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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Jan 12. 2024

눈을 닮은 비, 비를 닮은 눈

눈이 옵니다.

하루종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더니 갑자기 그치고 하늘이 파랗게 보입니다.

그 사이에 눈은 발목을 훌쩍 넘어서게 쌓였네요.


삿포로의 눈은 비처럼 옵니다.

몽글몽글한 눈송이가 바람에 흩날리듯 흔들리며 거꾸로 하늘높이 올라가는, 그런 함박눈은 아주 드뭅니다.

안갯속에 있듯 이슬비 속에 있듯 눈앞이 뿌옇게 잘디 잘은 가루 같은 눈이 쏟아집니다.

파우더 스노우라고 하더라구요.

옆집 지붕에 소복이 쌓인 눈이 바람에 날리면서 작은 눈보라를 일으킵니다.


삿포로의 비는 눈처럼 왔었습니다.

잠귀가 밝아 언제나 빗소리에 잠이 깨곤 했었는데 삿포로에 살면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네요.

장마가 없는 삿포로지만 여름엔 거의 매일 밤 비가 왔었는데도 말이죠.

베란다도 없는 원룸에 유리창 하나로 외부와 구별하고 그나마도 여름엔 창을 열고 살았는데도 빗소리를 듣지 못했었습니다.

흰 눈이 내리는 날은 다른 날보다 더 고요한 것처럼 삿포로의 비는 그렇게 눈처럼 소리 없이 내렸었습니다.

침대에서 보이는 창문


하루종일 눈이 내리던 날, 문득 ‘비처럼 눈이 오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보려고 소파의 위치를 바꾸고 내내 눈멍을 합니다.

눈인 듯 비 같고, 비인 듯 눈 같은 삿포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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