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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Dec 15. 2023

다 맛있지는 않아요

내가 여행객이었을 때는 일본의 모든 음식들이 다 맛있었다.

그때 느꼈던 내 입맛은 원래의 입맛에 여행이라는 감칠맛이 더해져서 아마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을 거다. 진짜 맛있으면 진짜 맛있어서, 설마 맛이 없었어도 한 번만 먹으면 끝이니까 싶은 마음에, 처음 느끼는 요상한 맛이어도 이것이 현지의 맛이구나 하면서 내 뇌는 지맘대로 혀가 느낀 진짜 맛과는 상관없이 모두 ‘맛있다’로 정해버렸을 것이다.

여행객이 아닌 거주자로서의 일본의 맛을 평가하라면… 나 집에 보내줘… 다. ㅠㅠ

여행이라는 MSG를 쏙 빼고 먹으니 음식은 역시 신토불이구나를 느낀다.


일단 김치맛이 다르다. 달고 끈적거리고 어딘지 모르게 질겅질겅 하고… 비싸지만 인터넷에서 한국에서 직수입한 김치를 사 먹는데 그것도 미묘하게 일본의 맛이 스며있다.

배추를 사다 겉절이를 만들었었는데 배추도 다르고 소금도 달라 그런지 도무지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난 주부 23년 차인데…


소바와 우동은?

홋카이도는 일본 최대의 메밀산지라 소바가 맛있다는데 내 입에는 글쎄올시다…

여기 소바는 이가 아닌 입술로도 툭툭 끊길 만큼 쫄깃함이 전혀 없고 식감이 거칠다.

이북출신의 조부모와 같이 살아 어릴 때 집에서 직접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었었다는 내 친구는 진짜 소바의 맛이라며 극찬했지만 나는 소바는 그냥 국물 맛으로 먹는다.

우동은 가게마다 차이가 너무 크다. 유명한 집은 진짜 맛있지만 아닌 집은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게 생생우동 끓여 먹는 게 100배 맛있는 정도다.


라면, 아니 라멘…

원래부터 일본식 라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기 라멘은 짜다!!!

오기가 생겨서 맛있다는 라멘집을 찾아다니며 먹어봤지만 라멘보다 물과 맥주만 더 마시고 왔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회.

스시는 밥이 있으니 일단 넘어가고, 사시미는 어떨까?

일본의 회는 한국보다 식감이 물컹하고 퍼석하다.

횟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쫄깃하고 탱탱한 맛이 별로 없다.

한국은 활어회고 일본은 숙성회라는 것을, 그래서 식감의 차이가 꽤 있다는 것을 일본에 살면서 알았다.


나는 입맛이 무던하고 아무 거나 잘 먹는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도 좋아해서 어느 나라에 가도 온 식구의 기미상궁을 도맡는다.

나름 손맛도 있어서 요리도 곧잘 하지만 ‘내가 하면 죽을 맛, 남이 하면 꿀맛’이라는 말을 요리의 진리로 알고 남이 해준 모든 음식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 살면서 이렇게 음식에 진상을 부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삿포로에서 먹던 이 음식들이 무척이나 그립겠지.

지금의 투덜거림이 부끄럽게 이 음식이 먹고 싶어 다시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디 보자… 오늘 저녁 머 먹을까…


(불평만 늘어놓았지만 사실 맛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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