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메시지

연애와 신뢰

by 마이즈

연애를 하면 높은 비율로 의심을 받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컸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적당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늘의 일정이 무엇인지 대부분 알고 있으면서도 의심하는 것이 이해되지는 않는다. 가끔은 너무 한다 싶어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심한 경우는 위치 추적 앱을 설치하기도 했고 영상 통화도 자주 했다. 아예 모든 SNS 아이디를 공유한 적도 있었다. 오해받는 것이 억울해서 차라리 진짜 바람을 피워야 하나 싶은 때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할 경우 상대가 될 분은 아무 죄도 없이 피해를 받는 것이라서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며 연인 사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신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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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과거 연인들 중에 특히 집착이 심한 한 사람이 있었다. 함께 버스를 탔는데, 내리자마자 화를 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버스 안에서 내가 선 자리를 이야기했다. 좌석이 없어서 출입문 근처에 서 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앞에 여성 분이 앉아 있으셨나 보다. 무슨 관계냐며 추궁을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문제가 되었다. 그녀가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 도착했다고 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또 화를 냈다. 왜 여자랑 같이 탔냐며 그중에 누구랑 바람을 피우는 거냐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건물을 쓰는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 이후로 계단을 이용하려 했지만 계단 실에서 또 누군가를 만난다고 오해했다. 결국 남들보다 더 일찍 가서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퇴근할 때도 엘리베이터 타이밍을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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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내릴 때마다 보고를 했음에도 갑자기 전화가 올 때가 있었다. 전철 안에서는 주로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을 하기에 못 받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에도 의심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게임을 할 때에도 휴대폰에 신경을 써야 했다. 가급적 멈출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출장을 가면 영상 통화를 켜둔 채로 잠을 자야 했다. 밤 중에 누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회사에서 철야 중에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면 위치가 이동되었다고 누구를 만났냐는 추궁을 들어야 했다. 회사 일로 미팅을 하거나 메일을 주고받는 대상이 여성 분이라면 매번 검수를 받아야 했다. 당연히 여성이었던 지인들은 모두 차단했고 SNS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여 사친과 동생 들) 처음에는 부당하다는 생각에 화를 내기도 했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지며 점점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녀를 만난 이후부터는 웬만한 질투나 집착은 귀엽게 보이는 수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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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작스럽게 폭풍이 다가왔다. 그녀와 함께 있는데 휴대폰에 메시지가 온 것이다. 당연히 그녀가 내 휴대폰을 빼앗아 문자를 확인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빠 놀러 와~’하는 식의 스팸 문자였다. 당시에는 유료 전화를 걸도록 유인하는 문자가 많았다. 스팸인 것 같다고 웃어넘기는데, 진짜 광고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이거 피싱이라고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나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아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저 이 분 여자친구인데 누구세요? 상대는 잠시 대기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여자가 전화를 걸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공격적인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너 누구야? 우리 오빠랑 무슨 사이야? 스팸이라서 의미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답장이 온 것이다. 나와 특별한 관계라는 등의 이상한 소리를 했고, 어디에서 본 사이냐는 질문에 이상한 주소를 보내오기도 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집 근처 주소였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누군가를 만난 기억은 없었고 심지어 번호를 준 적은 더 없었다. 애초에 분 단위로 감시(?) 당하는데 누구를 만나겠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나에 대한 신상을 물어보라고 했다. 이름이든 뭐든. 그때부터 상대는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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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건 무슨 일이었을까? 스팸을 종종 받기는 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어쩌면 스패머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필요했던 걸까? 평소에 답장을 받을 리는 없으니 장난기가 발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날 이후 더욱 심한 감시에 놓이게 되었고, 바람피운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억울한 마음으로 그날의 상황을 복기하다가 집 근처 주소를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분노의 마음을 한껏 담아 길을 나섰다. 그 주소에 있던 것은 평범한 일식 음식점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냥 아무 주소나 보낸 건가? 아니면 누군가 여기서 소개팅이라도 하고 번호를 잘못 전달한 걸까? 허탈했다. 그때 그 주소에 왔다고 말하면 괜히 또 긁어 부스럼이겠지? 결국 끝까지 진상은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결국 그녀와도 이별했다.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감시하듯이 나도 했어야 했던 걸까? 누군가는 그것을 관심의 지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지막까지 이 일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없었다. 이후로 아무리 가까운 연인이라도 휴대폰을 보는 것이 불편해졌다. 혹시 또 이 타이밍에 이상한 스팸 문자라도 오면 어떻게 하지? 하지 않은 일로 추궁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이후 재판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지. (바퀴벌레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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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아무리 심한 의심을 받더라도 참아야 했다. 내가 함께 하기로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 성향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연애였으니까. (연애의 바이블) 하지만 의심이 심한 사람과 만난 뒤에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예로 무례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조금 더 예의 바른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반대로 상대의 어떤 면이 긍정적이었다면 다음 상대를 만날 때도 같은 부분에 조금 더 끌릴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선호는 변화한다. 평소 후배들과 학생들에게 가급적이면 연애를 많이 하라고 독려한다. 첫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를 거쳐가면서 나에게 잘 맞는 부분, 잘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복하며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 이유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스스로가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좋을 때는 자제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더 크게 표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억울하고 힘들 때는 제대로 해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별은 가장 큰 배움을 주는 순간이다. 최근 유행했던 ‘모태 솔로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같은 작품을 보면 감정 관리에 서투름이 어떻게 보이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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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결국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의심과 불신은 언제든 싹틀 수 있지만, 신뢰는 오랜 시간과 선택으로 쌓여 간다. 그래서 연애는 상대를 시험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믿어 주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나는 이제 억울한 해명을 반복하기보다, 믿음을 줄 수 있는 관계를 더 원한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연애를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애는 때로는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마저도 나를 다듬어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배움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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