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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Dec 22. 2023

그럼 뭐가 맛있어요?

지난번 글에서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일본음식들을 줄줄이 늘어놨지만 맛있는 것도 물론 아주 많다.

지난여름, 일주일간 내게 다녀갔던 막둥이 딸은 엄마랑 있으면서 뭐가 제일 맛있었냐는 내 물음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옥수수’라고 대답했다.

일주일 동안 맛집이란 맛집은 다 뒤져가며 삼시세끼 정성껏 대접했건만 제일 맛있었던 게 마트에서 파는 250엔짜리 삶은 옥수수라니!

3주 뒤 나와 하코다테를 여행한 내 친구도 옥수수와 멜론이 제일 맛있었다는 거 보면 진짜 맛있는 거다.

가을에 나를 만나러 온 친구는 청어와 아스파라거스에 반해서 돌아갔다.

이자카야에서 이것저것 안주를 시켜 먹다가 배는 부른데 술이 남아 시켰던 아스파라거스 구이가 너무 맛있어서 그 후론 동네 야오야(八百屋, 야채가게)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사다가 버터에 볶아 주구장창 먹었더랬다.

미나미오타루 역 바로 앞에 있는 소바집에서 니신소바(청어소바)를 먹고 나서는 처음 먹어보는 청어가 너무 맛있어서 생선가게에서 꾸덕하게 말린 청어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기도 했다.

시코츠 호숫가 작은 휴게소에서 사 먹은 생선정식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겨울이라 휴게소가 문을 닫았지만 날이 풀려 다시 영업을 재개하면 꼭 다시 가서 먹을 생각이다.

고구마도 맛있다.

내가 사는 곳 근처의 나카지마 공원에서 고구마 축제를 열 정도로 이 동네 사람들은 고구마에도 진심이고 그럴 만큼 맛있다.

군고구마 냄새는 한밤중 라면냄새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절대 지나치기 어려운 매력이 있어 꼭 한 개씩 사지만… 군고구마는 맛보다 냄새가 더 맛있다.

그 밖에 삿포로 제일의 음식인 스프카레(어딜가도 중상급의 맛은 보여주는 것 같다), 유제품, 삿포로 클래식 맥주 다 맛있다.

조리되어 나오는 음식보다는 재료 자체가 맛있다.

채소, 생선 등 모든 원재료가 다 싱싱하고 맛있다.

그리고 거기에 나는 추억을 더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족과 음식을 먹을 때 ‘엄마가 삿포로에서 이거 먹었을 때~’하며 이야기하겠지.

어디를 가든 아스파라거스를 보면 홍선생이 생각나고 옥수수를 보면 서여사가 생각나겠지.

나 여기 있는 동안 놀러 와서 나에게 새로운 추억의 맛을 더해줄 사람 누구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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