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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Dec 01. 2023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됐다.

두 살 터울의 두 딸을 낳고 기르고, 어느 정도 딸들이 자라자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도 데려다 키웠다.

일본에 오기 전, 남편한테 매일 투덜거리는 것 중의 하나가 ‘똥 좀 안 치우고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막둥이 일곱 살 때인가, 첫 강아지를 데려왔으니 2002년 맏이가 태어나고부터 일본에 오기 전까지 3~4년을 빼고는 나는 매일매일 누군가의 똥을 치우며 살았다. 개똥이든, 고양이 똥이든…

일본에 오면서 나는 이제 내 똥만 치우며(?) 살고 있다.

그런데… 몸은 편한데 마음 한 켠이 아리다.

집 앞 공원을 지날 때마다 보이는 강아지들 때문이다.

일본도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지 우리 동네 공원은 개판이다. 개가 많다는… ^^

지금은 추워서인지 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언제 나가도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볼 수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학교를 가다 보니 매일 만나 인사하는 견주와 강아지도 생겼을 정도다.

나의 두 개아들(?)은 지금 친정에 가 있다.

친정부모님이 나 없는 동안 돌봐주는 중이다.

제때 끼니도 챙겨주고 매일 산책도 시켜주고 때맞춰 미용도 시켜주는데, 그래도 두 녀석은 행복하지 않은 모양이다.

두 딸이 한 달에 한번 정도 들러서 살펴주는데 표정이 밝지 않고 열한 살 시추는 급 늙은 것 같단다.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걸까?

북적북적 온 식구가 함께 살 때 그렇게 하기 싫어 징징대던 넘의 똥 치우는 일이 지금은 그립다.

두 딸은 이미 따로 살고 있고,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남편도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내가 돌아가면 이제 예전처럼 일일이 뒤치다꺼리하며 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들 독립했다.

나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진 거다.

나는 이제 돌아가면 늙은 두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며 나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나를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삿포로에 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 넘의 똥 치우는 일이 꽤 훌륭한 일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열한 살 강아지 띵구
열두 살 강아지 호야
아홉살 고양이 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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