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찬란한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기를
6월 대만을 시작으로 변우석의 글로벌 팬들을 여름 내내 들썩이게 한 아시아 팬미팅 행사가 지난 9월 일본 도쿄에서 막을 내렸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그대로 담은 변우석의 팬미팅 릴레이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동안, 모든 무대에서 빛이 나는 멋진 착장과 외모에 감탄했고 팬들을 향한 다정하고 순수한 미소에 감동하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깊이 와닿은 건 보석 같은 그의 눈에서 철철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무엇이 34세의 다 큰 남자(그것도 190cm의 덩치 커다란 남자)를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게 하는가.
팬미팅 전에도 그는 여러 차례 방송과 공식행사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변우석을 스타덤에 오르게 해 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최종화 단체 관람 이벤트에서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보였고, 방송 <유퀴즈>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기도 했다. 팬미팅에서는 그야말로 '울보 변우석'의 연속이었다. 팬들이 준비한 영상을 보다가, 공연 막바지 인사를 하다가, 서울에서도,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대만 타이베이에서도, 가는 곳마다 그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팬미팅 중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보였다고 밝힌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다. 초반에는 변우석이 수많은 팬들을 앞에 두고 행복한 마음이 벅차올라 절로 눈물이 나는구나 싶어 나도 함께 뿌듯해하곤 했는데, 팬미팅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도 계속 눈물짓는 모습을 보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변화에 그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8년간 묵묵히 연기 활동을 하며 누구보다 기다려왔을 빛나는 순간이지만, 롤러코스터처럼 급히 올라갔다는 생각에 아찔한 추락을 혹시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선재 업고 튀어>의 크나큰 성공이 차기 활동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을 바라보며 환호하는 이 수많은 팬들이 신기루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봐 혹시 걱정하고 있는 걸까.
9월 말 일본에서 열린 마지막 팬미팅에서 인터뷰 도중 했다는 말은 더욱 맘에 걸렸다. "30대의 마지막에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팬미팅을 하고 싶다"라고 대답하다가 "근데 안 오실 거잖아요~"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현장에서 직접 듣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단순히 장난으로 얘기한 건지, 팬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저 던진 말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몇 년 지나면 오지 않을 팬들'을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오지랖 넓은 팬은 마음이 쓰였다.
임포스터 증후군 또는 가면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증상이 있다. 자신이 이룬 성과를 과소 평가하고, 지금의 성공은 일시적인 행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가면 증후군을 가진 이는 실력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나란히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사기꾼과 같이 느끼며, 언젠가 내 가면이 벗겨져 형편없는 본 실력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한다. 그래서 정말 본인이 잘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데도, 그저 자신이 운이 좋아서, 어쩌다 얻어걸린 성공일 뿐이라고 자신의 노력을 평가절하하고 본인을 비하한다. '난 원래 이런 걸 얻을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데.' 라며.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혀 온 걱정과 염려가 이런 임포스터 증후군의 양상이라는 걸 불과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해서 한 순간에 고치기는 쉽지 않아서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추락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변우석처럼 대스타의 반열에 오른 것도 아니지만, 지금까지 소소하게나마 이룬 것들을 한 순간에 잃을까 봐, 운이 좋아 이리저리 묻어서 얻은 것들을 언젠가는 내놓아야 할 것 같아 늘 두렵다.
인간 변우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가 나처럼 바보 같은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지, 아니면 나 같은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심지 굳은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팬들의 크나큰 사랑에 감격스러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살짝살짝 비치는 염려의 눈빛이 나만의 착각이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아시아 곳곳에서 성황리에 열린 팬미팅,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지는 광고, 지금의 대단한 인기가 영원할 것 같지 않아 가끔 울적할 때도 있으려나 싶은 건 내 지나친 기우이기를. 변우석이 지난 세월 땀 흘려 이룬 이 모든 것들을 지금만큼은 한없이 즐기고 누렸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평생 잊지 못할 '선재'라는 캐릭터가 선물이 아니라 발목을 잡는 족쇄로 변할 것 같은 불안이 변우석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면 꼭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만에 하나 생각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괜찮다고, 그 또한 다음번에 더 높이 뛰기 위해 쉬어가는 시간일 뿐이고 팬들은 응원의 박수를 힘껏 보낼 거라고. 넘어지더라도 곧 툭툭 털고 일어날 당신을 믿는다고. 그리고 아마 넘어질 일도 없을 거라고. 마지막으로 30대의 마지막 생일 때 할 팬미팅은 제발 한국땅에서, 아주아주 넓은 곳에서 열어달라고. 그때도 티켓 구하기가 너무너무 힘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