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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소주)와의 첫 만남과 그후

너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by 시쓰남

25년 10월 21일 오전 08시 36분


가을 같은 아침이다. 아니 이게 가을인가? 예전처럼 반팔을 입고 아침을 맞이하기엔 너무 쌀쌀하게 공기가 변해 있다. 우리 집 누군가처럼 삐쳤는지 어제오늘 날씨가 다르다.

어제는 포항을 다녀왔다. 지인을 만나고 식사하고 차 마시며, 그동안 못 주고받던 안부를 주고받았다. 가족 모두 안녕했고, 별다른 이슈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집에 오기 전에는 포항에서 유명한 빵집의 빵도 사주었다. 저녁때 가족들이 모여 맛있게 먹는 시간을 가지며 다시 한번 포항 지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잘 먹었습니다.


어제 동아리의 J와 Y를 소개하려 했으나 또 서두가 길어져서 별다른 소개를 못하고 넘어갔다. 대신 인물은 아니지만 ‘우슈’와 ‘술’ 친구를 잠깐 소개했다. '우슈'야 내가 몸치고 몇 동작 몰랐기에 많은 말은 할 수가 없지만, ‘술’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가끔씩 만나는 친구가 되어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잠깐 더 소개하고 지나갈 까 한다.


첫 술에 취해 버스에 흥얼거리던 날. 그다음 날. 나는 아침부터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렸고(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이유로) 아픈 환자처럼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아픈 게 맞았다. 숙취가 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식사도 건너뛰고, 계속해서 누워있었다. 그러면서 어제 맛을 본 술을 사람들은 왜 마시는지 두 번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다짐하며 빨리 속이 안정을 찾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누워 있기를 계속했다.


처음 소주와 만난 건 고3 가을 체육대회였다. 그때 다른 친구 놈들이 학교에서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소리를 하길래, 우리 무리도 호응하며 고기를 구워 먹기로 했다. 버너를 가져오고 불 판을 챙기고 고기를 사서 준비를 마쳤고, 점심시간에 학교 뒷산 어딘가 쯤에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 구워 먹기 전 학교 앞 가게에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몽룡’ 이란 이름의 소주를 사 와서 그 뚜껑에 따라 한잔씩 친구들과 술잔을 돌려 마신 게 소주와의 첫 만남이었다. 뚜껑은 일반 소주잔보다는 작았지만, 나름 소주의 맛은 느낄 수 있던 정도라 기억이 나는데 그때 무슨 소주 맛을 알겠는가? 다들 친구 놈들 옆에 있으니 객기로 마시는 수준이었다. 다들 ‘캬’ 하는 효과음을 내어가면서 두 잔 정도씩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고기는 맛있었고, 우리는 배고픈 청춘이었고,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나이였다. 그래서 서로 고기를 먹겠다고 아웅다웅이고 한 친구는 급기야 다 익지도 않은 아직 핏기가 남아 있는 그래서 뻘건 물이 흐르는 고기를 먹겠다면 젓가락 기술을 발휘했고, 그걸 입에 넣으며 우리의 야유와 고기를 함께 씹어 먹었다. 이렇게 재미난 우리만의 파티를 마치고 체육대회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우리 중 한 명에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체육대회를 마칠 때까지는 몰랐는데 우리끼리 노래방에 갔을 때 이놈이 평소와는 다른 행동 말투를 보이며 술에 취한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고작 2잔도 안 되는 그 술에 이 친구가 취해버린 것이다. 이 친구는 Y. 아직도 군산 가면 만나는 친구다. Y는 이때부터 그랬다. 술이 약한 친구였고, 조금만 마셔도 온몸이 불게 타들어 가는 홍남으로 변신하는 남자였다. 노래방에 갔을 때 거침없는 행동과 노래는 술에 취해 그런 것이었고, 나중엔 옷을 까서 배를 보여주는데 심지어 배까지도 빨겠다. 그 후 우리는 “배 빨게”로 한동안 Y를 놀렸었다. 이 체육대회 때 난 소주친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때는 별다른 걸 느끼지 못했고, 맛도, 씁쓸함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친구들 마시기에 나도 뭐 따라 마시는 그 정도의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처음 취했던 날 소주 맛을 나는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쓰던 알코올램프와 비슷한 냄새가 났고, 그걸 자꾸 형들은 부어주며, 마시라 권하고, 마시면 또 부어 주시곤 했다. 그렇게 탕수육을 앞에 놓고 많은 소주를 마셨고 나는 취해서 버스를 탔다. 그 냄새나는 그것을 왜 마시는지 이유도 모른 체. 그러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소주를 마시는 이유를 체득하게 되었고, 이런 기분 좋은 모드로 변경될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그 대가는 무지 크다는 걸 내일이 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술 마시면 기분이 좋다. 갑자기 용기도 생기도 화도 치밀어 오르고 이건 케바케인데. 여하튼 대부분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이 기분 좋은 마음을 계속 가지고 가기 위해 내일을 계산 않고 마시다 보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술 마시는 몇 시간 즐겁자고 내일을 몽땅 망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다음부터 내가 술을 마시면 XX이다 다짐에 다짐을 하면서도 그 ‘술’ 친구 앞에 서면 왜 이리 내 다짐들은 작았고, 초라했고, 대의에 맞지 않았는지, 이건 나의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술’ 친구와는 지금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않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서 안부를 묻고 헤어지는 정도. 예전처럼 빨리 많이 마시지 않고, 이제는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는 존재로 바꿔가고 있다.


술을 이야기하자니 너무나 많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준비해서 한번 해야 할 것 같다. 모두 술을 마시며 만드는 사건사고가 한 두건은 있을 것이다. 민망한 것도 있고, 재미난 것도 있고, 난 주로 재미난 걸 찾아서 이야기해 보겠다.

동아리에서도 운동을 마치면 매번 잊지 않고 술을 마셨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과였고, 그런 하루하루가 소중한지 몰랐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그날 하루하루가 지금 돌이켜 보면 다 소중하고 보석 같은 날들이었다. 그중 이 ‘술’ 친구 이름도 기억이 남는데 이 친구의 이름은 C1이었다. 이 친구 정말 많이 만났다. 이름에서는 쿨 내가 진동을 하는데 절대 쿨하지 않았으며, 성격이 있었다. 이때 23도 정도 했을 것이다. 그 독한 친구를 마시며 우리는 하루를 정리했고, 어느 날은 이 친구 때문에 기억이 끊겨 그 추억 많고 소중한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리기도 했었다. 이 친구 정말 대단한 친구다.


저 멀리서 형들이 부르는 거 같다. “우리 언제 나오는데? 그냥 가까?” 하는 듯하다.

J, Y는 오늘 들러리였나 보다. ‘술’ 친구 소개하다 보니 형들 뒤에만 세워 놓고 계속 기다리게만 했다. 미안합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오늘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그 기분 푸시게 소주나 한잔할까요? 형들과 언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해 집니다. 그 시절 이야기 다음부터 풀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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