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기록

가장 신기했던 꿈 세 가지

by 마이즈

일본의 호러 만화가 이토 준지. 그의 개성 넘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와 스토리를 좋아한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 역시 러브크래프티안이기에 코스믹 호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이토 준지의 작품 중에서 '기나긴 꿈'이라는 단편이 있다. 요약하자면 매일 점점 더 긴 꿈을 꾼다는 내용이다. 결국은 꿈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길어지는 순간에 도달했고, 깨어날 때마다 현실과 꿈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이 만화를 보며 크게 공감했다. 나 역시 독특한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으니까. 내가 그동안 꾼 꿈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1. 김일성 수령의 방문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을 다닐 때였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고 북한의 수장이 김일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반공 만화나 삐라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꿈에 김일성이 등장했다. 나는 2층 창문에서 우리 집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이터가 보이는 그 창문이었다. (창문, 놀이터 그리고 손가락들) 대문이 열리며 수행원들을 대동한 김일성이 들어왔다. 잔뜩 겁먹은 부모님들은 2층으로 달려 올라왔고 아버지가 나를 낚아채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에서 끝이었다면 단순한 꿈이었겠지. 하지만 김일성이 집에 찾아오는 꿈은 몇 주 혹은 몇 달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두 번째 꿈에서는 문을 닫으려고 뛰어 내려갔지만 실패했다. 순서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꿈이 시작될 때마다 나의 행동은 달라졌다.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고, 지하실로 숨기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인 플레이 모빌 ‘철이’를 주며 살려달라고 빌기도 했다. (맨션 오브 서교) 가장 충격적인 꿈은 김일성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선물 보따리를 들고 들어오는 내용이었다. 꿈의 첫 장면과 등장인물은 매번 같았지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 그 이후의 내용은 항상 달랐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면 매번 생각했다. 이번에도 실패했네.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꿈의 반복 주기가 짧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길어졌고 나중에는 간격이 1년 가까이 늘어나기도 했다. 결국 서교동 집을 떠나게 되며 이 꿈의 반복은 멈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김일성 사망 뉴스를 본 어느 날, 혹시 오늘 밤 꿈에 다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시는 같은 꿈을 꾸지 않았다.

2. 얼굴을 볼 수 없는 그녀


꿈이 시작된 것은 게임 업계를 떠나 공장으로 가면서부터였다. (멈춰버린 게임 라이프) 첫 번째 꿈에서 나는 어떤 학교 기숙사 중앙 홀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 중앙에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조금 더! 나도 모르게 한발 한발 다가서서 얼굴을 보려는 순간, 극심한 공포와 함께 깨어났다. 처음에는 단발성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두 번째 꿈에서는 VR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참 하던 중 누군가가 내 앞에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어쩐지 그녀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머리에 쓰고 있는 HMD를 벗으면 그녀를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얼굴을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버티려 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 HMD를 내 머리에서 떼어냈다. 이번에도 극심한 공포와 함께 깨어났다. 세 번 째는 고깃집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녀를 연예인들이 소개해주려고 했고, 네 번 째는 동생이 그 여자에 대해 알려주자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다섯 번 째는 횃불이 가득한 지하 복도에서 그녀가 다가오는 꿈이었다. 당시에도 기묘한 기분이 들어 이 모든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해 두었다. 매번 그녀의 얼굴을 보려는 순간 극심한 공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반복되었다.

당시 나는 정신 적으로 구석에 몰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꿈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면 매일 죽음을 원하는 나를 데리러 온 것은 아닐까? 누굴까? 어쩌면... 문득, 먼저 떠난 그녀를 떠올렸다. (네 이토록) 떠났을 때 슬퍼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걸까? 하지만 네가 슬퍼하지 말라고 했잖아.... 꿈은 이후 점점 더 심해졌고 급기야 백일몽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임을 하다가 잠깐 로딩을 기다리는 시간, 샤워 중에 갑자기, 전철을 기다리던 중에도 갑자기 그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인가 갑자기 그녀의 꿈이 끊겼다. 무슨 이유였을까? 시기로 보면 운전을 시작하면서 일수도 있고 검도를 배우면서부터 일수도 있겠다. 어쩌면 새로운 연인이 생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음을 풀어낼 무언가가 생긴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종종 이때를 떠올린다. 언젠가 내가 나약해질 때 다시 데리러 오는 것은 아닐까? 재판 때문에 힘들 때에는 그녀가 나를 데리러 와주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3. 무역상의 일생


마지막 사례는 이토 준지의 ‘기나긴 꿈’을 내가 특별히 공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에 나는 꿈을 길게 꾸는 편이다. 위 두 가지 에피소드가 특별했던 것은 반복되어서도 있겠지만, 꿈속에서의 시간이 짧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은 꿈속에서 최소 하루 이상을 보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길었던 꿈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40년가량을 보냈다. 시작은 태어나는 장면이었다. 이 때는 3 인칭이었는데 갑자기 아이 속으로 화면이 빠르게 이동한 기억이 있다. 나는 어느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다. 동양인이었고 아버지는 비단 장수였다. 어린 나는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10대에는 중국 항구에 옷감 가게를 차렸다. 아버지가 세계를 돌며 가져온 비단과 다양한 재질의 천으로 장사를 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배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앞으로의 제품 수급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건이 다 떨어지면 접는 수밖에. 가게 앞에는 바다가 있었는데 항상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와 가까워지며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우리가 가진 비단 위에 그림을 그리는 형태의 작품 활동을 했고 이 것이 크게 성공하며 부자가 되었다. 예술품의 가격은 비단을 파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는데, 다른 가난한 예술가들이 비싼 비단에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으니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다. 저택에 살며 하인을 둘 정도였고, 세상에 막 나온 자동차라는 것도 구매했다. 태엽을 열심히 돌려서 시동을 거는 구식 방식이었다. 시동을 거는 모습이 품위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운전수도 한 명 고용했다.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다가 40살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겼다. 비단에 옷을 그려 팔던 것을 눈여겨본 어느 옷 공장에서 그림이 들어간 옷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온 것이었다. 계약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나를 죽인 것이 누구인지, 왜 죽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총에 맞아 서서히 피가 번지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떴으니까. 이 긴 꿈을 꾸고 나서 한동안 현실과 꿈의 구분이 모호했다. 어느 쪽이 현실인가. 지금 내가 깨어난 이 세상은 총에 맞아 죽어가며 보고 있는 전생의 기억 같은 것은 아닐까? 물론 꿈속에서 365일 x 40년의 시간을 모두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일부는 생략되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꿈속에서 유년기와 청년기, 중년까지의 모든 경험을 했고 그 안에서 연애와 결혼과 육아까지 하는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생을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에서 본 비단 이름이나 도시를 검색했는데, 세상에 없는 이름들이었으니 그것도 아닐 게다. 이 길고 긴 꿈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구체적이고 또렷이 기억나는 꿈을 자주 꾼다. 융 학파의 정신과에 상담을 갔을 때 꿈 해석을 제안해 주셨으나 몇 번 진행 후 그다지 와닿지 않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이와 같은 반복이나 긴 시간을 보내게 되는 꿈에 대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꿈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유사 과학, 오컬트 이야기들을 읽었지만 여전히 납득할 만한 것은 없다. 지금은 그저 기록해 둘 뿐이다. 20년 이상 쓰고 있는 나의 블로그에는 꿈 이야기 폴더가 있다. 뭐, 애써 당장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 언젠가는 의미를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 꿈은 언제나 신비롭고 흥미로운 체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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