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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를 만나 행복했다

니가 없었다면...

by 시쓰남

25년 10월 28일 아침 06시 39분


아침 온도가 8도이다. 이제 아침이면 겉 옷을 하나 더 챙겨 입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차가운 공기를 내뱉는 자연에 감탄만 할 뿐이다.

어제는 중학교 친구 BB를 소개하면서 게임친구도 같이 소개를 했다. 쓰다 보니 BB 보다는 게임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거 같긴 한데.

오늘은 이 게임친구 G에 대해 소개를 해 보겠다.

내가 G를 만난 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였다. 외사촌 형들과 놀면서 자연스레 형들 따라가면서 만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곳은 어린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조그만 화면을 보면서 모두들 뭔가를 열심히 누르면서 활기가 넘치는, 사장님은 이런 우리들을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보시면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는 공간이었다. 백 원이면 3판 정도 G친구와 놀 수 있었는데, 한 번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지구를 지키고 또 한 번은 정의의 기사가 되는 등 여러 가지 캐릭터로 나를 인도하였다. 지금도 그럴 테지만 3번의 생명을 부여해서 게임이 시작되는데 ‘인생은 3 세판’이라는 것을 조기 교육받았다. 그렇게 매번 작은 오락실에서 형들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는 게 주요 임무였지만, 가끔씩 나도 게임을 하면서 이 G의 마력 같은 중독성에 빠지고 있었다.

제법 커서는 혼자 오락실을 다녔다. 입학 전 과는 게임 모니터 사이즈 및 이용 금액이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50원으로 시작했고, 보글보글, 갤러그, 람보(이까리) 등 수많은 게임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내가 주로 하던 게임은 ‘보글보글’. 국민게임(?) 이기에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형들과 같이 할 때면 1P 녹색친구가 나보다 어린 친구랑 할 때면 2P 파란 친구가 내 몫이었다. 점점 할수록 기술도 늘어서 10판, 20판은 기본으로 넘겼고, 파란 친구로 플레이할 때 한 번도 죽지 않고 50판까지 가면 70판으로 넘어가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걸 시현해 보이기 위해 정말 부단히도 노력했던 거 같다. 그걸 보여 줄 때가 되면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왔고, 내가 50판에서 70판으로 넘어가는 이벤트를 보기 위해 숨죽이며, 나의 플레이를 지켜보곤 했다. 지금 게임방송을 시청하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라 해야 되나? 그렇게 난 초3 때 보글보글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G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다. 초3 때는 방과 후면 매번 오락실로 달려갔다. 오락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가 차곡차곡 모으시던 저금통에 손을 되기도 했다. 가끔씩 어머니랑 저금통을 열어 얼마나 저축했는지 세어 보곤 했는데, 그 사유가 혹시 내가 저금통에 손을 된 걸 알고 그러셨는지는 모르겠다. 모종의 경고였으리라. 하지만 난 G의 마약에 빠져 매번 저금통에 손을 대면서까지 오락실을 갔다. 게임중독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자라면서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게임하는 시간이 거의 없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G를 만나기 위해 전화기에 여러 게임을 설치했었다. 이제는 예전보다 편해져서 언제 어디서든 G를 만날 수 있다. 요즘은 나보다는 아이들이 G를 자주 만나고 있다. 나의 어릴 적 시절이 떠 올라 많이 하면 잔소리를 하곤 하는데, 내 과거가 떠올라 잔소리할 땐 솔직히 부끄럽다. 그렇다고 계속하고 있으라고 권장만은 할 수 없고, 내가 그 중독을 겪어 봤으니, 가능한 자제력을 갖고 하라는 충고를 해 준다. 그런데 어린 시절 그게 쉬운 게 아니란 걸 알기에.

요즘은 너무 많은 G를 만날 수 있다. 심지어 광고도 한다. 정말 시대가 많이 변했다. 감히 게임광고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어릴 땐 일본 게임사들이 만든 게임을 많이 했다면 요즘은 국산게임도 많고 더욱 글로벌화되어서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어린아이들만 점유하는 게임이 아닌 남녀노소가 즐기는 오락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이 나이에 게임을 하고 있어도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다.


스트레스가 있을 때 게임을 한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 잘 풀리지 않으면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더 스트레스가 쌓이는 걸 보면서 난 게임과 이별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다음부터는 덜 자주 만나자 다짐했다. 주객이 전도된 거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내가 너무 어리석어 보였다. 기분 풀자고 한 게임으로 더 기분이 상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G랑 놀자면 이런 양면성 때문에, 가까이하기도 멀어지기도 어려운 것 같다. 더 잘하려고 기를 쓰고 남들이 내 주변에 모여드는 걸 감지할 때 오는 그 황홀한 기분을 맞보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게임을 했다. 이제는 혼자 게임하는 시대니 각자의 최고기록을 보여주며 높은 랭킹을 보여주는 것이 오락실에서 느끼게 했던 기분과 비슷하리라.


오락실에서 G를 만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쩌다 공짜로 하게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시골에 놀러 가서도 주변에 오락실이 어디에 있는지, 이 동네는 어떤 오락을 하는지 궁금해 찾아가기도 했다. 나는 게임에 미쳐 있었고 중독되어 있었다.

이 친구는 가까이하자니 ‘독’ 같은 친구요 가끔 시간을 보내자니 ‘꿀’ 같이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친군데, 이로움 보다는 해로움이 더 큰 거 같다. 그렇다고 내가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나도 게임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아낀다. 그런데 게임을 하게 되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되니 이건 좀 고려를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내가 많이 해 봤더니 별로 더라. 너희는 자제하는 게 좋겠다.’라는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나 할까? 이제는 나이도 들고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참견을 하려는 행세가 꼰대인 것 같다. 이런 걸 보고 꼰대라 하겠지. 아님 위선인가?

G는 그런 거 같다. 많이 알수록 좋은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게 노력이 필요한 친구.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과 타이틀 이름만 들어도 아직 가슴이 설렌다.

그 설렘으로 너무 사랑을 주기에는 뭔가 다른 취미에 비해 남는 게 없다. 독서를 하면 책의 내용이 남을 것이고(다 그렇지는 않을 태지만.) 수집을 한다면 수집품이 남을 텐데 게임을 해서 최고 점수를 획득했다고 주변에 자랑하기가 좀 민망한 건 나뿐인 건가?

이제와 이런 말은 하고 있는 건 다분히 어른이 된 척하려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주시라. 무턱대고 찬양을 하지는 못하는 마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같이했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렀어도 G는 나와 같이 했다. 한때는 축구선수로, 야구선수로 변신하며 운동에 전념하게 하기도 했고, 세 종족 간 싸움의 총 사령관이 되어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었다. 운송사를 차려서 경영을 배우고 물류의 중요성도 배우기도 했다. 도시를 건설 운영하면서 시장이 되기도 했고, 저격수가 되어 적들을 제거하는 임무도 수행했었다.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준 G에게 감사하다. G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겠나. 이게 G의 장점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 볼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친구. 너의 발전이 앞으로도 기대가 되고 다음에 내가 더 어른이 되어서 손주와 게임을 즐길 줄 아는 할아버지가 되길 기대해 본다.


고마웠다. 고맙고. 지금도 집의 아이들이 나의 어릴 적과 비슷하게 운동선수도 하고 군인등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슬쩍 잘하는지 보기도 하고 나도 한번 하게 해달라고 하는데, 넌 정말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인 거 같다. 계속 같이 가자. 그렇지만 너무 많은 시간은 지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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