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될 수 없지만 보탬이라도 되기를
특별한 의도를 담고 쓴 글은 아닙니다만, 촛불 문화재에 참여했던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다루다 보니 각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불편하실 가능성이 있음을 밝힙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무엇에 겁먹은 걸까? 혹시 경찰인가? 나 역시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위협적으로 바닥이 울렸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달리면 땅이 울리기도 하는구나. 뒤에서 비명소리가 자꾸만 들렸다. 환청인가? 지금 시대에 전투 경찰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지는 않을 텐데. 거기까지 상상한 탓일까? 비명 소리에 더해 퍽퍽 때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잡히면 끝장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를 구해주는 히어로는 없을까?
“뽀빠이! 살려줘요!”
올리브의 외침에 뽀빠이가 등장한다. 블루토와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안 되겠다! 뽀빠이가 품에서 시금치 통조림을 꺼내 입에 부어 넣는다. 빠라라 빰빠밤~ 힘이 강해진 뽀빠이는 블루토를 날려버리고 올리브를 구해낸다. 이 장면을 본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시금치를 먹게 되었을까. 생각보다 많은 숫자가 아니었을까?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뽀빠이처럼 힘이 세지고 싶어!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무리 시금치를 먹어도 힘이 세지는 느낌이 없었기에 한참 머리를 쥐어짰다. 아, 뽀빠이가 먹는 시금치는 통조림이잖아? 접시에 담긴 것이 아니라 통조림에 있는 시금치여야 하는 거였어! 가정부 누나가 장 보러 갈 때 졸라서 같이 갔지만, 통조림에 담긴 시금치는 보이지 않았다. 나쁜 미국인들! 자기 들만 힘을 독점하려고 한국에 보내주지 않는 거야!
어디에서 알게 된 정보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개미를 먹으면 슈퍼 파워가 생긴다는 착각을 했다. 스파이더맨이나 앤트맨 같은 히어로물이나 만화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말에 과자를 마당 여기저기에 숨겨두었다. 유치원에 다녀오고 나서 과자를 찾아보면 개미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짓을 했다. 개미와 함께 과자를 먹었던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힘이 세지는 일은 없었다. 혹시 붉은 개미가 필요한 건가 싶어서 마당이 아닌 지하실에 과자를 두기도 했다. 너무 어릴 때라 별 생각이 없이 잔인한 일을 한 셈이다. 개미 입장에서는 거대한 거인이 자기 종족을 잡아먹기 위해 덫을 놓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조사 병단에게 공격당해도 할 말이 없다.
스파크맨 영화를 보고 와서는 더 기가 막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욕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벽에 있는 콘센트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한번 감전당해야 전기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콘센트를 찔러도 감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짝 찌릿하기는 했다. 이걸로 부족한가 싶어서 이번에는 욕조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갔다. 헤어 드라이기를 품에 안은 채. 하지만 감전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어릴 때라서 콘센트를 꽂아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수 차례에 걸친 초능력 얻기 시도가 실패하며 어린 나는 시무룩해졌다. 역시 나는 영웅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때부터 오랜 시간이 되어 긴 머리를 질끈 묶고 회사를 다니는 30대가 되었다. (왕자님의 사내 정치 입문기) 그즈음 우리나라에 큰일이 있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슈퍼 파워를 지닐 수는 없었지만, 모두의 힘을 모을 수는 있지 않을까? 그 안에서 작은 보탬이 된다면 영웅의 한 조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원기옥의 한 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목소리가 전해진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적은 가능성이라도 생길지 모른다. 마침 다니던 회사가 청계천 부근이었다. 덕분에 매일 퇴근하면 촛불 현장으로 달려갔다. 야근을 하는 날도 예외는 없었다. 탄흔의 회사에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료, 흰 늑대는 군복을 입고 촛불 예비군을 자처했다. (탄흔의 경유지) 전투 경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합류를 권했지만, 나는 촛불의 일원이 되기를 선택했다.
어느 날, 촛불을 들고 현장에 있다가 유모차 부대를 발견했다. 아기들이 있으니 오히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혹시 위험할 수도 있는 이런 곳에 아이를 데려온다는 사실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별의 큰 트라우마를 준 상대도 유모차 부대의 일원이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 역시 멋진 사람이었다. 그날 밤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전투 경찰들이 사람들을 밀어내며 전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몸으로 막아섰고 그 안에 나도 있었다. 밀리지 않으려고 몸싸움을 하다가 내 앞에 있는 전투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시위 현장에 나가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할 법한 그런 경험이었다. 이들과 싸울 필요는 없을 텐데. 본인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 텐데.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잖아. 불편한 마음에 몸싸움 현장에서 뒤로 빠져나왔다. 휴대폰이 울렸다. 당시 사귀던 연인의 연락이었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실시간 상황을 보고 있는데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위험해지면 돌아가겠다고 적당히 말했다. 잠시 후 흰 늑대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형님. 우리 예비군 있는 쪽으로 오이소. 지금 상황이 조금 위험할 것 같습니다. 감사 인사와 거절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행진 대열로 들어갔다. 인원이 하나 둘 빠지면 약해질 것이고, 그러면 오히려 더 진압당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었다. 영웅이 될 수는 없지만 HP + 1 정도라도 의미를 갖고 싶었다.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는 도중 물 대포 차량과 대치하게 되었다. 발포가 시작되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숨었다. 문득, 끔찍한 상상이 머리에 떠올랐다. 유모차에 물 대포가 맞기라도 한다면? 이 새벽까지 유모차 부대가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떠오른 끔찍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물 대포 정면으로 나서서 유인한 뒤, 나를 쏘려고 할 때 가로수 뒤로 달려가 숨을 생각이었다. 머릿속에서는 화려한 액션을 떠올렸다. 하지만 상상일 뿐이었다. 어? 하는 사이에 나의 유인은 끝나버렸다. 버티는 사람들도 있던데, 단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맞았는지도 모르게 이미 몸은 뒤로 넘어가 있었다. 배와 가슴, 등이 얼얼했다. 뭐? 등이라고? 선수 생명이 걸려있어! 이 와중에 떠오르는 게 고작 그거냐 이 오타쿠야! 상대에 대한 분노보다 나의 한심함에 짜증이 났다. 그 한 발에 전의를 잃은 채 터덜터덜 행진의 후열로 걸어갔다.
몸이 젖은 상태로 시간이 지나자 찝찝하고 몸도 으슬으슬했다.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에 집에 갈 수도 없었다. 일단 시청 광장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머리를 조금 식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멈춰 섰다. 갑자기 앞쪽이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겁에 질린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무엇에 겁먹은 걸까? 혹시 경찰인가? 나 역시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위협적으로 바닥이 울렸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달리면 땅이 울리기도 하는구나. 뒤에서 비명소리가 자꾸만 들렸다. 환청인가? 지금 시대에 전투 경찰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지는 않을 텐데. 거기까지 상상한 탓일까? 비명 소리에 더해 퍽퍽 때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잡히면 끝장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를 구해주는 히어로는 없을까?
미친 듯이 달렸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지 아닌 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시점에 떠오른 것은 어머니와 동생이었다. 내가 잡혀가면 누가 그들을 먹여 살리지? 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목적지는 청계천에 있는 우리 회사였다. 다행히 회사 건물은 열려 있었다.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젖은 옷이 불안했다. 한동안 화장실에 숨어있었다. 엄청난 자괴감이 몰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한 걸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조심스럽게 내 자리로 가서 PC를 켰다. 나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있던 연인에게 메신저로 무사함을 알렸다. 실시간 뉴스를 보니 과잉 진압이라는 내용과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두고 도망쳐온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이후로 촛불 문화제에 더욱 열심히 나갔다. 부끄러운 그날의 과오를 씻을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두 번 다시 진압 현장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아니면 언론의 힘이었을까?
청계 천에 있던 회사를 떠나 가정형 회사로 이직했다. (만약에) 거리가 멀어진 탓일까? 야근을 하고 시청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씩 참여가 줄어들다가 결국 언젠가부터는 아예 촛불을 내려놓게 되었다. 변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현실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나 하나 라도 보태자는 마음에서 나 같이 무능한 하나는 없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날의 함성이 종종 떠오른다. 하지만 그립지는 않다. 그리워하고 싶지도 않다. 두 번 다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 번씩 우리는 촛불을 드는 세상을 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