변화는 늘 몸으로 느끼곤 했다.


뜨겁다며 피하기만 하던 햇볕을 부러 찾는 모습을 보면서 가을이 왔음을 느끼고, 쌀쌀해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 겨울이 다가옴을 알게 됐지. 나뭇가지에 맺힌 꽃망울이 눈에 들어오면 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단다. 달력의 날짜가 몇 월인지, 오늘이 며칠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지.


계절이 변하면서 아빠가 하던 일은 바로 옷장 정리였어. 한 계절 입은 옷들을 정리해서 집어넣고, 다시 한 계절 입을 옷들을 꺼내놓았다. 마치 마음을 정리하듯이, 한 계절 입지 않은 옷들은 버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계절이 몇 번 지나고 나면 정리된 옷장처럼 아빠의 마음도 정리되는 느낌이 들곤 했어.




아빠는 네가 그랬으면 좋겠다.

시간의 흐름을 시곗바늘의 위치로 확인하지 않고, 계절의 흐름을 달력의 숫자로 확인하지 않고, 몸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피어나는 꽃으로 봄을 느끼고, 울어대는 매미소리로 여름을 알고, 길어지는 햇살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불현듯 지나갔음을 느끼는 게 아니라, 천천히 변화를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이다음에 아빠가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단다. 바로 일년시계를 만드는 거야. 늘 12시가 한가운데에 있고 시침과 분침으로 움직이며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아니라, 계절이 담겨있는 시계. 일년시계의 시작은 네가 좋아하는 계절이면 좋겠다. 침은 그냥 하나면 충분할 거야. 지금이 어느 계절 즈음 지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그리고 계절 별로 네가 좋아하는 풍경이 담겨 있는 거지. 그리고 일년시계의 가을은 분명히 푸르디푸른 하늘일 거라 생각한다.


아빠는 오늘도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계절의 지나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매일매일 하늘 사진을 찍고 있단다. 너와 함께 만드는 일년시계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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