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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1. 2016

경주 여행

혼자라서 더 특별한 여행 이야기

이 영화는 "넌 혼자서 기차를 타본 적도 없지 않냐"는 친구의 말에 자극을 받아 여행을 떠나는 한 여대생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혼자 기차나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옆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또 낯선 사람과의 만남(어떠한 운명적인 로맨스를 기대하기도 하면서)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품고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돌아올 때는 피식 웃음만 흘리게 된다.


영화 경주 여행
왜 칼같이 출근을 하느냐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 되거든...경우가 있고... 그 다음에 이거..어. 그렇지, 그렇지. 도리.

도리. 도리도리 말고 있지요. 도리. 도리 DNA가 있어야 돼요. 사람이. 그거 없으면 공부 잘해도 다 소용 없어. 도리 DNA가 있어야 돼.

기차나 고속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양복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중년 아저씨이거나, 입을 벌린 채 잠에 취해 있는 아줌마, 할머니인 경우가 많다. 간혹 운이 좋으면 먹을 것을 나눠주며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를 만날 때도 있다. 내게도 그런 말동무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 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는 드물다. 특히 젊은 사람이라면 더욱 더.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타인들은 그저 스쳐지나갈 뿐. 짧은 스침에서 좋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특별한 인연을 만나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동행이 없는 여행의 이미지들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그림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대개 그렇다. 이 여대생 역시, '과제'를 빌미 삼아 혼자 여행을 떠난다. 뭔가 특별한 인연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기차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도리 DNA'의 중요성에 대해 침을 튀기며 강조하는 취객이었다.


 

영화 경주 여행

고속 버스 안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만, 그는 외국인이다.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외국인 남자는 바쁜듯 멀리 가버린다. 과제를 위해 찾아간 갤러리는 문이 닫혀 있고 (휴관일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남아 돌던 이 여대생은 (아마도 미대생이었던 듯 하다) 밥을 먹고,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다 한 남자를 만난다.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던 남자였다.


영화 경주 여행

경주역으로 가는 버스를 놓친 그녀에게 친절하게 '오뎅 좀 먹고 가라'며 작업을 거는 듯했지만(그의 배역이 낚시꾼이라는 설정은 그런 점에서 참으로 흥미롭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외지인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 '매너 좋은 남자'일 뿐이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여대생에게 연락처를 묻지 않고, 그녀도 굳이 '답례'를 하겠다며 '연락처'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여대생은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고속 버스엔 이 여대생 혼자 뿐이었다. 혼자 떠났던 여행에서 이 여대생은 내내 혼자였고, 돌아오는 길에도 혼자였다. 운명적 사건이나 연애의 조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겐 '작은 이야기'만이 남았다. 그저 해프닝으로 기억될만한 이야기.
 
여행이란 어쩌면, 떠나기 전의 설레임이 더 좋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스침'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것 아닐까? 나에겐 시시하지만, 남들에겐 더없이 특별해 보이는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 말이다. 또, 그렇게 크고 작은 만남들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이 어쩌면 여행이고 삶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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