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홉 번의 실수

창업 과정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

by 마이즈

예상치 못한 자금 문제로 무지갯빛 회사는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까지 개발하던 게임을 드롭해야 한다는 점인데, 팀원들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회의를 통해 현재까지 개발 중이던 게임 소스를 가진 채 독립시키기로 했다. 그때 팀원들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함께 가자고. 감사한 제안이었기에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우리는 인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업을 통해 개발 중이던 게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PD님과 AD님, 창업 경험자도 둘이나 있었다. 문제는 회사에서 개발하던 게임이므로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개발팀 중 팀장 급 세명과 내가 함께 흰 늑대의 사무실에 들어가 창업 의사를 밝혔다. 우리 지금까지 만들던 게임, 가지고 나가도 될까? 뭘 물어보십니까? 당연히 그러셔야죠! 호탕하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고, 심지어 창업 과정의 여러 절차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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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과 자주 회의를 했다. 그중 하나는 대표를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서버 프로그래머였던 PD님과 AD님, 그리고 내가 후보에 올랐다. 연륜도 인품도 PD님이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았지만 이 전에 창업했던 회사가 있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했고 AD님도 창업 경험이 있고 나보다 연배가 높은 리더십 있는 분이셨지만, 회사 이외의 자신의 일이 있다고 했다. 결국 개발 본부장이기도 했던 내가 대표를 맡게 되었다. 이때 나는 첫 번째 실수를 했다. 회의록을 기록해 두었어야 했던 것이다. 흰 늑대는 우리를 축복해 주며 근처 은행의 부지점장님을 소개해 주었다. 앞으로 여러 의미로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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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중이던 게임을 들고 여러 대기업을 돌아다녔다. 지금까지 퍼블리셔의 입장에서 게임을 검토해 왔는데, 다시 우리 게임을 영업하고 검토받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중 중견 기업 한 군데가 반응을 보였다. 게임이 완성되면 10억을 넣겠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자금이 없는데요? 여기에서 부지점장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 중견 기업의 투자 의사와 은행의 보증이 있다면 신용보증보험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업의 마이너스 통장까지도 만들어줄 수 있다고. 결국 빚을 내서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였지만 그때는 아무런 감이 없었다. 투자를 받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누군가가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서류 작업은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투자를 위한 면접도 해야 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고 결국 회사 통장에 수 억원이 꽂혔다. 두 번째 실수였다. 투자가 빚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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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조언으로 포장된 개입이 많아졌다. 첫 번째는 지분 문제였다. 모두 똑같이 나누면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기관이든 개인이든 투자사든 간에) 지분이 한쪽에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다. 동료들과 상의를 해서 지분은 나에게 몰기로 했다. 대신 모두의 연봉을 높였다. 나중에 휴지 조각이 될지 대박이 날지 모르는 지분보다는 현실의 급여를 많이 가져가는 것이 더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세 번째 실수였다. 적어도 공증받은 문서를 받아 두었어야 했다. 지분이 한쪽으로 몰린다는 것은 결국 책임이 한 사람에게 몰린다는 의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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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급여를 정하는 과정에서 나의 급여도 높아졌다. 이 부분 역시 투자 측의 이야기였는데, 대표의 급여가 너무 낮아도 이상해 보여서 문제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가져가는 것은 다소 민망했기에, 내가 가져간 돈의 일부를 회사 계좌에 다시 넣거나 사무실 임대료를 내고 집기 구입에 사용하기도 했다. 네 번째 실수였다. 공금과 개인 자금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회사를 위해 내가 받은 급여를 반납하는 것이 추후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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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동료들과 다 같이 구하러 다녔다. 모두의 집에서 중간쯤에 있는 홍대입구로 최종 결정했다. 당시의 나는 잠실에 살고 있었기에 멀었지만, 다른 분들이 가까웠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무실 계약을 하던 날 부동산에 10명에 가까운 인원이 우루루 몰려갔다. 이후 사무실의 내부 페인트 칠과 인테리어도 다 같이 진행했다. PC와 책상 등 장비 구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로고를 만들고 이름도 함께 정했다. 그 과정에서 대학교 동창인 TS 군을 합류시켰다. 대학교 동아리 때처럼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 역시 긴 사회생활로 적응력이 높아져 있었다. (안녕, 레벨 1) 너무나 멋지고 희망찬 시간이었다.


창업 후 하와이에서 열린 투자 대회에서 우리 게임이 수상을 했다. 기획 팀장을 맡고 있는 동생과 둘이 하와이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테트리스 컴퍼니의 행크 로저스를 만났다. 추가 투자가 들어올 기회가 생겼지만 처음부터 이야기되던 중견 기업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 동료들과 긴 회의를 통해 투자를 거절하기로 했다. 서서히 자금이 떨어져 가기에 계약을 약속한 기업에 이야기했더니 서울시에서 열리는 투자 대회를 소개해 주었다. 여기에서 또 수상을 하게 되며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었다. 당시 심사위원 중 A님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회사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메라 시점이 꼬였을때) 사업에 익숙한 A님은 여러 가지 불안 요소를 조언해 주셨지만 당시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잘 나갔고 연말까지 예정된 빌드를 마감하면 추가 투자가 크게 들어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연말이 된 시점에서의 나는 돈을 구하러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리에게 투자하기로 했던 중견 기업은 이를 철회했다. 캐주얼한 느낌의 RPG를 만들고 있었는데, 시장 트렌드는 하드코어 RPG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고작 그런 이유로 철회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멍청한 일이었는데, 해당 업체와 그동안 투자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구두로 진행된 약속만 믿고 다른 기회를 모두 차 버렸다. 트렌드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미 유행이 지난 우리 게임을 받아주려는 회사는 찾기 힘들었다. 수없이 많은 투자사와 개인 투자가를 만났지만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오직 하나의 업체와의 약속을 믿고 안전장치를 만들어두지 못한 것. 이것이 다섯 번째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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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상황은 동료들과 계속 공유했다. 우리는 한 몸이었다. 생활이 힘들다는 동료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아파트 담보 대출을 받아 급여를 나누어 주었다. 어느새 마이너스 통장도 바닥이었다. 결국 설 연휴를 앞두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우리 회사의 상황을 전달하고 연휴 동안 생각해 보고 나가실 분들은 알려달라고 했다. 더 이상 급여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회사를 접고 그만두고 싶다. 하지만 같이 시작한 것이니 내 마음대로 회사를 끝내면 안 될 것 같다. 여러분이 모두 나간 뒤에 마지막으로 회사를 접겠다. 비통한 마음이었다. 흰 늑대는 그냥 폐업하라고 했지만, 함께 노력한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것이 여섯 번째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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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다음 주. 나는 감동에 휩싸였고 이 일을 여기저기 자랑하듯 말하고 다녔다. 우리 동료들 너무 멋지지 않아요?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블로그와 SNS에도 올렸고 많은 응원을 받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동료들이 마지막 급여를 회사 계좌로 반납한 것이다. 임대료에 보태라고 했다. 더 감동적인 부분은 대다수가 남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리 끝까지 가 봅시다! 새로 뽑은 신입들은 왠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아서 퇴사시켰다. 너희까지 희생할 필요는 없잖아. 더 이상 급여가 나갈 돈은 없었고 임대료와 공과금 등으로 빚만 계속 쌓여갔다. 4대 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두 휴직 상태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아껴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직은 회사에서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들 기꺼이 휴직 신청을 해주었다. 당시 만나던 연인은 나에게 말했다. 지금 그분들 각서나 동의서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힘든 결심을 한 동료들을 믿어야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 이것이 일곱 번째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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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길을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중 광주광역시에 있는 기관에 추천을 받게 되었다. 조만간 게임 개발 지원 사업이 있을 예정인데, 광주에 있는 회사만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급히 광주에 공유 오피스를 구하고 회사 지점을 냈다. 돈이 없어 작은 사무실 밖에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와 TS 군, PD님까지 셋만 광주로 내려갔다. 서울에 있던 사무실은 더 이상 임대료를 낼 수 없어서 퇴거하기로 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장애인 학교 창고에 있는 작은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조건은 장애인들에게 게임 개발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동료들은 노력했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광역시에서 게임 개발 지원 사업을 받게 되었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했지만 두 번째 도전에서 드디어 통과가 된 것이었다. 이제 한 동안 지원금으로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게임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TS군, PD님은 작은 원룸을 구해서 광주에 머물렀다. 개발은 서울에 머무는 팀에서 진행했는데, 종종 장애인 학교 원장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데 괜찮은 거냐고.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사무 공간에 에어컨이 없어 더위 때문에 모두 힘들어해서 재택을 하는 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내가 카드론을 받아 에어컨을 설치해 주었다. 장애인 수업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원장 선생님과 대화를 해보니 우리 동료들이 장애인을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이 우선이기에 이렇게 되면 공간을 대여해 주기 곤란하다고. 결국 내가 해야 했다. 광주에서 매주 두 번씩 서울로 올라가서 장애인들에게 3D 그래픽 수업을 진행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실수였다. 왜 내가 카드론을 내면서까지 에어컨을 샀을까? 왜 내가 그 먼 거리를 오가면서 직접 수업을 하려고 했을까?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틀린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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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인터넷에 괴문서가 돌았다. 평소에 연락이 없던 지인들이 오랜만에 연락을 하며 괜찮냐고 수없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링크 몇 개를 보여주었다. 내가 그동안 SNS에 올린 글들이,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나 투자 취소에 대한 격한 감정을 담은 표현들, 심지어 할아버지의 실버타운 문제에 대한 불평까지 전부 이상한 형태로 박제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악의적인 편집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각각의 글이 언제 어느 상황에 있던 이야기인지 알만한 것들이었다. 온라인상에서의 나는 동료들을 속이고 비웃으며 뒤로 몰래 혼자 이익을 챙기는 악당이 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고 허탈했다. 더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당시 나를 팔로우하고 있던 사람들은 3대 SNS를 합치면 2만 명에 가까웠다. 그들 중 다수가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도 악플과 온갖 협박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마녀 사냥이었다.


유일하게 나를 끝까지 믿어 주는 것은 블로그 이웃들 뿐이었다. 그들은 더 오래전부터 나를 봐왔고, 내가 그동안 서로 이웃 공개로 쓴 속 깊은 이야기들도 알고 있었으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동료들에게도 이를 공유했다. 이런 글이 돌고 있는데, 진짜 황당하지 않아요? 그런데 표정들이 이상했다. 설마. 이걸 믿는 건 아니지요? 답답해하고 있으니 PD님이 오셔서 토닥여 주셨다. 잠시 흘러가는 일일 겁니다. 걱정 마세요. 이것이 마지막 아홉 번째 실수였다. 곧바로 신고해서 악의적 편집을 한 누군가를 잡았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신고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서 관련 글이 모조리 사라졌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는 타이밍까지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사실 범인이 누군지는 알고 있다. 내가 찾아냈으니까. 하지만 이 범인을 밝힐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그도 답답했던 거겠지. 그리고 며칠 뒤, 내가 고소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대는 가장 믿고 있던 동료들 중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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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좋지 않다. 누구의 탓을 할 생각도 없고 나를 변호할 생각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나의 실수를 기록하려고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사건에서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하거나 억울하다고 생각한 내용은 훨씬 많지만, 그중 수사와 재판을 통해 법원에서 인정된 이야기만 담고 있음을 밝힌다. 내 속의 이야기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하니까. 이 아홉 가지 실수가 없었더라면 나는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조금 시간을 두고 마음을 추스르며 남겨야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시기를. 강철 같다고 생각한 멘털마저 바스러지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갔던 이 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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