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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즈 Nov 14. 2024

[2] 탄흔의 경유지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던 순간의 기억

19살에서 20살로,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순간. 앞자리가 바뀌는 순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나의 20대 마지막 날은 구로 디지털 단지에 있던 사무실에서였다. 처음 입사할 당시, 회사는 신사동에 위치해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는데, 주택가 빌라 안에 사무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상층에 위치한 복층 구조에 옥상까지. 이전 회사에서 철야가 일상화되어있던 나에게는 꿈같은 공간으로 느껴졌다. 밤에 잘 수 있는 공간이 많아 보였고 샤워도 가능했으며 주방에서 밥을 지어먹을 수도 있었으니까. 이 회사를 다니면 전보다는 조금 덜 피곤하겠다는 생각이었기에 어떻게든 이 회사에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게임들을 기획하셨던 분이셨다.

회사를 마음에 들어 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는데, 사장님이 과거에 만드신 게임이 나의 인생 게임 시리즈 중 하나였던 것이다. 배울 점도 많고 쾌적한 철야 환경이 있는 이곳. 어떻게든 꼭 붙고 싶다는 생각으로 면접에 임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면접은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 끝났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려는 중이었고 당시 국내에는 경험자가 적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가능한 기획자가 엔진 매뉴얼을 작성해 주기를 원했다. 면접에서는 구구단과 달력 등 기본적인 코딩을 테스트했다. 기획자 면접인데도 말이다. 아무튼, 영어도 못하면서 배짱을 부린 끝에 엔진 클라이언트 담당 시스템 기획자가 되었다.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며 프로그램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김 부장님, 감사합니다.

당시에 사용하는 곳이 많지 않았던 언리얼 엔진을 사용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입사 목적 중 하나는 편안한 철야에 대한 기대였다. 복층 구조의 가정집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꿈꾸던 편안함은 없었다. 기획팀은 거실을 사용하라는 사장님의 지시 때문이었다. 왜냐? 기획이 개발의 핵심이니까. 다른 팀들은 각자 방을 지정받았기에 서운함이 남긴 했지만, 주방과 샤워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거실에 놓인 PC는 지나다닐 때마다 화면이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집중해서 일만 해야 했다. 어쩌면 사장님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기획팀은 거실에 있었기에 모두와 소통이 원활했다.

동경하던 게임기획자인 사장님은 다혈질이셨다. 다른 팀과 달리 기획팀은 한 명씩 사장실로 불려 가는 일이 많았는데, 종종 재떨이가 날아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잘 피하는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사장님은 꼭 오른손으로 던지시는데, 팔을 크게 휘두르시거든. 그래서 무조건 왼쪽으로 피해야 해. 본인이 기획자 출신이라서 우리를 더 예뻐하신 거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회사 옥상에는 사장님이 키우시는 대형견이 있었는데, 똥을 치우거나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는 일도 기획팀의 일이었다. 몇 번은 주말이나 명절 연휴에 댕댕이 때문에 출근한 일도 있었다. 동료 중 하나는 저녁 식사 후 목줄을 쥐고 산책하는 것을 즐겼는데, 지나가는 여성들이 말을 걸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몇 번인가 산책을 시켜봤는데, 말을 거는 여자는 없었다. 개가 문제인 게 아니라 내가 문제인 건가?

옥상에 있던 대형견을 돌보는 일도 기획팀의 몫이었다.명절을 지내고 와보니 똥이 말라붙어 있어서 옥상 대청소를 했다.

그해 여름은 유독 더웠다. 직원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에어컨을 사달라고 사장님에게 건의했다.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남자들끼리 있잖아? 벗어! 새끼들아! 웃통을 벗고 책상 밑으로는 얼음물에 발을 담그고 일했다. 실수로 물을 쏟기라도 하면 황급히 사용하던 PC를 끄고 바닥 청소를 했다. 결국 참다못한 우리는 몰래 합의했다. 여직원이 필요하다. 지금 T.O. 있는 팀 어디야? 그렇게 웹팀에 여성 디자이너를 뽑게 되었고 사장님은 에어컨을 설치해 주셨다. 더 이상 벗으라는 말을 할 수 없었으니까. 물론, 거실은 예외였다. 기획팀은 그날부터 틈만 나면 다른 팀과 커뮤니케이션할 부분이 없는지 찾게 되었다. 아주 필사적으로.

아무리 사장님이라도 여직원이 있는데 벗고 일하라고는 못하셨다.

입사 초반에 가장 힘든 부분은 멀미였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해왔지만 놀랍게도 3D 멀미가 있었다. 특히 1인칭 게임만 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다행히 레인보우식스 같은 느릿느릿한 FPS는 괜찮았지만 속도감 있는 게임은 버티기 힘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회사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고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속도감 있는 FPS를 하면서 토하기를 반복했다. 나의 원룸 PC앞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항상 걸려있었고 식사도 자제했다. 토하면서 도로 구역질이 나면 안 되니까. 점심은 케로로빵으로 때웠고 저녁은 굶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의 숨은 노력 끝에 3D 멀미를 극복할 수 있었다. 나중에 회사 동료들에게 말했지만 믿어주지 않았다. 나 연기력 좀 는 듯?

멀미 극복에 도움을 준 FPS들.

구로 디지털 단지로 이사 갈 때까지는 회사 분위기가 좋았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대기업과 계약을 했고 대규모로 제작 발표회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그 대기업의 후계자 다툼이 생기기 시작하며 회사에 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급여는 연체되기 시작했지만, 놀랍게도 퇴사자는 없었다. 다들 투잡 쓰리잡을 하며 프로젝트를 지키려고 했다. 동료 하나는 밤 10시 이후면 대리 운전을 뛰러 나갔고 누구는 야간 편의점 알바를 했다. 나는 PC방 알바와 가벼운 주말 일용직 일을 병행하며 회사를 다녔다. 월세가 아깝다며 집을 나와 회사에 눌러앉겠다는 분도 계셨다. 사장님도 이미 가정을 떠나 회사에 머문 지 오래되셨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련하고 찌질한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달랐다. 모두 이 게임에 꿈을 걸었기 때문이다.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호텔에서 진행한 제작 발표회.이때까지는 대기업이 뒤에 있었다.

모두가 예민해진 상황에 작은 쿠데타가 일어났다. 나를 포함한 기획팀원 전원이 팀장에 대한 불만을 가진 것이다. 프로게이머 출신이자 웹기획자인 팀장은 게임은 잘 알았지만 개발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기획팀 전원이 사장님과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팀장을 교체하자고 건의했다. 누구 할만한 사람이 있냐?라는 질문에 다른 동료들이 나를 가리켰다. 합의되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당황한 나머지 고사했고, 쿠데타는 없던 일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상한 형태로 팀장이 되었다면 두고두고 욕먹었을 것 같다. 이 사건은 이어져서 기획팀이 옥상에서 팀장님 멱살을 잡는 사건으로 번지기도 했다. 다들 예민한 시기이기도 했고 모두 어렸다. 기획팀의 가장 큰 형이었던 나 역시도 20대의 혈기를 주체 못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을 시전 할만한 일이지만, 그 덕분에 어린 친구들을 이해하기도 한다. 요즘 20대가 막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때를 떠올린다. 나도 저렇게 보였겠지?

옥상으로 팀장님을 끌고 올라가 멱살을 잡았던 일.두고두고 이불킥할 기억이다.

29살의 크리스마스. 몇몇 동료들이 크리스마스는 가족이나 연인과 보내겠다며 퇴근했다. 나는 회사에 남았다. 솔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급여도 나오지 않고 거의 매일같이 철야를 하는 상황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시간도 돈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었다. 3년 반동안 함께했던 인연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로 떠나갔다. 회사에 남은 분들을 위해 PC 스피커로 크리스마스 메들리를 틀었다. 우울한 기분이 더 처지는 것 같았다. 야 꺼라. 누구 놀리냐? 이사님이 한마디 하셨다. 어쩌면 이때부터 속에 담아두신 걸까? 그리고 6일 뒤.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그날. 우울해하며 자리에서 졸고 있는데, 이사님이 갑자기 회의실로 불렀다.


“야. 엎드려뻗쳐!”

“네? 왜요? 제가 뭐 잘못했나요?”

“팔 굽혀 펴기 실시!”


영문도 모른 채 팔 굽혀 펴기를 했다. 평소에 나쁘지 않은 사이였기에 딱히 기분 상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나 싶었을 뿐이다. 내가 팔 굽혀 펴기를 하는 동안 이사님은 숫자를 셌다. 스물하나… 스물둘… 서른까지 도달하자 이사님이 외쳤다.


“30대가 된 것을 축하한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회의실 의자에 얹어둔 무언가를 꺼냈다. 계란 한 판이었다. 다른 기획팀원들이 박수를 치며 회의실에 들어왔다. 케이크를 하나 들고 있었다. 생일도 아닌데. 그깟 서른이 뭐라고.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울컥했다. 계란 한 판, 그리고 케이크 하나. 비싼 가격은 아니겠지만, 다들 힘들게 번 돈을 모아서 사 오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팔 굽혀 펴기는 또 뭐지? 참 장난도 애매하게 친다니까. 회의실 중앙에 케이크를 올려두자 동료들이 나무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우루루 달려들었다. 연말이라 대리 운전 건수 많은데, 형 때문에 오늘 안 간 거야. 고맙게 생각해. 한 살 아래인 기획 팀원이었다. 내년에 복수할 테니 두고 보라며 웃었다. 하지만, 약속한 그날은 돌아오지 못했다.

거칠고 힘든 시기였지만, 우리에게는 꿈이 있었다. 여기에 동료들의 끈끈함이 함께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동료들과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데, 우정이라기보다는 전우애에 가까운 것 같다. 이 시기를 떠올리면 20대의 마지막 순간,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된다. 비록 게임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과 경험은 구성원 전원을 크게 성장시켜 주지 않았을까? 그중 하나가 나였음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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