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덧붙여서 재능보다 노력에 더욱 가치를 둔다.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있듯이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넘어설 수 없었던 재능과 환경의 벽. 그 앞에서 포기해야만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중학 시절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에서는 왕따였고 하교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중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단기직이었지만, 오락실이나 독서실 카운터를 보는 느긋한 일도 간간히 있었다.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 어딘가에 나오는 성공담이라면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로 끝맺음되었겠지. 하지만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오래전부터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컴퓨터가 없었다. 코딩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그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지는 그림이었다. 게임에는 수많은 그림이 들어가니까. 지금 만화 그리기를 잔뜩 연습해 두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중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학습법 같은 걸 알 턱이 없었다. 처음에는 게임 잡지나 만화책을 따라 그렸고 그다음에는 신문이나 패션 잡지에 있는 실제 사람을 만화나 게임 캐릭터처럼 바꿔 그리기를 연습했다.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배우는 판화나 파스텔, 수채화 등으로도 만화를 그렸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학생이 되어서 교실 뒤편 한 면을 내가 그린 일러스트를 꾸며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도 했다. 바람 부는 들판에 나디아가 누워있는 대형 일러스트를 그렸다. 파스텔을 사용해서 교실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린 그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학생들은 나디아보다 슬램덩크를 좋아했으니까. 언젠가부터 다른 아이들이 그린 슬램덩크 그림들이 내 그림 위를 덮었다. 심지어 압정으로 박아 넣어 나디아는 구멍 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왕따였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분하다고 생각하며 그림 연습을 계속했다.
여러 사건을 겪고 나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시는 싸움을 하거나 불량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어머니와 약속했다. 그러기 위해서 첫걸음이 중요하다. 입학 후 한동안은 주변을 살폈다. 힘자랑을 하거나 나대는 녀석과 친해지면 고등학교 시절도 조용하지 못할 테니까. 내가 선택한 그룹은 만화를 그리는 친구들이었다. 마침 중학교 시절에 애니메이션 클럽에서 일했기 때문에 오타쿠 지식은 그들보다 월등한 수준이었고 그림 실력도 나이에 비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덕분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수업 시간에도 몰래 그렸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도 그렸다.
이제 더 이상 따라 그리기는 하지 않았다. 모두가 창작을 했다. 점심시간에는 한자리에 모여서 어제오늘 그린 그림을 합평했다. 친구 중 하나가 부모님의 지원으로 만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종종 그 친구에게 만화 펜을 쓰는 방법이나 스크린 톤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게임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우리끼리 만화를 그려 서로 돌려보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가 주간 만화 잡지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만화가 팬레터 주소가 우리 집 근처라면서 같이 찾아보자고. 알고 보니 바로 옆이었다. 그 이후로 만화가 아저씨를 두어 번 더 찾아가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너무 죄송하지만 그 주간지가 아이큐점프였는지, 소년챔프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그 아저씨의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확실한 것은 정말 인기가 없는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나중 일이지만 친구는 그 만화가 선생님의 어시스턴트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쯤이 되면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는 방학 때마다 대 만화가인 이현세 님의 문하생으로 작업을 배우고 돕는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일러스트로 상을 받기도 했다.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연습량도 작업량도 내가 월등했다. 훨씬 많은 그림을 그렸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 그룹은 7명이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1,2등을 할 정도로 잘 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벌어졌고 어느새 나는 7명 중에서 제일 못 그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 교실 뒤에 걸린 나디아 그림. 그 수준에서 나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좋은 소식들은 하나둘씩 내 마음에 압정 구멍을 냈다.
비싼 펜을 빌려서 작업해보기도 했고 집 근처 헌책방에서 가져온 만화 잘 그리는 법 같은 책을 따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써도 나는 제자리였다. 친구들은 저 높은 곳으로 점점 나아가는 것 같았다. 친구의 추천으로 문하생에 도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혼자서 만화 공모전에 도전해보려고 했지만,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그만큼의 시간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것은 3학년이 된 직후였다. 학년에서 나름 알려진 우리 만화 멤버들 이외에 다른 친구 하나가 갑자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노트에 그린 조잡한 성인 만화는 교실 내에서 대 인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야하다는 이유가 컸지만,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만화를 때려치우기로 했다.
“처음부터 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 게임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 뿐이야. 너희와는 가는 길이 달라.”
진심인지 핑계인지 모를 말을 내뱉고 고등학교 3년 내내 가깝게 지낸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이 없어도 나에게는 게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관계를 끊어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도망치는 것임을. 얼마나 찌질한 선택인지를. 하지만 그림과 만화에 더 목메려면 게임을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고, 대학을 가려면 돈을 더 모아야 했다. 그것마저 핑계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그림 친구들을 한순간 모두 떠나보냈다. 그들과 함께할 때마다 비교되는 것 같아서 불편한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넘어설 수 없었던 이 상황을 자주 떠올린다. 연습량도 몇 배는 많았지만 점점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이라는 다른 꿈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전념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재능이 없었기 때문일까? 물론 이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충분히 노력했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해도 안 되는 무언가가 있음을 직접 경험한 셈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재능이라는 말에 반감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그것은 노력을 짓밟는 치트키 같은 존재였으니까.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게임스쿨 그래픽반에 들어갔다. 당시 학원에는 프로그램반과 그래픽반 단 두 가지뿐이었는데, 프로그램은 배운다고 해도 가정환경상 복습이 불가능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중고등학교 내내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한 보상심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픽 반에서는 첫 수업 시간에 커다란 이젤과 스케치북, 4B 연필을 쥐어주었다.
“그래픽의 기초는 드로잉이다. 지금부터 기초 드로잉을 배우고 그다음엔 한정된 선으로 동세를 표현하기 위해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작한다. 너희에게 PC가 주어지는 것은 그다음이다. 기초 미술 실력이 없다면 그래픽은 꿈도 꾸지 마라!”
놀랍게도 그래픽 반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진도를 빠르게 쳐냈고 반에서 두 번째로 PC 자리를 배정받았다. 별거 아닌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5년간의 노력이 이런 곳에서 연결되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후 그래픽 반에서 단 몇 사람만 아래층 패키지 게임 개발실에서의 그래픽 작업 외주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내 인생의 첫 게임개발 참여 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후의 이야기. 적어도 이 글에서의 나는 중도 포기한 만화가 지망생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포기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목표로 후회 없이 노력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면 다를 수 있다. 어떤 포기는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스러움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