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머신의 꿈

내가 조금만 더 잘생겼더라면!

by 마이즈

안양 지하상가에 있는 게임 매장, ‘으뜸’에서 일하던 시절. (으뜸) 출근길에 새로 생긴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엥? 오므라이스 전문점이라고? 그거 분식집에서 파는 메뉴 아닌가? 하지만 가격을 보니 내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게 비쌌다. 몇 걸음 뒤의 식당가에서 파는 가격의 2배 정도였다. 오무토라는 브랜드였다. 나중에 여자 친구가 생기면 돈 모아서 특별한 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퇴근 길에 계속 눈에 걸리다 보니 어쩐지 로망이 생겼다. 문 틈으로 보이는 서빙하는 알바생들도 고급스럽고 멋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인싸나 하는 알바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겜돌이였으니까. 여담이지만 훗날 오무토는 결국 혼자 갔다. 그냥 그랬다. 기대가 높아서였을까? 맛치라서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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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드디어 음식점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나의 첫 번째 알바 식당은 명동 돈가스였다. 놀랍게도 경상북도에 있는 가게였고 동네가 명동도 아니었다. 아무튼, 이 가게에서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설거지였다. 종종 손님이 없을 때는 빈 접시에 단무지와 샐러드를 세팅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다른 직원이 돈가스를 튀겨 바로 얹어서 나갈 수 있도록. 기대했던 서빙 일은 할 수 없었다. 아마 외모 탓이겠지? 그래도 손님이 나간 자리의 뒷정리는 종종 할 수 있었다. 지금 들으면 다들 손사래를 치겠지만, 당시 가게에서는 손님이 손을 대지 않은 반찬은 그대로 수거해서 다음 손님에게 다시 내보냈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고 중고등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남은 도시락 반찬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그게 문제라고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아깝게 음식을 버릴 수는 없지 않나? 물론, 돈가스는 다들 잘라먹기 때문에 다시 나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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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자리를 치울 때면 남은 돈가스 한 조각씩 몰래 집어 먹는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으면 속으로 빌었다. 제발 한 조각만 남기고 가기를.


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 커뮤니티 사이트에 익명 글이 올라왔다. 이 가게에서 반찬을 재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내 이야기도 있을까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 음식을 치우는 알바가 남은 돈가스를 먹더라는 말은 없었다. 휴 살았다. 사장님은 그 익명 글을 내가 올렸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이것 또한 외모 탓이겠지. 이런 의심은 이제 익숙하다. 앞으로 남은 반찬은 모두 버리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에게는 아주 감사한 이야기였다. 버리긴 왜 버려? 남은 반찬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내가 챙겨 왔다. 덕분에 한동안 냉장고가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 익명 글이 문제였는지 손님이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알바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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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PC방 일을 하다가 군대에 가며 그만두게 되었다. (PC방 매니저의 긴긴밤) 이상한 이유로 군대에서 쫓겨나 두 달 정도 쉬는 기간이 생겼다. (초등학교에 간 군인 아저씨) 그냥 놀 수는 없어 알바를 구하다가 두 번째 음식점 일을 하게 되었다. 이번 가게는 장우동이라는 곳이었다. 매장은 좁았고 직원은 아주머니 두 분과 알바생인 나까지 셋이었다. 한 분은 주방 전담. 한 분은 홀 서빙과 계산. 나는 당연히 청소와 설거지를 담당했다. 이번에도 서빙은 못하게 하셨다. 역시 외모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가게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는데, 일부 메뉴를 직접 만들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실 만들었다고 하기는 민망하다. 레트로트 음식처럼 본사에서 나온 비닐을 뜯고 끓는 물에 섞는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설거지만 하던 내가 조리대에 서니 마치 셰프가 된 느낌이었다. 비닐을 뜯고 끓는 물에 넣고 채에 한번 거른 다음에 그릇에 담고, 다른 비닐을 뜯고 국물을 끓인 다음 그릇에 담으면 끝~! 아 마지막에 미리 담아둔 고명을 올려야지. 재입대를 하게 되며 이 가게는 두 달의 짧은 근무를 끝으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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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일한 음식점은 24시간 순두부찌개 가게였다. 회사를 다니는 상황이었지만 연봉은 낮았고 동생과 어머니를 서울로 데리고 오려면 돈을 모아야 했다. 야근이 많다 보니 늦은 시각에 일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어렵게 구한 자리였다. 나의 근무 시간은 밤 0시부터 5시까지였다. 이후 세 시간쯤 자고 출근해야 했다. 번화가에 있다 보니 술에 취한 새벽 손님이 많았다. 가게는 돌솥 밥이 같이 나가는 곳이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설거지를 담당했다. 지겹겠지만 또 외모 탓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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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가게에서 가장 힘든 일은 돌솥 세척이었다. 분명히 뜨거운 물을 붓고 불려서 누룽지를 먹었을 텐데, 매번 들어오는 솥 안에는 딱딱하게 굳은 밥이 붙어 있었다. 항상 특별한 도구(?)로 박박 긁어내며 세척했는데, 가끔은 돌처럼 단단히 굳어 돌솥을 만드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불량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어차피 홀에 나갈 일이 없다 보니 가게 뒤편에 있는 야외 공간에서 바닥에 앉아 솔질을 했다. 이 공간은 옆에 고깃집이 같이 사용했는데, 고깃집 알바생도 딱딱하게 굳거나 눌어붙은 불판을 가지고 문질러 댔다. 거의 매일 밤 같이 벅벅벅벅 솥과 고기판을 긁는 사이였지만, 한 번도 인사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괜히 말을 걸었다가 도와달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마 상대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어쩐지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내가 벅벅 긁다가 멈추면 상대가 벅벅 긁기 시작했다. 둘 다 동시에 멈추면 안 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었던 걸까? 이상한 주술의 노래를 함께 연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양팔이 저릴 때까지 솔질을 하며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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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롯데리아 같은 페스트 푸드 점에서 짧게 일하긴 했지만, 대타로 간 거라서 정식으로 근무한 음식점은 세 군데뿐이다. 그 와중에 남들은 그렇게 쉽게 한다는 서빙 알바를 결국 한 번도 해볼 수 없었다. 이 또한 외모 콤플렉스를 키우는데 한몫했던 것 같다. (못생겨도 괜찮아) 대신 나는 세 군데 모두에서 설거지 머신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빌 게이츠가 설거지를 좋아한다는 글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설거지도 막상 시선을 바꿔서 바라보니 의미 있는 일이 되더라. 결국 서빙의 로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설거지에 대한 철학을 가질 수 있었고 음식을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질 수 있었다. 아, 그리고 돌솥밥을 먹을 때는 옆면에 붙은 밥풀은 미리 떼어 주자. 누군가의 고생을 덜어줄 수 있으니까. 아니, 요즘은 다른 기술이 생겨서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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