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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Dec 29. 2023

눈이 왔네요

11월 중순, 삿포로에 첫눈이 오긴 왔는데…

그 후론 거리에 살풋이 깔릴 정도만 오더니 날씨가 춥기만 했다.

제설도 제대로 안 된 거리에 질퍽해진 눈이 녹았다 얼고 그 위에 간간히 얇게 눈이 또 얹혀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원 안쪽은 눈이 쌓였으나 거리는 그냥 빙판이었다.

예년에 비해 적설량이 너무 적어 스키장이 개장을 미루기도 했으니 눈 보러 삿포로에 여행 오는 사람들은 꽤 아쉬웠겠다.

그러다 이번주 눈이 제법 왔다.

굵은 함박눈은 아니고 가볍고 포슬포슬한 싸락눈이 오래오래 내렸다.

사생활보호를 위해 24시간 닫혀있는 얇은 커튼까지 모두 활짝 열어놓고 눈멍을 했다.

서울의 눈은 주먹만 한 크기에 습기를 가득 머금어 묵직하게 떨어진다. 한주먹 집어 꾸욱 누르면 뽀드득하며 단단하게 뭉쳐져서 눈사람도 쉽게 만들어지는 눈이다.

삿포로의 눈은 쌀가루 같다. 작고 메마른 가루 같은 눈이 깜깜한 하늘에서 흩날린다. 눈이 내린다기보다는 입자 굵은 안갯속에 서 있는 기분이다.

가볍고 가벼운 눈은 아래로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을 맴돌며 머문다.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 가사처럼 하얀 눈 하늘높이 자꾸 올라가는데 옆집 지붕에는 어느새 소복하게 눈이 쌓인다.

이제야 삿포로스러워진 풍경이다.

삿포로 주민인 친구는 올 겨울 눈이 적게 와서 너무 좋다는데, 살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방인인 나는 매일매일 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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