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호 May 16. 2024

모르는 영어 단어 매일 찾기

일과가 끝나고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진지 공사를 하며 하루 종일 삽질을 한 뒤에도, 훈련을 뛰고 들어온 뒤에도 나는 매일 같이 영어 단어를 찾았다. 하루에 한 단어를 찾더라도 책을 펴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 단어 밑에 한글로 뜻을 적었다. 


외우는 건 그 때도 지금도 싫어한다. 중고등학교 내내 영어 단어를 외우라는 소리를 듣고 몇 번 시도 해 봤지만 영어 단어를 외우는 일 자체를 몸과 머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어 단어를 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르는 단어를 한 번 두 번 아니면 백번까지 찾다 보면 자연스레 외워지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단어를 매일 같이 찾았다. 이미 한 번 찾았던 단어라도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사전을 열고 똑 같은 단어를 찾고 그 밑에 똑같이 뜻을 적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안 찾아도 되는 단어가 점점 늘어났다. 


영어 단어를 찾기로 마음 먹은 날, 처음 찾은 단어는 중학생도 알 법한 단어였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 법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거의 초등학생도 모르면 이 단어를 왜 몰라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수운 단어였다. 


그렇게 군대에서 영어 공부 아닌 공부를 했다. 침상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도 눈치를 안 받아도 됐다. 단어를 찾고 또 찾는 일이 재미가 있었다. 귀찮고 하기 싫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책을 펴지 않고 단어를 찾지 않으면 마음 어딘가가 불편했다. 어차피 남는 시간, 단어 하나라도 찾고 책을 덮자라는 마음이 컸다. 


그 한 권의 미국 소설책 속의 모르는 단어를 찾는 일은 가을에 시작되어 겨울이 끝날 무렵에 마무리가 됐다. 마지막 장의 단어를 다 찾고 난 뒤에는 뿌듯함과 공허함이 같이 밀려 왔던 것 같다. 


한 권의 책 속에 모르는 단어를 다 찾았지만 내 영어 실력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다만 계급만이 바뀌었고, 내가 집으로 돌아갈 제대 날짜가 반년도 남지 않았다는 것만이 달라져 있었다. 


그 뒤로도 다른 소대의 누군가가 들고 들어온 영어 소설책을 갖게 됐다. 책을 열고 단어를 다시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처음과 같이 부지런함은 없었다. 책이 재미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단어 찾기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 들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 책으로 영어단어 찾기는 끝내지 못했다. 


다시 여름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 될 무렵 나는 제대했다.   

작가의 이전글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