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휴식과 설렘이 있는 진짜 여행에 대한 동경

by 마이즈

"지난 한 달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정기 모임에 참여하면 자주 접하게 되는 질문이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답변을 한다. 그중 해외여행을 다녀왔거나, 준비하고 있는 20대 30대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문득 깨달았다. 저분들은 내가 살아온 환경과 다른 세상을 사시는구나.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에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자주 간 곳은 일본인데, 동생이 유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갈 일이 있었을까 싶다. 동생의 자취방 계약 때문에 혹은 이사 때문에,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신혼집에 조카를 보는 목적으로 방문했다. (최고의 파트너) 그러다 보니 휴가나 여가로 해외여행을 가시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딱히 부러운 것은 아니다. 그저 나도 한번 그런 설렘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madmaiz_A_small_community_gathering_people_sharing_exciting_tra_3593c3a2-38d.png?type=w580

해외 출장을 가는 일은 종종 있었다. 가장 최근은 매직 돌핀 회사를 다닐 때였다. 한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제작 발표회와 미팅을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마법 돌고래는 현실을 본다) 하루 정도 주어진 자유 시간에는 일본에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고 동생 집을 방문했다. 그보다 이전, 사업을 하던 시기에는 투자 대회 참여를 위해 하와이에 간 적이 있었다. (아홉 번의 실수) 하지만 함께 간 직원은 불만을 토로했다. 내내 호텔과 행사장만 오갔을 뿐 관광지를 가거나 특별한 장소에는 전혀 가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해변가 파티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도 일이었으니까. 편하게 즐기지는 못한 셈이다.

madmaiz_A_hotel_room_in_Tokyo_at_night_man_standing_by_the_wind_cfed44f8-45d.png?type=w580

출장으로 가장 많이 다녀온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 대기업의 퍼블리싱 업체를 다니기도 했고, 사업을 할 때에도 중국과의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곱빛깔 본부장) 여전히 나는 호텔 방에서 일만 했고 업무적인 장소에만 나갔다. 해외에 나간 김에 즐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목적이 일이라면 다른 것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중국 출장은 개인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물이 맞지 않았다. 씻어도 개운하지 않았고 물을 마시면 갈증이 더 심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괜찮다는데 유독 나만 힘들었던 것을 보면 중국과 안 맞는 무언가 있는 것 같다.

madmaiz_A_hotel_bathroom_in_China_man_washing_hands_at_the_sink_cb49ea46-978.png?type=w580

20대, 30대를 거치는 동안 업무와 동생 문제 외 다른 목적으로 해외에 나간 적은 없었다. 이유는 심플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돈을 벌어 빚을 갚아야 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동생의 학비와 유학비도 필요했다. 시간도 비용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며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해외여행이 뭐람. 국내 여행도 간 적이 거의 없네. 그 대신 현실에 없는 지역은 수없이 돌아다녔다. 게임 속에서 말이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원시 시대도, 판타지 시대도, 우주 개척지도 모두 다녀온 디지털 여행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madmaiz_A_man_sitting_at_a_computer_desk_monitor_glowing_with_o_aa6279a8-373.png?type=w580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던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방학 중 한 달 동안 동남아 3개국 투어를 간 것이다. 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 일정이었다. 일행은 대부분 처음 만나는 초등학생 들이었다. 여기에 인솔자 어른이 몇 명 있었다. 이 기묘한 일행의 정체는 기자단이었다. 당시 나는 소년 한국일보의 비둘기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방학 특집 기사로 해외 여행기를 쓰게 된 것이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말레이시아는 숙소에서 도마뱀이 나와서 기겁했다. 태국에 갔을 때는 기념품 가게에서 시계를 사고 나왔는데, 종업원이 소리쳐 부르며 달려왔다. 왜 나를 부르는지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거스름 돈을 덜 가져갔다고 따라 나온 것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이었는데. 덕분에 태국 분들에게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 싱가포르에는 멋진 장난감이 많았다. 돈이 많다면 다 사고 싶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한국에 돌아온 뒤, 태국 기념품 가게에서의 일화를 기사로 제출했다. 나름 기대했지만 지면에 실린 것은 다른 사람의 글이었다.

madmaiz_Southeast_Asia_travel_memory_young_boy_smiling_while_ho_b4e8d9f4-c97.png?type=w580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또 한 번 비둘기 기자단으로 해외를 나갈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미국이었다. 미국 가정에서 홈 스테이를 하며 미국인의 일상을 기사로 쓰는 콘셉트였다. 같이 나간 아이는 20명 정도 되었던 것 같았고 이번에도 인솔하는 어른 기자님들과 함께였다. 내가 머물게 된 집에는 동갑내기 남자아이가 있었다. ‘데이믄’이라는 이름이었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즐겁게 지냈다. 데이믄의 집에는 패미콤의 미국 버전인 NES가 있어서 함께 게임을 했다. 한국에서 보던 일본 게임과는 다른 것들이 많았다. 함께 게임을 하면 서로 대화할 일이 많은데, 나는 한국어로 데이믄은 영어로 말했다. 그럼에도 서로 통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역시 게임은 짱이야!

madmaiz_American_living_room_Korean_boy_and_a_boy_named_Damon_p_65feb7c4-1e0.png?type=w580

한 번은 데이믄과 배게 싸움을 하다가 그를 울리게 되었다. 나는 잔뜩 얼어붙었다. 여기는 외지이고 휴대폰이나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데이믄의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분들은 놀란 나를 안아 주셨고 데이믄과 화해하도록 두 손을 맞잡게 해 주셨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 주눅 들어 있었는데, 어디선가 김치와 라면을 사 와서 끓여 주셨다. 나를 달래려고 노력하셨던 것 같다. 며칠 뒤에 데이믄은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비밀스럽게 보여 주었다. 야한 성인 잡지였다. 초등학생이 그런 것을 보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아마 화해하자는 의미로 본인의 가장 깊은 비밀을 털어놓은 것은 아닐까? 이후 데이믄과 함께 미국 마트에 갔다가 처음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하는 어른을 보게 되었다. (하이스코어 보이) 미국은 어른들도 게임을 하는구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madmaiz_A_pillow_fight_gone_wrong_american_boy_crying_parents_g_bbd13f0f-51c.png?type=w580

이때의 미국 경험은 그때까지 알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이었다. 한국 문화 체험을 위해 김밥 만들기를 했는데,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서 그 안의 재료를 하나하나 따로 먹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디즈니 랜드에서는 대기 줄에서 남녀가 옷 속으로 손을 넣으며 애정 행각을 했다. 초등학생의 눈으로 보기에 민망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집에서도 신발을 신었고 주말에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거실에서 영화를 감상했다. 자막이 없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특별한 경험들 속에서 어떤 부분을 기사로 쓸지 고민했다. 내가 제출한 기사는 데이믄과 함께 한 게임들, 그리고 디즈니 랜드 오락실에 있던 게임들과 마트에서 서서 게임하는 어른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지면에 실리지는 못했다.

madmaiz_Disneyland_arcade_an_adult_playing_Street_Fighter_II_at_f8d996ff-5e0.png?type=w580

이때의 미국 방문은 취재를 위한 해외 체험 정도로 표현하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유일하게 해외여행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외에는 매번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최근, 연인이 해외로 떠나고 나서 매일 잔소리를 하게 된다. 많이 배워와야 해. 다양한 경험을 해. 너의 성장을 위해 무언가를 얻어야 해.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내가 제대로 해외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잘못된 자세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둘기 기자 시절의 미국 생활을 돌이켜보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아무런 목적 없이 여가를 위해, 휴식을 위해, 편안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이전 09화[27] 늑대와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