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칫 놀라며 쳐다본 곳에는 우리 팀 여성 기획자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왕자래. 어느 나라 왕자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듯했다. 뻘쭘했지만 왠지 당당한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았다. 향후 이 여성 분은 미국에 있는 게임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인 'ㄹ' 게임을 만든 곳이다. 옆 팀에는 유명 게임 학원의 원장이 될 사람이, 반대쪽 옆 팀에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의 교수가 될 사람이, 같은 팀에는 1인 개발자로 성공해서 로망이 가득한 게임 회사의 대표가 될 분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N사의 유명 액션 RPG 게임이나 과자가 달리기 하는 게임을 담당하게 될 분도 있었으니, 돌이켜보면 미래에 잘 될 분들이 모인 곳이었다.
왕자님 소리는 매번 민망했지만... 어찌어찌 적응했다.
지난 회사를 자진 퇴사한 이후, 모아둔 돈을 소진하며 평소 꿈꾸던 N사에 도전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씁쓸한 불합격 통보뿐. 3년 차의 흔한 자만심은 지난 회사에서 처절하게 짓밟힌 상태였는데, 여기에 더해진 구직 실패가 스스로의 무능함을 더욱 인지하게 했다. 이직을 해야 했지만 더 이상 슈팅 게임은 싫었다. 한 번 더 만들면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MMORPG를 만들자.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MMORPG 회사들이 슈팅 게임 기획자를 받아줄 리 없지 않나? 고민하던 중 MMORPG에 슈팅을 접목하는 회사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렇게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전투를 슈팅으로 하는 MMORPG
신규 입사자의 OT는 북한산 등산이었다. 부사장님과 십여 명이 함께 했다. 이 시기에 나는 등까지 내려오는 장발이었는데, 그 탓에 눈에 자주 띄었던 것 같다. 팀 내에서는 나를 왕자님이라고 불렀다. 잘생긴 것도, 돈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이상한 별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장발 탓이었다. 석유 왕국의 왕자처럼 보인다고 하더라. 왜 머리를 길렀냐고? 딱히 기른 건 아니었다. 자르기가 귀찮았을 뿐.
북한산 등산만으로도 글 한 편이 나올 만큼 사건이 많았다.
3개월의 수습 기간이 지나고 팀장님과의 면담. 숨겨진 무시무시한 비밀이 밝혀졌다. 니가 걔지? 모의 면접에서 삼성 깐 놈. 팀장님은 같은 학교 선배 님이셨다. 당연히 내 무용담(?)을 알고 계셨고, 언젠가 만날 거라고 생각하셨단다. 우리 학교에서 게임 업계로 온건 너랑 나. 딱 둘 뿐이다. 같은 학교라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혹시 학연으로 뽑힌 것인가 싶었기 때문. 이어지는 팀장님의 말에 그게 아님을 깨닫고 안심했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지만.
내 기획서에는 '세부, 설계, 테크니컬, 처리, 매커니즘 등이 붙었다.
우리 스튜디오는 기획팀과 프로그램팀의 다툼이 심하다고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나를 뽑았노라고 하셨다. 우선 팀장님이 기획서를 작성한다. 예를 들어 ‘무기 시스템 기획서’라고 치자. 그럼 이걸 받아서 ‘무기 시스템 테크니컬 기획서’를 작성한다. 테크니컬 기획서의 목적은 프로그램 팀에게 필요한 사양을 모두 담는 것이다. 표현은 기획서마다 달랐다. 테크니컬, 세부, 설계, 메커니즘 등. 기존에 프로그램 경험이 있고, 지난 프로젝트에서 서버도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판단하신 것. 불안 요소가 많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대학 선배 였던 팀장님은 사내 정치로 인한 충돌의 완화를 기대하며 나를 뽑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작성한 기획서는 기획 팀장님이 아닌 프로그램 팀장님에게 컨펌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경험했다. 어떻게든 딴지를 걸려면 무한하게 할 수 있음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인벤토리 기획서는 무려 22번을 재 작성했다. 나를 지연시키면 기획팀 탓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의로 이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친해진 팀 내 프로그래머들에게 진짜 내 문서가 엉망이냐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물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데 팀장님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오히려 너무 디테일하면 불편하다는 말도 함께. 기획팀이 정치적으로 밀려도 곤란하기 때문에 20번을 반려하더라도 어떻게든 컨펌을 통과하기 위해 철야를 하며 기획서를 찍어냈다.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사람이 집중을 하면 이렇게까지 많은 일을 할 수 있구나. 그 과정에서 나의 업무 속도와 개발 이해 능력도 성장했던 것 같다.
당시에 쓴 기획서에 적혀있는 버전과 날짜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중, 부사장님과 면담이 잡혔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몇몇 사원을 면담하며 회사에 불만 등을 물었던 것 같다. 사내 정치나 파벌 싸움은 개발에 불필요합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부사장님에게 팀의 상황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자칫해서 우리 팀이 무너지면 피해를 보는 것은 모두일 테니까. 결국 개인적인 입장으로 돌려서 이야기했는데, 부사장님은 주어진 일만 하기보다 다른 일도 학습해 보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남겨 주셨다. 어쩌면 나는 이때 말실수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부사장님과의 면담. 나 스스로의 평가를 깎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 말을 듣고 LUA와 UML, VBA, 그리고 스케일폼 스터디를 시작했다. 스터디 멤버는 탄흔의 회사에서 같이 팀장님의 멱살을 잡았던 늑대군을 포함한 지인들이었다. 당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대 인기 게임 탓에 LUA는 UI의 미래라고까지 언급되었고, 데드 스페이스라는 게임으로 스케일 폼도 주목받던 시기였다. 기획팀과 프로그램팀의 싸움에 그래픽 팀을 끼워 넣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 중심으로 UI를 정했다. UI는 그래픽과 프로그램이 중심이 되는 것이 그동안의 풍조였지만, 이 시기에 UX라는 개념이 막 알려지기 시작했으니까. 이 스터디를 기반으로 팀장님과 PD님에게 UI 유닛을 따로 꾸려달라고 졸랐다. 팀장님은 내 의향을 이해하셨는지 힘을 보태주셨다.
주말에는 기획자들과 스터디를 진행했다.
그렇게 UI 유닛이 생겼다. 기획 하나, 프로그램 하나, 그래픽 하나. 두 분 다 나와 친하고 믿는 분들이었기에 우리 팀이 방파제 역할을 하며 팀 내의 갈등을 받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시스템이나 콘텐츠에도 UI는 들어가니까. 우리 유닛은 개발 내 모든 부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우리 유닛의 다른 분들은 스트레스에 괴로워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다 싶으면 여기저기 다 개입한 내 탓이었다. 우리가 고생하더라도 팀을 원활하게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리소스 관리 쪽으로 공격이 들어온 것이다. 당시 기획팀에서 실력 좋은 콘텐츠 기획자가 담당하고 있었기에 방심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리소스라는 것이 그래픽에도 얹혀 있기 때문에 그래픽 팀도 기획팀의 편을 들게 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UI 전담 유닛을 결성했지만... 실 목적은 분쟁 해결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당시의 나는 팀장병에 걸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당시 직급은 주임이었기에 이런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 팀장을 했기 때문에 개발팀이 원활하게 굴러가지 못하는 문제를 혼자 다 해결하려고 바둥거렸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평생의 병인 책임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던 걸까? 훌륭하고 좋은 동료들이 많았는데, 왜 나는 함께 의논하지 않았던 걸까? 혼자 해결하려는 잘못된 습성은 결국 나에 대한 평가를 서서히 깎아먹고 있었다.
당시 기획팀 분들은 모두 실력도 성격도 좋은 분들이셨다. 나만 빼고.
그래픽팀에 미녀 오타쿠가 한 분 있었다. 취미가 비슷하다 보니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이번 리소스 사태에 끼어들던 중 문득 내가 3D 그래픽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탄흔의 회사에서 간단한 테스트 맵을 만들었던 것 이외에는 3D 툴을 만져본 적이 없었다. 마침 이 오타쿠 팀원은 3D 모델러였다. 역시 오타쿠는 세상을 구한다! 그래픽 과외를 부탁하자 기꺼이 수락하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퇴근 후 미녀 오타쿠의 집에서 3D를 배웠다. 하필이면 실습으로 개굴 소대를 만들어보라고 해서 괴롭긴 했지만, 그 외에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 한마디 더 보태자면 이 미녀 오타쿠 분은 기혼이었고, 내가 드나든 곳은 신혼집이었다.
블로그에 남아있는 기록. 역시 오타쿠는 세상을 구한다.
3D까지 배워가며 리소스 이슈에도 개입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PD님이 나의 월권을 막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발 팀이 잘 돌아가게 하려는 의도인데 왜 막으실까? 하지만 지금은 나의 잘못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고작 4~5년 차가 날뛰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이전 회사에서 겪은 일 탓에 더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때도 참 시야가 좁았구나. 그리고 연봉 협상 시즌이 왔다. 처음 입사할 때 연봉을 1000만 원 가까이 낮춰서 들어온 터였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MMORPG 이력을 가져야 했고, 1년 후에 정상화해준다는 약속을 받아서였다. 그동안 빚을 내며 투잡을 뛰며 지내고 있었기에 기대했지만 연봉은 제자리였다. 스튜디오 사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날 저녁 친한 동료 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프로그램 팀원들은 인상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부사장님과의 면담? 아니면 너무 나댔기 때문일까?
연봉 동결... 모두가 그런 줄 알았지만...
한 동안 고민이 많았다. 이 회사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출시도 몇 개월 남지 않았다. 끝까지 함께 가고 싶었지만, 더 이상 이 금액으로 생활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동생은 일본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 등록금에 집도 얻어주려면 저축까지 해야 했다. 고민 끝에 여기까지 해야겠다고 말했다. 송별회를 하던 날. 나의 작업을 인수인계받을 기획자를 소개받았다. 훗날 인디 게임으로 성공하고 자신만의 색깔 있는 회사를 창업하게 될 멋진 선배와의 만남이었다. 건방지게도 선배님을 테스트하는 질문을 몇 가지 했고, 답변을 들으며 느꼈다. 이 사람은 찐이다! 내가 하지 못한 균형을 잡아줄 분일지도 모르겠다. 그 예상은 적중했고, 게임을 잘 출시되었다.
몇년 뒤 선배님이 보여준 1인 개발 게임. 출시 후 대박을 내고 창업을 하게 되셨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업무 속도도 늘었고 디테일을 보는 시야도 생겼다. 스터디를 통해 다양한 스크립트나 툴도 익혔고 무엇보다 3D 그래픽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제는 N사에 갈 수 있을까? 퇴사 이후 재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세상의 벽이 정말 높다는 것을 실감했다. 스킬면에서도 많은 성장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 얻은 가장 큰 부분은 사내 정치에 대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에는 프로그램 팀장님을 빌런처럼 생각했지만, 현재의 내가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조금은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분도 프로젝트를 위하는 마음은 분명히 같았을 테니 말이다. 퇴사하며 그동안 기른 머리를 잘라냈다. 이제 왕자님 소리를 들을 일은 없겠지. 속이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