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J
25년 10월 24일 아침 6시 14분
맑은 아침. 창 밖으로 보이는 영도가 붉은 배경을 뒤로하고 맞이한다. 저 멀리서 간간히 지게차 소리와 도로 위 차량 소음이 들린다. 다들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들 움직인다. 오늘은 금요일. 아들이 집에 오는 날이다. 오늘부터는 아들에게 잘해주기로 마음 고쳐 먹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알아서 해결하려고 학교에서 혼자 아등바등하고 있다는 것을. 집에 알리면 부모님 걱정하신다고 대부분 학교에서 조용히 해결하려 했다고 한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하는 게 부모인데 이런 우리에게 걱정을 덜 안겨 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오늘부터 잘해 줄 거다. 그래서 집에 오면 둘만 외식을 하러 나가려고 한다.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그거 먹으러 갈 거다. 미리 생각해 놓은 게 있긴 하지만.
어제는 ‘비’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비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비와 얽힌 일화를 소개하며 마쳤다. 오늘은 계속 기다리고 있는 동아리 형들 그리고 글을 쓰다 갑자기 떠 오를 줄 모르는 무언 가에 대해 소개하겠다.
선배 J, 한 학년 선배였고 상남자였다. 동아리에서 훈련부장을 맡아서 후배들에게 우슈를 가르쳤고,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젓가락 부대에 갔고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다. 군대에서 병장이 되었을 때 주고받은 편지가 기억난다. 드디어 ‘병장’이 되어 5대 장성이 되었다고 기뻐하던 내용. (준장, 소장, 중장, 대장 그리고 병장 이랬다.) 나도 나중에 병장이 되었을 때 5대 장성 코멘트는 써먹었다. J의 가족관계가 정확히 어땠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녔으며, 동래구 쪽 어딘 가에 살고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훈련부장으로서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우리에게 우슈를 전수해 주었다. 그런데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나의 몸상태는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했고, 매번 다른 선배들과 협력해서 나의 자세를 교정해주려 했지만, 난 그런 형들의 수고를 면목없게 만들었다. 다행히 날 동아리에 소개해준 C는 자세가 제법 나와서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매번 자세가 나오지 않는 힘든 과정 속에 난 J를 미워했다. 매번 괴롭힌다고 생각하며, 악질 선배로(정말로 악질은 아니고 훈련할 때만) 방명록을 도배하곤 했었다. 나중에 내 생일이 되어 당시 유행하던 세균맨 인형을 선물 받았을 때, 인형의 이름을 M이라고 지어 주었다. J의 이름을 거꾸로 하면 M이 된다. 이 인형은 지금도 나와 같이 살고 있고, M도 세월의 흐름을 거쳐 조금씩 늙어 가지만, 그래도 예전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 일 것이다. 아니다 유일할 지도 모른다.
J의 20대 초반은 모두가 그렇듯 열애가 화두였던 거 같다. 동아리 선배 누나를 좋아했었나 본데 둘 사이 진도가 잘 풀리지 않는 듯해 보였다. 8기 선배들끼리는 공유된 이야기로 서로 고충을 상담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운동은 제일가는 선배였으나, 연애는 나와 같이 여러 명이 자세를 알려주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상황의 남자였다. 유머러스하고 박력 있고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 있는 남자였는데, 그 매력을 여자 선배에게 어필하지 못했나 보다. 그렇게 둘은 동아리 CC로 발전하지 못하고 끝이 났다. J는 군대를 갔고, 누나는 졸업을 하는 당연한 수순으로 둘 사이 로맨스는 성공하지 못했다.
J는 지금 두 아이의 아빠로 경남 진주에 살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씩 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한다. 생일이 아마 10월 말이거나 11월 초였던 거 같은데. 내가 재수를 할 때 J의 생일에 맞춰 동아리 방에 전화를 했었다. 시험 마치면 꼭 찾아가겠다고, 보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난 대입을 치르고 선배님들 졸업생 환송해에 참여했었고, 그때 보고 싶던 J와 선배형 누나들, 그리고 동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98년 새내기로 타 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난 학기 초 매번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동아리 방을 찾았다. J와 Y 등 8기 형들은 없었지만, 10기가 새로 들어와, 후배들도 보고, 동기들이 있었기에.
난 ‘처음’ 이란 단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데 나의 첫 동아리였기에 그리고 내가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형 누나, 동기들이 있는 곳이었기에 난 내 동아리를 사랑했다. 지금도 나에게 동아리는 그저 학창 시절 단순하게 여가를 보낸 곳보다는 내 타지 생활에 활력과 에너지를 충전해 준 곳으로 남아 있다. 이런 생각에 난 지금의 본교에 입학해서도 동아리는 새로 가입하지 않았다. 나의 동아리는 오직 하나. ‘우슈’였다. 그리고 이게 의리라고 굳게 믿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J와는 복학하고도 종종 만났다. 예전처럼 같은 공간이 아니라 자주는 아니었지만, 동아리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학교 주변 또는 다른 장소에서 만나 우리의 인연을 이어갔다. 어느 날은 서면에서였나? 동아리 모임이 있었고, 그때 아내를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이때 J는 내 여자친구에게 아낌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고, 집에 갈 때 택시 타고 가라며 차비까지 주었었다. 다들 학생일 때인데 무슨 돈이 있다고, 그땐 정말 감사했었습니다. J는 이런 사람이었다. 정이 많고, 웃음도 많고, 남자다운. 외모는 ‘친구’ 영화에 나오는 유오성을 연상하면 될 거 같다. 비슷하게 생겼다. 갑자기 외모를 떠 올리니 웃음이 난다. J도 미남은 아니었네.
곧 J의 생일 일거 같은데 날짜 한번 찾아보고 오랜만에 연락 한 번 드려야겠다. 나의 20살 군산에서 부산으로 와 혼자 외롭다고 느낀 3월. 그 겨울 같았던 3월을 나에게 봄 3월로 그리고 6월은 뜨거운 여름으로 느끼게 해 준 인물이 J라 생각한다. J로 인해 그리고 8기 형님들, 동기들로 인해 더욱 풍성한 97년 봄과 여름이었고, 그 인연으로 계속해서 지금까지도 생각하고 추억하고 연락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다.
내년이면 J와 나도 곧 50이 된다. 20살부터 알게 되었으니 반평생도 넘게 알고 지낸 사이가 되었다. 잘하지도 못한 운동을 같이하며 부대끼고, 저녁이면 소주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노래방 가서는 목청 터져라 노래했던 20살의 날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정말 다행인 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는 거다. 그래서 생일 때 선물 받은 M 말고도 앨범이 있는데 그 앨범은 동아리 전용 앨범으로 지금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앨범에 사진 속 풍경은 항상 97년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 우리들의 싱그런 얼굴과 밝은 표정 들로만 가득 차 있다. 특히나 사진엔 J와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내가 그만큼 J를 좋아했다는 증거이기도 할 거다.
한 시간 남짓 하면 만날 수 있는 곳에 J가 있다. 하지만 여러 핑계를 대고 아직 J를 보러 가본 적은 없다. 통화할 때만 인사치레로 ‘한번 찾아갈게요.’ 하곤 가보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J가 보고 싶다. 오늘은 J를 생각하는 모드로 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들이 오면 둘이 외식도 할 건 데 마침 가려 하는 곳이 J와 내가 봄, 여름을 같이 보낸 공간과 가까운 곳이다. 오늘 가면 학교 주변을 거닐며 옛 추억에 더 빠져보고 싶다. 그런데 주변 상가들은 많이 변해 있겠지? 다른 건 몰라도 학교 정문 앞 ‘책 탑’은 그대로 있을 거라 기대하며, 오늘을 시작해 보려 한다. 벌써 창 밖으로 햇살이 비추고 있다. 서두에 이야기했지만 오늘 아침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