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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과의 만남

M과의 만남은 운명인 건가?

by 시쓰남

25년 10월 09일 아침 06시 14분


흐린 아침. 영도 뒤 배경이 회색이다. 맑은 날이면 뻘겋거나 푸른 배경을 띄는데, 오늘은 내가 자주 입는 옷 색깔처럼 회색이다. 오늘은 연휴 마지막이자 한글날이다. 지금 내 글쓰기 배경이 되고 있던 80년대에는 한글날이 국경일이었는데, 중간에 제외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누구 맘대로 국경일을 바꾸는 것인지, 제헌절도 어릴 때와 달리 현재는 국경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제외된 만큼 추가가 되지는 않았다. 제외 한 만큼 추가는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네.


어제 명절 에피소드인 떠먹는 요구르트를 소개했다. 더 맛깔나게 잘 살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아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오늘은 누굴 소개해야 할지 아직 정해 진 게 없다. 글을 쓰면서 의식의 흐름을 맡겨야 하는 날인 거 같다. 아무도 소개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남아 최근인 대학 친구를 소환해 볼까?


오늘은 나의 대학친구 M을 소개하겠다. M과는 알고 지낸 지 벌써 25년이 넘었다. M은 둘째이자 막내이며 위로는 2살 터울 형이 있다. 초등학교처럼 친구집에 자주 놀러 가는 일은 드물지만 M의 집에도 몇 번 갔었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M은 아주 쾌활하고 스마트한 친구였다. M과의 에피소드도 정말 많은데 무얼 먼저 소개를 해야 할지가 걱정이다. 1학년때부터 시작하는 게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거 같고 흐름도 맞을 거 같아 그렇게 하겠다.


98년 우리는 처음 만났다. M은 문과출신이라 했다. (그런데 수학을 잘했다.) 집은 문현동. 여기서부터는 친구의 동네만 알지 세세한 주소까지 즉 몇 통인지는 모른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말투나 행동이 딱 봐도 경상도, 아니 부산 남자였다. 형님들 잘 따르고, ‘의리 의리’ 하는 남자로 느꼈다. 이런 이미지와는 조금 의아하게 매주 주일이면 교회를 갔다. 그래서 일요일에 볼 일이 있으면 일단 먼저 교회를 마친 다음 볼 수 있었다. M의 장기는 계속해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데 춤을 잘 추었다. 비보이나 박남정처럼 춤을 잘 추는 건 아니지만, 그만의 시그니쳐 댄스가 있었다.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을 부르고 춤을 춤 땐 우리 모두가 관객이 되어 M의 춤에 빠져 있었다. M이 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소품이 필요했는데 그건 주변에서 그 남아 구하기 쉬운 재료여서, M의 무대 준비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그건 바로 빈 페트병. 빈 페트병을 양손에 쥐고 뚜르트뚜루트뚜루트트루, 따라따라따라따라따따라, 이렇게 전주를 생목으로 시작해서, 그녀와의 이별 춤을 추면서 노래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M의 퍼포먼스에 이목이 쏠리고 그 집중된 신경은 M의 노래가 마치기 전까지 모두 M에 쏠려진다. 누구 하나 M의 노래 중에 딴짓을 할 수 없다. 무대를 휘어잡는 화려함에 모두 넋을 잃고 박수를 치며 M을 바라본다. 난 M의 춤을 추는 공연을 할 때마다, 저거 보통이 아니다. 이래 많은 사람 앞에 겁도 없이 저렇게 잘하다니 생각하며, 내 친구 인걸 자랑스러워했다. M은 틈틈이 체육대회나 동문회 및 기타 오락장소에서 장기를 뽐내었다. 요즘도 학과행사에 M의 춤과 노래를 요청하곤 하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노래의 템포가 너무 빨라 그녀와의 이별 대신 구피의 노래로 바꿨다고 했다. 그런데 그 노래도 만만치 않은 템포와 시간의 노래인데 M은 무난히 소화를 해 내는 걸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대단한 놈. 어릴 적 M의 퍼포먼스를 보며, 너 회사 들어가서 영업하면 정말 잘할 거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었는데, 아직 영업은 하지 않는 거 같다. 영업을 했다면 지금쯤 정말 임원자리까지 가지 않았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M과 나는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들어갔다. M은 4월 난 5월. 입대신청은 내가 먼저 했는데 영장은 M이 나보다 먼저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입대를 하고 초여름 같이 제대를 했다. M은 통신단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우연히 휴가 기간 중 학교에 놀러 왔을 때, M이 보낸 편지를 보고 주소를 적어가서 편지를 보냈다. 이것이 나중에 M의 장난이 되어 우리 중대에 전화가 왔었다. 갑자기 행정반에서 모 부대 간부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전화받으라는 호출이 왔다. (큰집 형이 군에서 부사관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혹시나 형인가 하는 맘으로 전화를 받으러 갔는데.)

“충성, XXX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건네받고 다시 “통신보안 XXX 전화 바꿨습니다”하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 저음의 목소리, 그건 내가 예상한 사촌형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목소리의 생소함으로 누구지? 누가 나에게 전화를 이란 생각을 했고, 난 아무것도 모른 체 충성과 잘 모르겠습니다만 연거푸 외쳤던 거 같다. 몇 시간 같은 몇 분 만에 전화의 주인공이 M인걸 알게 되었고, 어떻게 알고 우리 부대 전화했냐고, 반가운과 신기함에 통화를 주고받았었다. M은 통신병답게 부대 주소를 보고 전화를 했다 말해주었고, 타 부대 전화하는 방법도 아울러 공개해 주었다. 난 M에게 배운 방법으로 가끔 주둔지 및 검문소 생활을 할 때 주소를 알고 있는 동기들에게 전화를 해 보곤 했다. 어느 날 행정병에 들어갔는데, 일병 말 호봉쯤 되던 시기였던 거 같다. 갑자기 M에게 장난이 치고 싶어 졌다. 행정반 후임에게 양해를 구하고, M이 알려준 방법으로 M의 부대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이었다. 몇 개의 교환을 거쳐 M의 부대에 접속할 수 있었다. “통신보안 XX중대입니다.”라는 응답이 왔고 나도 저음으로 목소리를 깔며 여기 수방사 헌병단인데 M상병 있지? M상병 바꿔.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 거다. 헌병대 전화이다. 이건 보통이 아닌 일임을 M의 부대 행정병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난 그때 헌병으로 보직을 받아 군 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어떻게 헌병으로 배정되어 군 생활을 했는지는 미스터리다. 군대에서 10번째 스머프에 속했고 매번 큰 키의 선임과 후임들 사이에 난 어울리지 않는 미운오리새끼 같았다. 그 남아 다행 인건 우리 소대장님이 나보다 키가 작으셨고, 1 소대장님도 나보다 작았는다는 거 말고는 다들 키가 커서 내가 여기에 왜 와 있나를 제대할 때까지 생각했다. (군대 에피소드도 많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M이 전화를 받는다. 헌병이란 소리에 바짝 얼어 있다. 나중에 M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내 전화에 쫄만한 사유가 있었다. 크고 작은 군대 얼차려가 존재했고, M은 그걸 후임들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통화 내내 구타 첩보가 접수되었다. 너 후임들 때린 거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고, M은 당황하며 “아닙니다”를 연거푸 외치고 있었다. 한참 재미나게 놀고 있는데 행정반에 고참이 들어왔고, 나의 헌병 놀이는 이렇게 급 마무리되었다. 계속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던 M에게 나야 나, 너 잡으로 온 헌병 아니고 니 친구 Y. 상황을 파악한 M의 거친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왔고, 우린 이 일을 두고두고 안주거리 삼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간간히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고, 무탈하게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M이 알려준 전화접속 방법은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았고, 해군 친구 J에게도 전화를 해 보았었다. (J도 나중에 소개하겠다.)


M과는 학부생활 4년 같이 보내고 대학원도 같이 갔다. 한 학기가 내가 빨라 먼저 들어왔고, 그다음 학기에 M이 정식 입학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구실은 같이 들어갔다.

첫 연구실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힘들어할 때 마침 추가 인원을 구한다고 하여 M을 소개했고, 그다음으로 M이 바로 연구실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옆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우리만의 추억을 쌓아갔다.

연구실 에피소드 하면 이게 단연 압권인 게 바로 노래방 사건. 이 사건 이후였나 전이였나 M의 별명엔 노래방도 추가된다. 교수님들과 노래방에 가면 항상 부르시던 애창곡이 있었다. 매번 그 노래를 찾아 번호를 누르기를 수십 번. 어느 날 M은 교수님들의 애창곡을 모두 외울 의지를 불태웠는지? 아니면 실수로 그랬는지 (아직까지 의도를 파악치 못했다.) 노래방 책을 가지고 연구실에 나타났다. 노래방책도 있는지 유무를 모르다 가방을 뒤적이며 M이 왜 이게 여기 있지라고 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린 어제 과음을 했고 그 와중에 M이 노래방에서 책을 챙겨 가방에 넣은 것으로 추정한다. 누가 그의 가방에 그걸 넣어 주고 말고 할 사람이 없는데. 난 절대 아니다. 이리해서 연구실에서는 또 한 번 큰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M의 입지는 연구가 아닌 예능 담당으로 더욱 굳혀간다.


연구실 앞에는 연구원들을 소개하는 프로필이 있었다. 박사과정 누구, 석사과정 누구,

이때 난 장난으로 한 과정을 더 추가해서 연구실 프로필을 만들었고, 교수님에게 혼이 날게 두려워 게시는 못했고, 싸이월드에 업로드해서 소개했던 걸로 기억난다.

프로필은 연구과정, 개인사진과 간략한 자기소개정도.

난 M을 위해 ‘도사과정’을 만들었고 사진은 M이 그녀와의 이별을 부르던 한 장면을 따와서 붙여주었다. 양손에 페트병을 들고 춤을 추는 사진으로. 누가 봐도 도사과정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진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어서 우리 연구실은 3 과정 체제가 확립되었다. 일반과정인 석사, 박사과정, 그리고 특별과정인 도사과정. 이런 연유였을까 우리의 M은 석/박사를 모두 마치고 졸업하게 된다. 진정한 난 놈이다. 박사까지 할 줄을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내 주변에 박사가 있다니. 도사까지 했으면 더 좋았겠지 만 박사 졸업을 하고 사회로 진출했다.


M과의 이야기는 아직 더 많다. 그리고 같이 연구실에서 생활한 S를 빼놓을 수 없겠네. 우리는 삼총사였는데. 다음에 S를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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