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장이 되고 싶었다(반장S와의 만남)

반성의 시작

by 시쓰남

25년 9월 30일 아침 06시 09분


9월의 마지막 날. 아직도 오후엔 더위가 자리 잡고 있다. 내일이면 10월인데 이제 좀 가라. 지겹다. 여름 너, 참으로 대단하다. 너의 열정 존경한다. 나도 이러 끈질긴 맛을 보여줬어 야 했는데.


오늘은 시간 배경을 거슬러 89년도 친구들을 소개하겠다. 다들 아 시다시피 내 의식의 흐름대로 써 가고 있어서 배경시간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그때는 꼭 알려주고 시작할 터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라.


5학년때 난 1반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4학년때와 동일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끼리 학년이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을 또 만나게 되었다. 이게 좋은 거라 그때는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좋거나 나쁠 거는 굳이 없었던 거 같다. 새 학년이 되면 으레 치르는 선거가 있어 학기 초에 긴장을 불러오는데, 자칭 반장 후보감들의 하마평이 나오고, 누군가는 대담하게 반장 후보로 나갈 거란 찌라시를 뿌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전학 왔을 때 알게 되었던 사실은 5학년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담임 선생님이 같다. 그래서 어떻게 된 줄 아시겠죠? 반장은 선생님의 지명으로 끝이 났다. 내심 부산에서도 반장 부반장을 해 봤고, 감투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선생님의 지명으로 반장이 결정되는 게 싫었다. 무슨 권리로 반장을 선생님 마음대로 한다는 것인가? 그 당시 투표야 뭐 인기투표지만(지금도 그럴 거 같지만), 나의 객관적인 인기 지표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반장은 S가 되었다. S는 4학년 때 반장 K와 친구였고, 우리 동네 5통에 살고 있었다. K처럼 키가 나보다 컸고, 딱 봐도 반장감이었다. 훈남에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다. 한참을 같이 지내보니, 선생님이 지명한 이유가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반장을 못 했더라면, 학급회의 시간에 건의를 한다던 지 해서, 요즘 유행했던 탄핵을 건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잘했다. 그리고 난 반장을 좋아했고, 잘 따랐다. 같은 동네라는 동질감에 더 빨리 친해졌던 거 같고 K랑도 친구라 기에 더더욱 좋았던 거 같다. 여담인데 S의 이름은 나중에 아버지가 처음 배를 사서 평생을 타고 다니셨던 그 배의 이름과 같다. 단 아버지 배에는 No 6. 가 붙어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이거 빼면 똑같다. 그래서 난 아직도 S 이름을 잘 기억한다. 오늘 M에 대해 소개한다 했는데 또 쓰다 보니 S가 먼저 나왔다. 글쓰기가 참으로 신기하다. 쓰다 보니 옛 추억들이 소환이 되고 그동안 잊혔던 친구들이 떠오른다. 내 기억력에 감사한다. 그리고 다시 친구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기록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S의 일과 중 첫 번째 반장 업무는 숙제 검사였다. 등교하고 1교시 전 숙제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를 선생님께 보고하는 루틴으로 매일 등교 후 아침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도 그날이 기억나고 부끄럽지만, 난 그날 이후 이런 방법을 여러 번 써먹으면서, 숙제 검사를 피해 갔다. S가 숙제 검사할 때, 잠시 정말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왔다. 물론 숙제도 다 한 상태라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벌써 우리 분단 숙제 검사를 마치고, 타 분단 검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난 반장에게 숙제를 했다며 보여줬었고, 반장은 ‘당연하지 니가 안 했을 리가 있나’라는, 무한 신뢰의 눈빛을 나에게 주었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오락실에서 놀다 숙제를 못해 간 날이 생기면 난 이 무한신뢰를 이용해 부끄러운 짓을 했다. (참고로 난 오락실을 굉장히 좋아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은 동네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른데 다름 아닌 보글보글, 파랭이로(2P) 연결 없이 90여 판까지 간 것이 나의 최대 기록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S는 숙제 검사를 했고, 우리 분단 검사를 할 때 즘 난 교실을 나와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앉았고, S는 우리 분단을 마치고 타 분단 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숙제검사를 피했었고, 숙제를 해오지 않아 혼나는 친구들을 무심히 바라봤었다. 이런 행동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S는 나의 숙제 유무를 체크하지 않았다. 이 부끄러운 행동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매번 그런 건 아니고 서너 번 한 것 같다. 거짓말 또는 솔직하지 못한 상황을 떠 올리는 일이 있으면 이때 나의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S야 미안 나 그때 숙제 안 해갔었다. 물론 너는 나를 믿고 지나갔을 텐데, 너의 믿음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 미안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아파서 결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등교 전 저녁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숙제를 했던 기억도 난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의미였을까? 아파서 못했어요 했어도 핑계가 될 거 같았는데, 그러지 않고 숙제를 했다. 어릴 때 본의 아니게 친구를 속이고 나 자신을 정정당당하게 못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닌가 한다. 반칙, 불법을 가능한 하지 않으려는 삶은 살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교통신호를 위반한다. 반성한다.

나의 5학년은 군산 초등학교 시절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일단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은근 남자 친구들끼리 서로의 라이벌이 누군가 하며 순위를 매겼는데, 어쩌다 보니 나보다 순위가 높은 친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쌈박 질을 하고 다니는 아이는 아니었고 좋게 이야기하자면 나 스스로는 조금 지킬 수 있는 정도.) 그래서 반에서 다른 남자친구들의 눈치를 크게 볼 일은 없었고(물론 나 때문에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면 미안하다) 괜히 주눅 들 일들이 없어 좋았던 거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라는 걸 2학기 되어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학교를 마치고 매번 야구를 하며 재미나게 놀았는 데, 그래서 친구들과 아무 이상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는지, 아니면 그 주 친구들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 난 나쁜 어린이로 선정되었다.

학급회의 시간 말미에 우리 반은 착한 어린이, 나쁜 어린이를 뽑았다, 투표는 아니었고, 손들어 추천하는 방식. 아무개를 착한 어린이로 추천합니다. XXX을 나쁜 어린이로 추천? 이때 뭐라 해더라? 아픈 추억인데 기억이 안 나네… 이런 방식이었는데, 난 그날 나쁜 어린이로 칠판에 이름을 올렸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회장에게 다음 주에 투표로 다시 한번 재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때 회장이던 M이 다음 주에 해당 건으로 투표를 다시 해주겠다 했다. 물론 투표는 없었고, 거수로 확인을 했었다. 집에 돌아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내가 나쁜 어린이가 맞냐고, 재차 확인 전화를 돌렸고, 그중 친한 친구들에게 서도 너 좀 너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내가 나쁜 어린이라니. 보통은 반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한주 동안 사고를 많이 친 친구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의 공개 경고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나름 반듯하고? 사고를 잘 치지 않는 나에게도 해당된 다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차주 나쁜 어린이 선정 취소에 대한 거수투표가(공개투표) 있었고, 다행히 반대가 많아서 이름은 지워졌던 거 같은데, 친하다고 나에게 반대표를 던질 거라 믿었던 친구가 찬성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 또 한 번 충격이었다. 남자애들만의 투표로서 나쁜 어린이가 맞았다. 미안하다 친구들아. 난 나쁜 어린이가 된 적이 있었기에, 살아오면서 이런 오명을 다시는 가 질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능한 주변에 큰 피해를 주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가끔 차량이 없을 때 교통신호는…)


쓰다 보니 어릴 적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조금은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런 사건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를 다시 한번 느낀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다는 사실을.


오늘 M을 소개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잠깐 학급회의 시간에 언급만 하고 지나가고 말았다. 내일은 본격적으로 M을 소개하고 다음엔 J랑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초등학교 절정이라 말했는데, 쓰고 보니 부끄러움의 절정이었던 거다. 반성하고 사과를 건넨다. 미안하다 친구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0화4학년 친구들과 우리동네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