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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왜 만나는 걸까?

너와의 인연도 길다

by 시쓰남

25년 10월 22일 오후 4시 05분


아침에 늦게 일어도 났고, 오전에 아들 학교 방문이 있어 그 일을 마치고 이제와 글을 쓴다. 요 며칠 계속해서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아침공기가 차가워져서 더 일어나기 힘든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의지가 조금씩 약해져서 그런 것인지? 아무 핑계나 대고 싶다. 내가 요즘 읽은 책 10배의 법칙에서는 절대 핑계를 대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라했는데 그런 가이드를 받고도 여전히 핑계를 생각한다는 게 참 나답다.


어제는 동아리 선배들 소개하려다 ‘술’을 소개했다. 잠깐 술친구도 빼놓을 수 없으니 술친구 소개를 하고 가겠다.

‘술’ 친구와도 인연을 맺고 알고 지낸 게 벌써 30년이 되어가려 한다. 20살 넘어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만나왔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가? 이 친구를 만나면 기쁨은 두 배 세배가 되고 슬픔은 깊이가 더해져 더 슬펐던 거 같다. 슬픔이 반이 되지는 않더라고. 소주친구, 맥주친구, 그리고 막걸리 친구가 대부분이었고 어쩌다 외국출신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들과는 위 세 친구들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면 유순해진다고 했던가? 소주 친구는 이전 보다 성질을 죽이고 많이 내려놓고 살고 있다. 도수의 앞자리가 ‘2’에서 ‘1’로 바뀐 지가 오래다. 그래서 가끔 내가 세월이 가면서 술이 더 쎄진건가? 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알코올 도수가 내려가서 더 많이 마시게 된 게 맞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주 만나는 친구도 변하였다. 30대 초반까지는 매번 소주 친구만 만났었는데, 중반부터는 소주 맥주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많아졌고, 지금은 난 이 셋 친구 중에서 고르라면 막걸리를 찾는다. 그래서 혹시 지방에 여행을 가거나 볼일이 있는 경우 그 지방 막걸리 친구를 찾아 마셔본다. 소주 맥주의 맛 차이를 모르기도 하지만 막걸리는 그 지방 특유의 지방색이 있어 그건 다른 친구들보다 차이가 나기에 기회가 있으면 찾아서 마셔본다. 고흥의 유자 막걸리, 제주도의 우도 땅콩 막걸리, 공주의 밤 막걸리 등 여러 막걸리를 마셔 봤는데 가장 입맛에 잘 맞는 친구는 부산의 생탁이고, 생탁은 거의 탄산음료라 할 정도의 탄산이 있어 마실 때 상쾌함이 다른 것과 다르다. 아직 까지는 막걸리도 초딩 입맛을 벗어나지 못해 그럴 것이다.


술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내 안의 다른 친구들도 만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절대 맨 정신에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게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건지 필름이 끊기기라도 하면 나 아닌 다른 자아가 잠시 그동안 나의 신체를 빌려 사고를 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의심을 해본다. 술을 마시면 내 안의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 이것 때문에 술을 마시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각자 지원 대학으로 뿔 뿌리 흩어졌다. 그러다 오랜만에 약속을 잡고 군산에 모이면 자기 방이 외진 곳에 있는 친구 방에 모두들 모여 누가 술을 잘 마시는지, 내기 아닌 내기를 했었고, 그러다 보면 동쪽하늘에서는 푸르스름한 여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술에 취해 아침을 맞이하고 술에 취해 자고 일어나면 어느덧 오후. 이때는 젊었기에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했기에 이럴 수 있다. 지금은 이렇게 하라고 해도 체력이 바쳐주지 않아서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때는 언제나 밤샘이 일명 올나이트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 휴’ 내일 걱정도 되고 몸도 안되고 이래저래 안 되는 게 많아서 그냥 일찍 자야 된다.

하루는 친구네 집에 모이기로 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었다. 담금주 코너에 가서 25도, 30도, 35도 1.8리터 소주를 사고 안주를 사서 친구네 방으로 갔다. 그때부터 우리 여섯 명은 누가 잘 마시고, 누가 술이 강한지 대결을 했었고, 너무 급하게 그리고 많이 마셔 온갖 추태를 부리곤 했다. 그래도 아침이 오면 농구공을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골인도 못 시키는 농구를 계속하며 농구공을 허공에 던져대곤 했다. 이것 또한 추태였을 것이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보았으면 뭐라 했으려나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곱게 먹고 잘 것이지 아침부터 학교 운동장을 시끄럽게 운동회 하듯이 만들고 있으니.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렇게 도수별로 술을 마시다가도 끝내 35도짜리 페트병은 오픈하지 못했다. 도저히 먹을 수도 없고 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담금주를 만드는 것인 것 우리가 거기에 담기려고 했으니 이 무슨… 아무리 젊은 객기라도 그렇지 그땐 우리가 잘못한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부터 우리는 절대 담금주를 사서 마시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굳이 확인해 보나 마나 아무것도 아닌 주량 싸움도 하지 않았고, 누가 승자이건 패자이건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왜 굳이 그런 걸 해가면서 놀았는지 모르겠다.


술친구를 만나서 우리는 친구들끼리 서열을 정하려고 했다. 고등학교 때야 성적이 우리의 서열을 갈라놓았다면 이제는 성적으로 비교를 할 수 없으니, 주량으로 우리의 서열을 뒤집어 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공부 잘한 놈이 술도 잘 마셨다. 물론 아닌 친구도 있었지만, 깡으로 마시는 건지 진짜 주량이 쌔서 그런 건지 이런 걸 둘 다 잘하는 친구 놈을 볼 때면 부러웠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이렇게 술친구를 새로 만나 1년 동안은 혼돈의 나날이었다. 이 친구를 이겨보겠다고 마셨다가 다음날이 힘들고 덜 마시자니 친구 놈들 보는 눈이 있고, 괜한 기싸움에 지기는 싫고, 이렇게 적정주량도 모른 체 1년 동안 술친구를 무턱대고 조심 없이 만났었다. 숙취에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있는 날이 제법 있었고, 그다음에 친구들과 만나면 저번 술자리 일들을 회상하면 또 한잔씩 하고. 이렇게 술과 우리들의 추억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며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아직도 새벽까지 담금주를 마신 친구들을 만난다. 이제는 거의 명절 때 밖에 못 보지만 그때도 술 한잔씩 하며 20대 때의 이야기를 하고 그 추억 안주 삼아 흥에 취해 보지만 이전처럼 부어라 마셔라는 하지 않는다. 요즘은 마지막에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하면서 헤어질 정도로 우리의 술 문화는 많이 개선? 되었고, 커피가 아니면 영화 한 편 보면 마무리하기도 한다. 술 마시고 보는 영화는 숙취에 잠을 잘 수 있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아무개는 영화보는 대신 꿈나라고 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술을 자주 하지 않는다. 나는 술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사람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술김에 흥에도 취해보는 자리가 좋았다. 그런 좋아하는 자리를 이제는 가능한 많이 자제하려 한다. 건강도 좋지 않고 이제 그렇게 마셔줄 사람도 주변에 많이 없다. 총주량의 법칙이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난 그 총주량을 40대 중반에 다 마셔버린 상태 같다. 이제는 술친구와는 조금 대면대면 지내면서 가끔 그리울 때 아님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때 즐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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