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S(SO)를 소개합니다

군산에서 내 B알 친구

by 시쓰남

25년 10월 30일 아침 06시 53분


이제 10월도 하루가 남았다. 낼모레면 11월.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했던가? 같은 시간인데 어떻게 나이마다 상대적일까 했는데, 정말 그런 거 같다. 어릴 적 빨리 한 살이라도 더 먹고 싶어서 새해에 떡국을 두 그릇씩 먹고 빨리 어른이 되기를 기대했었는데. 요즘은 떡국 한 그릇만 먹는데도 곧 노인이 되고 쇠약해진 날 볼 수 있을 것 같아 두렵다.

어제는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렸다. 내가 응원하는 ‘한화 이글스’가 19년 만에 우승을 노려보기 위해 경기를 하고 있다. 2연패 뒤 어제 경기. 홈인 대전에서 경기가 열렸었고, 7회까지 뒤지고 있어 패색이 짙었는데 8회에 역전을 해서 첫 승리를 따냈다. 역시 스포츠 경기는 아무도 모르는 가보다. 투아웃에 점수를 6점이나 뽑았다. 선수들의 집념과 간절함이 이루어 낸 결과일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집념과 간절함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을 소개하려 한다. 누굴 먼저 해야 하나 정하진 못했다. 이 또한 의식의 흐름에 맡기련다. 고등학교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친구는 당연 S(SO)이다. 초등학교 동창이었으며, 중학교 때 헤어졌다 고등학교 때 다시 만나게 되었다. 3학년 때 같은 반을 하게 되면서 초등학교 이후로 오랜만에 같이 공부를 하게 되었다.

S는 2통에 살았다. 위로 형과 누나가 있었고, 형님은 한 번도 뵙지 못했다. 누나는 우리 집 E와 친구여서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었다. S의 어머니는 식당을 하셨는데 어릴 때나 20살 때나 어머니 식당을 찾아가 맛있는 밥을 먹었다. 어머니 그땐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S는 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3 때 짝꿍을 하면서 자주 같이 앉았는데, S는 수업시간마다 그렇게 잠을 많이 잤다. 밤에 뭐 하길래 매번 자는 건지. 나도 종종 졸았지만, 내가 눈을 감는 빈도보다 S가 감는 빈도가 더 많았다. 그런데 시험을 치면 성적은 항상 상위권. 밤에 혼자 공부를 하다 와서 이렇게 자는 건지? S의 비법은 알 수 없었다. 공부는 잘했는데 노래는 잘하지 못했다.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항상 S를 ‘도도도’라고 놀려 되곤 했다. 음정이 바뀌지 않고 글 읽듯 노래를 불러 ‘도도도’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필 선택해서 불렀던 노래에도 ‘도’가 나와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노래제목은 이문세의 ‘옛사랑’

가사가 이렇게 시작한다. ‘남들모르게 ~하지만 S가 부르게 되면 꼭 이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남들 모르~’ 하지만 S는 우리의 이런 야유가 놀림에도 굴하지 않고 노래방 가면 가끔씩 이 노래를 불렀다. 무슨 사연이 분명 있는 노래인 거 같다. HJ와 헤어지면서 슬픔을 느낀 노랜가? 여기서 잠깐 나온 HJ는 S의 중고딩 시절 여지친구? 라기 보단 S가 짝사랑한 존재인 걸로 기억한다. 한 번도 사진을 보지 못했고, S의 전언만 들었을 뿐이다.

S와 재미난 고3을 보냈다. 나는 매일 집에서 등교를 했었고, S는 기숙사에서 등교를 했었다. 매번 창가 쪽 앞줄 쪽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수업을 들었었다. 여름이 오기 전 우리는 단체로 삭발을 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싸이코네 집 근처 미장원으로 가 삭발을 했다. 삭발을 했던 그 의지에 찬 친구들은 바로 개태(K), 싸이코(SS),S 그리고 나. 미장원 사장님이 삭발은 처음 해본다며 재밌다고 하셨고, 우리의 머리를 서비스로 밀어주셨다. 그렇게 삭발을 하고 다음날 아침 4명이 앞뒤로 앉아 있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주변 친구들의 반응도 나의 웃음과 별 다르지 않았다. 다들 웃으면서 왜 그랬냐고, 무슨 일 있냐고? 그리고 다들 3명은 이해가 되는데 너는 왜 그랬냐고? 뭐 공부 못하면 머리도 못 미냐? 이런 마음의 소리가 나오려 했지만 그냥 따라 했다고만 했던 거 같네. 삭발을 하니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면 머리가 시려서 추웠고, 졸고 있던 눈도 추위에 놀라 번쩍 뜨이게 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세수할 때 어디까지 얼굴인가의 경계가 희미해져, 세수하면서 머리도 한 번씩 쓱쓱, 얼굴과 머리의 구분을 하지 못했으며, 세수하고 나와서 얼굴을 닦고 머리를 닦으면 수건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새 조금씩 자란 이끼 같은 머리카락들이 수건을 붙잡고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머리는 톡톡 터치만 해 주는 경험. 이 삭발을 하지 않았으면 정말 몰랐을 경험을 난 고3이 되어서 해 보았고 알 수 있었다.

수업시간마다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의 반응 또한 재미가 있었다. 모두들 창가 쪽 자리가 너무 빛이 난다며, 우리들의 행동에 응원을 해 주셨고, 가장 나이가 많으셨던 영어선생님은 우리를 교무실로 불러 덕담까지 해 주셨다. S와 개태, 싸이코 이 3명과 삭발한 그때의 행동은 젊은 객기와 간절함이 묻어 나온 행동이었으리라.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두 그해 수능을 잘 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 수능 당일 트라우마가 찾아와 언어영역을 망쳤고, 수능의 난이도 조절 실패(?)로 인해 나의 대입준비에는 빨간불이 들어오고 말았다. 그래도 나보다는 3명은 잘 치렀기에(원래 나보다 공부들을 잘한 친구들이었다.) 삭발의 효과는 있었다고 인정을 해야겠다.

S와 짧은 1년을 같이하고 우리는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S는 서울로 나는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매번 삐삐를 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고, 군산 오는 일정을 맞춰가며 매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연락을 하며, 명절 때 군산을 가면 저녁에 S와 친구들 모두 모여 고등학교시절 그리고 20살 때 추억을 더듬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S도 97년 1학기만 마치고 재수를 선택했다. 그래서 다시 대학교에 들어갔고, 그 어렵다는 사시를 패스해서 지금은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다. 친구들과 매번 만날 때마다 S가 아낌없이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준다. 매번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요즘 들어 건강에 이상이 있던데 이제 술 담배 줄이고 더 건강한 S로 거듭나기를 기도한다. ‘무병장수’가 아니고 ‘유병장수’ 시대라고들 하더라. 우리 모두 유병 하나씩 키우면서 아니 케어하면서 모두 장수해 보자.


S는 군산에 전학 온 해부터 알았으니까 알고 지낸 지 40년이 다되어 간다. 나를 이렇게 오랫 동안 보아 온 친구는 아마 S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S에게 감사하고 더 특별한 마음이 든다. S야 항시 같이 해줘서 고맙다. 건강 잘 챙기고 지금처럼 딸내미랑도 계속해서 친하게 지내고, 재수씨에게 잘하고. 그래야 우리가 계속해서 더 잘 볼 수 있다. 우리 모두 가족들에게 잘하자.


고3시절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렇다고 전혀 학교생활에도 유익하지 않았을 나와 오랫동안 짝꿍을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가끔씩 법률자문을 구해도 싫은 소리 없이 답변을 해주는 것도 고맙고. 넌 알랑가 몰라도 넌 나의 ‘전담’ 변호사’이다. 난 어디 가서 그러거든 농담이라도 ‘내 전담 변호사랑 이야기하라’고. 그럼 사람들이 어디서 드라마 보고 와서 이딴 소리 하냐고 핀잔을 주는데, 아니라고 진짜 전담변호사 있다고 하면서 니 자랑도 하고 나도 어깨를 한번 추스리기도 한다. 곧 너의 생일이 오겠구나. 미리 생일을 축하하며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라~

담에 군산 가면 보자~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2화M의 변신(이제는 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