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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an 05. 2024

우리 손잡고 커피 마시러 갈까?

새해 첫날, 엊그제 나를 보러 온 남편과 모이와야마 산에 갔다.

로프웨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간단한 점심을 먹고 올 생각이었는데, 우리가 로프웨이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운행이 끝나 있었다.

아침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만 운행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이라 회사고 상점이고 간에 대부분 문을 닫더니만 케이블카도 멈추냐… 그래도 여기 관광지인데…

슬슬 걸어 산을 오르려 해도 눈이 많이 내려 등산로도 폐쇄되었다.

그냥 로프웨이 입구 마당에서 뽀득뽀득 눈을 밟으며 천천히 걸었다.


어슬렁어슬렁 전차를 타러 내려오는데 올라갈 때 문이 닫혀있던 커피숍이 열려있었다.

눈구경하면서 추위나 녹이자며 들어갔다.

커다란 창가에 앉아 ランチセット(런치세트) 였었나, 커피 한잔에 토스트를 곁들여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노부부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카페로 오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여든은 훨씬 넘어 보였는데, 특히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걸음걸이가 더 불안정해서 할아버지의 팔짱에 의지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품에서 목도리인지 숄인지가 툭 떨어졌다.

어? 하는 찰나에 남편은 벌떡 일어나 카페 밖으로 나가 할머니가 떨어뜨린 것을 주워서 건넸다.

다정한 사람…


자기 일본어 하나도 못하잖아. 머라고 했어?


어르신이 영어를 좀 하시던걸.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이런 낯선 풍경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느지막한 아침, 카페에서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하며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오후 서너 시, 바에서 맥주 한잔과 감자튀김 한 접시를 놓고 책을 보는 할머니.

주말 아침 파스타와 그라탕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노부부…

내가 다니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SNS에서 핫한 곳이 아닌 동네 가게거나 흔한 일본의 프랜차이즈 가게여서인지 손님들의 연령대가 무척 다양한 편이다.

그 중에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카페나 패밀리레스토랑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게 내게는 충격이었다.

나의 부모님들도 70대 중후반이신데 이런 데에 가시던가…?

밥집은 가시지만 카페엔 잘 안 가시지 않나?

카페에 가시더라도 모임이 있을 때나 가시지 이렇게 일상에 녹아든 모습으로 가시는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한밤중 포장마차도 아닌 대낮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할머니 혼자 맥주 한잔이라…

한국에서는 아마 무척 사연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나는 일본 생활 다른 어느 부분에서보다 이런 장면에서 과거에 일본이 우리보다 한참을 앞섰었구나를 느낀다.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2~30년 후에 우리가 여든 살이 되면 우리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겠지?

자기야, 그때도 지금처럼 손잡고 커피 마시러 오자.


그러자,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다 하자.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따뜻했던 쉰세 살 맞이 새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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