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길들이는 법

내면의 폭력성과 마주하기

by 마이즈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을 때가 있나요?"

"네. 자주 있습니다."

"언제 그런 생각이 들죠?"

"주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래요. 무단 횡단을 하거나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 뒤에 있는 사람이 인상을 쓰거나, 영화관에서 휴대폰을 보는 경우도 있지요. 술에 취해 전철에서 다리를 쩍 벌려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서 코를 고는 사람을 봐도 마찬가지지요."

"어떻게 하고 싶나요?"


멈칫했다. 여기에서 솔직히 말해도 되는 걸까? 의사는 나의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오해할지 모른다. 그냥 질러버려야겠다. 자주 떠올리는 잔혹한 방법들을 이야기했다. 의외로 선생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괜찮으세요? 제가 방금 말한 방법들이 너무 끔찍하거나 무섭지 않은가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하면 다들 피하거든요. 그래도 솔직히 말하기로 했어요. 나름 비싼 값을 내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숨기는 것은 비효율적이잖아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상상을 실제로 행동에 옮긴 적이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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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공격적인 행동을 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칼을 휘두르며 다녔던 중학생 시절, (중딩 느와르) 아버지를 찔렀던 일, (아버지 : 생명의 은인) 그리고 폭력 그룹에서의 활동. (퓨마 파의 칼잡이) 지하상가 계단 위에서 ‘도를 믿습니까?’ 묻던 아저씨를 발로 차버린 일.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며 깨달았다. 나의 폭력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안양을 떠나 구미로 이사한 시기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는 미수에 그쳤던 것이다. 회사에 다니며 상사를 옥상으로 끌고 가서 멱살을 잡았지만 거기에서 멈췄다. (탄흔의 경유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배신자들에게 인벌을 내리겠다며 칼을 들고 집 앞까지 찾아갔지만 실행하지 않고 돌아왔다. 왜 멈춘 걸까? (바퀴벌레 재판) 구미로 이사하며 나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것. (평화로운 대학생활) 대학에 다니며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것. (안녕, 레벨 1) 사업을 했던 것. (ATDT 01410 -ATM0) 춤을 추기 시작한 것. (음악과 무대) 단순히 새로운 환경이기 때문에 변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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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반대로 공격을 당하고 싶을 때도 있나요?"


네. 맞아요.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은 처음인데, 의외네요. 엉망으로 두들겨 맞아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살인이나 테러가 예고된 장소에 가기도 하고 거칠어 보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시비를 걸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시도한 적은 없지요? 구미로 이사 간 초기에 한 번이요.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가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없었어요. 왜 없어졌다고 생각하세요? 비겁해서가 아닐까요? 제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인 것은 아는데, 스스로 죽는 것은 삶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으로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타인의 힘을 빌려 변명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 느낌을 받나요? 재판 기간 중에는 내내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말씀하시는군요. 피해자로 동정받는 건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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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온 것은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했지요?"


네. 심리 연구원인데, 가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내재된 폭력성 때문에 무섭다는 말도 했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니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요. 그 말에 동의하나요? 어느 정도는요. 혹시 살면서 가장 증오했던 사람이 누군가요? 마왕이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고소한 사람들은요? 그들도 싫지만 증오할 정도는 아니에요. 이해가 되는 면도 있고요. 칼을 들고 찾아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어쩌면 그렇게 했으니까 오히려 후련한 것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마왕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저 무력했죠. (마왕과 어머니) 그렇게 생각하는군요. 때로는 가까운 사람을 죽이는 상상이 떠오르기도 하나요? 네. 맞아요. 그래서 무서워했던 거군요.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의 상담을 미루어 볼 때 여자친구분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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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간 다닌 정신과 상담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에 대한 결론은 "내면이 매우 건강함"이었다. 오히려 거기에서 한 단계 나아가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틀림없이 나는 내재된 폭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해치는 상상을 자주 하고 화가 나면 벽에 주먹질을 한다. 상대를 죽이고 고문하는 장면을 자주 떠올리기도 한다. 이것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부분이라고? 상담 기간 동안 선생님은 나의 비틀린 면과 트라우마를 찾으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그렇게 발견된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긍정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재판을 받던 시기에 많이 불안정했던 것은 맞지만 그것을 극복한 이후부터는 무의식 중에 스스로 관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살 충동이 있던 시기의 상담 기록까지 확인하고 내린 결론이셨다. (버티기) 아쉬웠다. 평범한 사람보다는 어딘가 이상한 캐릭터가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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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폭력성이 강해지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마주 오는 사람을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여성은 제외다. 일방적으로 때리는 것보다 절반은 얻어맞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덩치가 크고 강해 보일수록 충동이 강해진다. (그리고 보니 여성이 맞대응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편견인가?) 며칠은 참고 넘기지만, 시간이 갈수록 충동은 강해진다. 이럴 때 나만의 솔루션이 있다. 고어나 슬래셔 등 잔인한 영화를 보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동은 확연히 줄어든다. 아니면 무쌍류의 액션 피드백이 강한 게임을 한다. 총을 쏘는 것보다 검이나 주먹으로 때리는 게임을 하는 것이 확실히 속이 풀린다.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 된다고? 아니다. 게임을 통해 폭력성을 해소할 수 있다. 이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내가 자주 겪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 있고 관련 논문도 있다. 아무튼,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이 두 가지 방법 이외에 저절로 떠오르는 잔인한 상상 또한 폭력성의 해소 방식이라고 했다. 지난 십 수년간 상상을 현실로 옮기지 않은 것이 그 증거라고. 스스로에게 환각을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폭력성을 제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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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관리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것을 틀어막고 있는 수준이다. 건강하게 이를 승화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이 또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스스로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것은 창작이었다. 선생님에 따르면 창작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머리로 하는 것과 마음으로 하는 것.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전자는 창작의 고통을 느끼지만 완성 후에는 깔끔하다. 후자는 내면에서 끌어올리는 방식이라 보통은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가 생기기 쉽다는데, 내 경우는 오히려 넘쳐흐르는 부정적인 내면이 있어 그것을 끌어와서 창작으로 발산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두운 부분이 넘쳐흐르면 창작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돌이켜보니 맞는 말이었다. 글을 쓰거나 게임을 만들 때, 혹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가장 평온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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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풀어놓고 나면 한결 편안해졌다. 내 안의 괴물과 공존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폭력성을 결함이라고 생각했다. 없애야 할 것, 숨겨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나의 일부이고,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 안의 괴물을 죽이기보다 길들여 간다면 나 자신을 언젠가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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