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떠먹는 요구르트와의 만남

니들이 이 맛을 알어?

by 시쓰남

25년 10월 08일 오전 09시 03분


연휴에 나의 일상 패턴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인지, 나의 의지가 부족한 건지, 아침 알람을 듣고도 무시하며 계속 잠을 자다 이제 나왔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는지 잠깐 꾸는 꿈에서도 글 쓰는 장면이 나왔던 거 같은데. 진작 일어나서 쓸 것이지 꿈에서 쓴 걸로 ‘퉁’ 치려는 마음이 살짝 있었다.

오늘 아침 맑음. 요즘 날씨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뀐다. 여름에 소나기 오듯 갑자기 어두워져서 비를 뿌리고 다시 맑아지는 일들이 요 근래 계속되고 있다. 낮에 움직이면 살짝 덥다.


어제는 O를 소개했다. 나의 풋풋했던 시절. O와의 추억을 더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명을 짧게 할 수도 있기에 여기서 마무리 짓겠다.

떠먹는 요구르트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했는데 많이 지연되었다. 마침 지금이 명절 연휴이기도 하고 이 에피소드도 명절에 일어난 것이니 소개해 보겠다.


89년 설쯤으로 기억한다. 눈이 와 있었고, 작은아버지집에 모인 것, 그리고 용돈이 많은 점 이 세 가지만 봐도 설이 맞다. 작은아버지 집에는 3명의 사촌동생들이 있었다. (나중에 한 명이 늘어난다.) 그리고 할머니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이렇게 6명의 식구가 살고 있었다. 문제의 에피소드는 사촌동생들과 우리 집 S가 가게를 다녀오면서부터 일어난다.

동생들은 설 세뱃돈을 받은 것으로 평소 잘 사 먹지 못했던 간식을 사 먹으러 J네 가게로 갔다. 그리고 그 당시 300원 정도 했었을 건데, 떠먹는 요구르트를 사서 4명이서 일렬종대로 각자 먹으면서 작은집으로 오고 있었다. 4명의 꼬마 친구들이 집 근처 와서 단체로 나를 불렀다. “오빠, 이거 먹어봐 좀 이상해.” 나도 아직 접하지 못한 새로운 문물이었고 짜식들 오빠를 위하는 마음이 이리도 컸었나 생각하며, 부름에 지체 없이 나가 떠먹는 요구르트 맛을 보았다. 왜 여러분들도 기억하실 거다. 처음 맛본 떠먹는 요구르트 맛은 약간 시큼했고 발효가 되어 평상시 먹어보던 간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상한 건지 안상 한 건지 모를 듯한 이상한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그런 희한한 간식이었다. 첫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어보고 이 이상 오묘한 맛은 1초의 지제도 없이 바로 입 밖으로 결과를 뱉고 동생들은 나의 말에 따라 행동을 옮겼다. 난 “야, 이거 상했다. 버려라.”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상한 게 아니고 본연의 맛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에 냉장고에 있는 제품이 상하기는 그리 쉬운 게 아닌데. 처음 보는 이 오묘한 맛을 나는 상했다고 판단했고, 동생들에게 빨리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동생들도 나의 말에 동의하는지 모두 가지고 있던 떠먹는 요구르트를 눈에 버리면서 웃고들 있었다. 그렇게 처음 대면한 떠먹는 요구르트. 요즘은 떠먹는 것도 귀찮아 짜서 먹고 부어 먹는 요구르트지만, 그때 그 맛을 몰라서 온전한 새것의 요구르트를 눈밭에 버리게 한 기억이 떠오른다. 마트에서 떠먹는 요구르트 진열대를 지날 때 면 난 가끔 이 사건이 일어난 89년 설 즈음으로 돌아가고, 사촌 동생들과 우리 집 S를 떠올린다. 애들도 지금은 알겠지, 그때 내가 잘 못 판단했다는 걸. 그다음에 다시 떠먹는 요구르트를 만났을 때도 맛은 변화가 없었으니까. 미안하다. 혹 이 사건을 기억하고 오빠 요구르트 사줘 한다면 내 기꺼이 한 줄씩 사주리라. 나도 경험이 미천했던 지라 너희들에게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300원이면 아주 비싼 간식이었는데, 이 오빠의 말을 믿고 눈밭에 버린 너희들의 용기에 감사를 표한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5화O와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