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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M, 그리고 K, J

어릴적 사이 좋았던 친구들

by 시쓰남

25년 10월 01일 아침 07시 04분


10월이다. 내일만 지나면 추석과 연휴들로, 나도 태어나 처음 만나는 긴 연휴를 맞이하게 된다. 일 할 때 이런 연휴를 만나야 좋은데. 지금 하루하루가 연휴라 조금 아쉽다.

어제 5학년 생활에 대해 소개해 드렸고 반장 S를 소개했다. 그러면 어제 소개하려다 못한 오늘은 M과 시간이 된다면 J까지 소개해 보겠다. 그러나 모른다. 쓰다 보면 또 어떻게 계획이 바뀔지.


M은 처음 나오는 여자친구다. 이 단어만으로도 설렌다. 막상 M에 대해 쓰려고 하니 부산에서 좋아했었던 K가 생각난다. 마치 내가 먼저인데 왜 M부터 소개하느냐며, 손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는 거 같다. 맞네. 여자친구라면 K가 먼저인데. 그런데 K는 모를 거다. 나만 좋아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고백을 안 했다. 서로의 마음을 몰랐던 거 같다. 하지만 나는 K를 내 첫 번째 여자친구로 생각한다.


K는 내가 3학년이던 87년도에 전학을 왔다. 경남 지방에서 이사를 왔었고, 나의 새로운 짝이 되었다.(소풍 사진을 찾아보면 가을 소풍 사진에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K는 2학기 때 전학 왔었다. 수업시간에 K의 노트를 보며 깜짝 놀랐었는데, 그건 바로 선생님이 칠판에 써 주시는 내용이 K의 노트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래에서 온 소녀도 아니고, 나는 열심히 필기를 하는데 K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 미리 필기를 해왔기 때문에. 그때 난 눈치챘다. 선생님들도 우리 랑 비슷한 교재가(동아전과/표준전과 같은) 있어서 그걸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항상 교단에 펼쳐놓는 책이 바로 그 교재였던 걸로 생각이 든다. K랑 짝꿍이어서 매일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았으리라.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크게 기억나는 건 없고, 내가 제일 처음 좋아한 여자친구라는 것에 볼드체로 기억되어 있다. 4학년이 되었을 때 같은 반이 되지 못했었고, 난 5월 초에 전학을 가서 더 이상 K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K도 다시 전학을 갔다. 이렇게 짧은 만남이었는데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는 걸 보면, 뭐지 이 감정들은.


한참 아이러브스쿨이 유행할 때 일이다. 나도 부산의 학교를 찾아 가입을 했고, 친구들에게 인사도 하려 했으나, 난 부산에 있는 친구들에게 거의 잊힌 존재라, 애들이 올리는 글들을 보면서, 속칭 눈탱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K도 가입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어찌하다 보니, K와 전화통화까지 했었다. 그때 K는 마산에 살고 있다고 했고, 이메일 초창기라 서로 메일 주소도 물어가며 네트워크 정비를 통해 혹시 다음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키우기도 했다. 나도 부산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K를 아마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마산 거 뭐 시라고. 하지만 섬사람들은 아실 거라 믿는다. 섬 밖을 나와 뭍으로 가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난 섬에 틀어 박혀 거의 육지로 나가지 않았다. 거기서도 계속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이후로 K와 이메일을 몇 번씩 주고받았지만, 오랜만에 회복시켜 놓은 네트워크 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야위어 갔다.

지금도 마산에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메일을 최근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 답장이 없다. 이렇게 첫사랑? 은 안 이루어진다는 진리가 나에게도 적용되었다. 나와 K의 짧은 이야기였다. 너를 깜빡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내 기억 속에서 비집고 나와서 손 흔들 알려준 거 고맙다.


이제 다시 오늘 본격적으로 소개하려 했던 M의 만나보자. M은 나랑 동성(同姓)이었다. 86 아시아의 깡패인 E처럼 왈가닥 한 면도 있었고, 리더십도 있었다. 5학년 2학기 학급회의 임원 선출할 때 우리 둘은 서로 회장의 자리를 놓고 후보에도 같이 올랐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 선거에 패배해서 M은 회장, 나는 부회장을 했었다. 5학년 때는 여자친구들을 사귀며 정신없이 보냈던 거 같다. 학교생활은 재밌고, 학교 밖 생활은 더욱 재미있었던 시절. 저녁마다 M과 전화통화를 한다고 전화기 앞에 30분 이상은 매일 자리 잡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M을 좋아했고, M과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그때 누구를 좋아하는지 서로 수업시간에 쪽지를 돌리며 놀았었는데, 5위까지 순위가 있었고, M, J, 등 5명의 이름을 쓴 쪽지가 여기서 저기로 수업시간에 배달되곤 했다. 그때 나의 1순위가 바로 M. 그전에 J였던 거 같은데, 어쩌겠나, 사랑은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순위에 드는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끼리 자주 놀았고, 이런 연유로 여자친구의 생일파티도 초대받았었다. 보통은 남자가 여자친구의 생일파티에 잘 안 가는데. 난 갔었다.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르는데, 남자는 나 밖에 없었던 거 같다. 바로 J의 생일날.

나의 1~2 순위자답게 자꾸 여기저기서 M과 J가 툭툭 튀어나오는데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말이 나온 김에 J소개를 잠깐 하고 가자. J의 집은 작은 가게(상점)를 하고 있었고, 살고 있는 집은 J의 아빠가 설계를 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J집 옆은 바로 우리 작은 아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곳이어서 J네 집은 자주 지나다녔다. J는 3 자매였고, 나이 터울이 우리 집과 같았다. J의 언니는 나의 E랑 친구, 나랑 J가 친구, 동생 S와 J동생과 친구. 이런 터울이 비슷한 친구들 이 제법 있었다. 그래서 누나끼리 친구, 우리도 친구인 경우가 많아서 누구 하나 이야기하면 건너 건너 소식을 다 알 수 있었다. J는 공부도 잘했고, 피아노도 잘 쳤다. 가끔 우리집 E편에 J의 소식을 듣기도 했는데, 전혀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데 왜 이렇게 못 만난 건지 생각을 해보니 원인은 아마 나에게 있었던 거 같다. 게임을 한다고 방에만 처 박 혀 있는데, 누굴 만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다 우연히 97년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었고, 친구들이 그렇듯 잠시 버스오기 전 짧은 대화를 나누며 헤어졌다. 그 이후로도 J는 보지 못했다. 그때 잠깐 했던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우리 모두 재수를 준비 중이었고, 이번에 수능을 다시 본다고, 그러면서 서로를 격려했지만, J에게 혼도 났던. J는 처음부터 재수를 했던 거 같고, 난 학교를 다니다, 재수를 준비했었다. 이게 문제였다. 왜 학교를 다니다 재수를 하냐고, 그럼 다른 사람의 기회를 뺏은 거 아니냐 고 뭐 이런 이유로 혼이 난 걸로 기억한다.


J가 의대에 갔다고 들었다. (역시 공부 잘해) 어쩌다 초등 시절 추억이 떠 오르면 친구들 이름을 초록창에 입력하고 혹시나 하고 찾아본다.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일반 시민이라 기사로 소식을 접할 일이 없겠 지란 기대 없이. 그런데 J와 M을 소식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음에 놀랐다. 짜식들 잘 살고 있구나, 담에 기회 되면 연락이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M은 예전 싸이월드까지 할 때 연락이 닿았는데, J는 SNS를 안 하는지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 중 하나다. 그래도 가끔 인터넷에서 조회하면 너의 행적을 알 수 있어서. 그 남아 다행이다. 절대 스토커 아니다. 오해하지 말고, 친구의 동향이 궁금해서 그런 거다. 사진 보니 어릴 적 모습이 많이 남아 있더라. 그래서 더 반가웠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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